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명자(특히 목회자, 선교사)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종으로 사용하시고자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되었음을 알리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사역자들 중에는 상당수의 비율로 환상, 서원에 관한 간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꿈이나 환상 속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종)로 선택했다고 하셨다거나 부모님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종으로 바쳐서 사역자가 되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역시 상당수의 확률로 자신은 그걸 원하지 않아서 도망다녔는데 병이나 사고 등으로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은혜스러운(?) 경험담들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열거된 '신의 부르심'에 관한 내용들은 놀랍게도 성경이나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 언급되는 내용이 아니라 바로 무당들의 신내림(빙의)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무속에서 무당들이 신에게 선택될 때 흔하게 나타나는 형태가 바로 이런 식의 신접이나 강제적 빙의이며 무당들도 이를 진짜로 부르심(calling)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얼마나 이교적이고 무속적인 형태의 사고방식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입니다. 알다시피 교회의 직분자(목사를 포함한)들은 이런 신접(빙의)이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 결정(내적 증거)과 이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지지와 동의(외적 증거)를 통해 정상적인 자격(디모데전후서, 디도서에 기록된)의 검증 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은 사역에 대한 환상이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구원받은 성도)가 되기 위한 구원의 과정, 특히 거듭남(중생)에 있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관한 것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구원이 개인의 결심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주권에 따라 보증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도 신접(빙의)이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영적 존재의 개입은 당연히 없습니다.
목사를 포함한 사역자들을 마치 신에게 택함 받고 특별하게 세워지는 샤먼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 신학과도 관계가 없는 그냥 한국의 무속적 개념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부터 교회에서 내몰고 올바른 직분론, 구원론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길임을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은 분명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참으로 그러하기를...
어려운 길이지만 올바른 길을 가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그 교회들을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