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질로 잡혀있던 고 씨가 새벽 4시쯤에 탈출하여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 병력 1천여 명이 집을 포위했다. 인질범들은 새벽 4시 40분부터 경찰과 대치하여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호송교도관 김○○ 교사(당시 54세), 김○○ 교사(당시 36세)[8]의 총을 빼앗아 각각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 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 시도 직후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로 잡혀있던 가족들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리고 지강헌은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 기도를 하는데 이를 지켜본 인질이 비명을 지르자 경찰특공대가 인질이 위험한 걸로 판단하여 즉각 무방비 상태의 지강헌에게 다리와 옆구리에 총을 발사하였으며 몇 시간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도 못받고 사망했다.#
당시 '홀리데이'를 요구한 지강헌의 요구에 경찰이 실수로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전달했다가 급하게 비 지스의 홀리데이를 다시 전달했다는 소문도 있다. 일단 사건 당시 현장에서 지강헌이 들었던 노래는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맞다.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울려퍼질 때 지강헌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당시의 방송 녹화테이프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은 2006년 SBS의 영화프로그램 'TV박스오피스'의 '영화비하인드' 코너에서 확인되었고, 또한 관련 영상은 유튜브 등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9]
당시 검거되지 않았던 5명 중 인질극에 가담하지 않은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가 탈주한 지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 1일에 체포[10]되면서 탈주극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유념해야 할 것은 지강헌 일당이 무죄가 아니라는 것. 1989년 개정 이전의 사회보호법에서 보호감호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규정한 탓에 이들에겐 10~20년에 이르는 매우 과중한 형량이 내려졌다. 그러나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은 무려 수십억 원대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고작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지강헌 등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 없고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대한민국의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한 것이라는 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일가가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못한 것이지 본인도 큰 돈을 훔치고 상습범이었기에 이러한 논리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당시 인질 및 경찰들이 증언한 바로는 그들은 예상 밖으로 대단히 신사적이었으며, 그들의 요구는 '방송'이었지 '탈주'가 아니었다. 사실 지강헌 일행은 숨어 살다가 집주인이 몰래 도망친 탓에 인질극을 벌인 것이고, 그러다 보니 방송을 탄 것이다. 지강헌의 노트 그리고 인질극을 벌이기는 했지만 범인들은 "죄송하다 조금만 참아달라", "금방 끝날테니 이해해달라." 면서 두려워하는 인질들을 달랬고, 경찰들 앞에서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고성을 지르면서도 인질에게 귓속말로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최대한 인질들을 배려하려 했다[11]
그런데 실제 영상에서 보면 같이 탈주한 동료에게는 과격하게 대했는지 강영일만큼은 권총 한발을 위협 사격 하면서까지 자수를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12]
탈주극을 벌인 12명 중 사망한 사람을 뺀 9명 중에 현재 석방된 사람은 가장 마지막에 잡힌 김길호와 지강헌 인질극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영일이고 나머진 출소 후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에 있다고 한다. (2014년 9월 기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사회보호법의 단점이 폭로되기 시작했는데, 이 사건 이후인 1989년에 사회보호법이 개정되며 보호감호 기간이 7년을 넘지 못하게 고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시민단체와 보호감호 피해자에 의해 '이중처벌'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2005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전술했듯이, 당시에 체포되었던 전경환과 비교되어 대한민국 경찰이 '시국치안에는 강하지만 민생치안에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 한 계기이기도 하다.
교정직 공무원들에게는 비극이자 희극이 되었는데, 바로 수감자들에 대한 몸수색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주 원인이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한 교도관들의 피로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보안과 교도관들은 2교대로 24시간 근무 후 퇴근해 쉬고 다시 24시간 근무하는 살인적인 스케쥴이 일상이었는데, 이걸 계기로 24시간 근무 후 다음날에 휴식 후 다음날은 주간만 근무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이나마 근무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시인 기형도는 <가는 비 온다>라는 시에서 이 사건을 언급했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
1995년 9월 30일자 KBS2 《그때 그 사건》에선 재연극 형식으로 나왔는데, 극본은 구선경, 연출은 이교욱 PD이며 지강헌 역은 배우 하재영이 연기했다.(영상)
2003년 6월 16일자 MBC 《실화극장 죄와 벌》 22회에서 다룬 적이 있다. 특히 죄와 벌은 가해자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인질극 피해자가 국가에 대한 손해 배상에 관한 것이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의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피해자는 선량한 시민으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약국은 문을 닫아야 했고,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게 됐다. 억울한 아버지가 국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배상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해당 책임자는 무관심했다. 다행히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미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난과 그 사건의 공포로 인해 피해자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고 가족은 고통 속에 살아간다고 한다.
2006년에는 해당 사건을 토대로 가공설정을 덧붙인 <홀리데이>라는 영화도 제작되었다.
2018년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도 이를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방송되었다. 7화에서 인질극 사건이 나오는데, 범인 이름이 이강헌이고[13]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요구하는 내용이 나온다.[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