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라오콘 군상’… 죽음과 환생
고대 그리스 조각품 ‘라오쿤 군상(Lacoön Group c.)’, 작자미상, 대리석, 205.74cm x 162.56cm x 111.76cm(d), 바티칸 미술관 소장.(Photo by Felice Calchi)
로마 바티칸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를 보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관광객들은 예술이 깃든 골동품 사이를 지나야 한다. 그 중 역동적인 작자 미상의 조각들은 대중을 고요히 장악해 마치 한몸인 듯 불가사의하다. 많은 관광객은 경외감에 휩싸인 채 무심히 지나칠 뿐 그 누구도 멈춰 서서 차근히 살피지 않는다.
하지만 벨베데레 궁의 팔각형 정원(The Belvedere The Octagonal Court) 초입에 서 있는 라오쿤(The Laocoon) 군상 앞에서는 모두가 홀린 듯 발길을 멈춘다. 라오쿤 군상을 둘러싸고 있는 조각들의 고요한 분위기 또한 이 장엄한 작품의 역동적인 느낌을 부각한다.
16세기 초에 콜로세움 근처의 티투스 목욕탕 유적에서 발견된 라오쿤 군상은 트로이 전쟁 말미 라오쿤에 관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아테네군이 목마를 두고 철수하자 트로이 진영에서는 이를 전리품이라 기뻐했다.
하지만 트로이 예언자 라오쿤만은 목마의 계략을 눈치채고 목마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라오쿤의 이러한 행동은 신들의 노여움을 샀고 라오쿤과 두 아들은 독뱀에 물려 죽음을 맞게 된다. 라오쿤 군상은 바로 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로마 작가이자 과학자인 플라이니 더 엘더(Pliny the elder)는 이 작품을 두고 고대 작품 중 최고 걸작이라 평했다. 엘더는 “한 덩이 대리석을 깎아 만든 라오쿤 군상은 로마시대, 타이투스 황제의 궁전을 장식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작품에 조각된 세 사람을 하게산드로스(Hagesandros), 폴리도로스(Polydoros), 아테노도로스(Athenodoros)라 명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라오쿤 군상이 여러 개의 대리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한 최근 조사는 로마의 속주였던 페르가몬(Pergamon) 신전에 있던 원본을 제국주의 시대에 와 재해석한 복제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엘더의 실수 역시 이해할 만하다. 복제품 역시 파생된 것이며 보통 질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걸작을 개선하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라오쿤 군상의 구성 요소들은 힘이 넘치며 완벽하고, 해부학적인 면에 충실해 극적 긴장감을 살려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작품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 프레스코화,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 천장화 중 일부, 바티칸 미술관 소장.(Branislav L. Slantchev)
10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라오콘 군상은 1506년 다시 발견된 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라오콘 군상, 발굴 당시 건축가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와 미켈란젤로는 에스퀼리누스 언덕에 있는 발굴 현장에 초대됐다. 미켈란젤로는 막 거대한 다비드상 작업을 끝낸 뒤 교황 율리오 2세의 묘 외관 작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라오쿤 군상과 운명적인 만남은 젊은 피렌체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예술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몸을 비튼 역동적인 자세와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근육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고, 독특한 기법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하지만 라오콘 군상에서 나타난 기술과 예술적 기교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미켈란젤로 역시 이 작품을 본 후 도전의식에 불탔을 것이며 겁먹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고대인들과 견줄 수 있는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가로 동시대 작가들에게 인정받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라오콘 군상만큼 복잡한 조각을 만들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콘 군상을 접한 후 58년간 조각상을 몇 개 완성하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이 작품들의 완성도는 초기 작품인 피에타와 다비드에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거대한 대리석 작품 대부분은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전재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의 가능성과 오류가 고의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젊은 미켈란젤로의 흔들렸던 자신감은 프레스코화 작업을 하며 회복됐다. 1508년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가 그 시작이다. 그가 천장화 작업을 끝마쳤을 때, 그는 지난 1500년간 가장 중요한 상징적 이미지 중 하나를 구현해냈다. 아담을 창조한 신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한번 시스틴 천장화를 볼 기회가 있다면, 죽음을 표현한 강렬한 조각상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길 권한다. 그리고 난 뒤 아름다운 그림이 어떤 영감을 받아 탄생했는지 관찰하길 바란다.
글=매튜 제임스 콜린스
매튜 제임스 콜린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 중인 미국 출신 미술가로 주로 유화, 프레스코화, 대리석, 청동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