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또 함께 일으키사 - 이것은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된 '살리셨고'와 연결된다. 즉 죄로 인해 초래된 영적 죽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공유하는 영적부활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앞절에서는 여격 전치사 '쉰''...함께'과 합성된 '토 크리스토''그리스도에게'를 사용한 반면,
본절에서는 '엔 크리스토 예수''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두 표현 모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나 본절의 '엔 크리스토 예수'가 앞절에서 언급된 '토 크리스토'보다 더 강한 의미를 내포한다. 한편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부활시키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골 3:1-3에 암시되어 있다.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신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듯이 하늘에 앉히신 것도 비록 현재 참여하고 있는것을 느낄 수 없다 할지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존전에 서있으며 그 앞에서 즐거워한다..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본절은 '히나''...위해서'로 시작된다. 이는 본절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하늘에 앉히신 목적이 됨을 시사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자비하심을 가리킨다. 한편 '오는 여러 세대'에 대해 혹자는 인격적인 권세나 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적대적인 정사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시간적인 것으로 미래에 '오는 시대'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다가오는 미래에 자신의 은혜의 광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다시 한번 강조함을 시사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본절은 5절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한 것이지만 5절과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1) 5절의 은혜에는 관사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관사 '테'가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한 '은혜'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 (2) 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나타난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性)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엑스 에르곤'에서 '엑스'는 기원이나 원인 혹은 근거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이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 행위를 율법과 관련시켜서 언급하지 않는다.
본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공적(功績)에 의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만드신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마'는 70인역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첫 창조 사역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재창조사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그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함이다. '선한 일'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에서 비롯된 열매로서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목표이다..
또한 '선한 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에 대해서 혹자는 동사의 목적어로서 '헤마스','우리를'를 삽입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일 자체를 먼저 예비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예비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선한 일'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