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얘기125-기타)1986년도.병인년편
86학번 정미생들. 농구는 강동희는 중대로, 강양택.유도훈은 연대로 간다. 야구는 박동희와 김경기가 고대로 가면서 전성기를 가져온다.
학력고사는 공동수석인데 경제학과로 간 숭실고의 오석태와 물리학도 경성고의 이준걸이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멸망케 한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내린다.조선도 거의 노론천국이 된다.
1626년 청누르하치가 죽고 미국이주민이 맨해턴을 24달러에 산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조선전기가 끝난다.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1206년 테무친이 몽고를 통일하고 징기스칸으로 불리운다.
1146년 고려 인종이 죽고 의종이 즉위하여 무신이 강화되기 시작한다. 고려말기로 들어간다
1086년 왕안석신법을 추진하던 신종이 죽자 이듬해 왕안석도 죽어 송나라도 망조가 든다.
846년 장보고가 죽자 신라의 재해권이 사라진다
726년 부여의 후계국이 발해에 망한다.
306년 서진의 혜제가 죽자 망조가 든다.
146년 후한 순제가 죽자 환관이 강화되어 망조가 든다.
6년 왕망이 전한평제를 독살한다고 나온다.
1986년엔 한창 데모할 무렵인데
스트레쓰 풀기 영화 보기로 딱 좋은 영화가 인디아나존스와 비행기영화 였다.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존슨 영화로 세계적인 스타로 알려진다.
1942년 7월 13일생으로 유대인 계열의 미국인이다. 1966년 《LA 현금 탈취 작전》으로 데뷔했다. 초기에만 해도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하여 별로 인기있는 배우가 아니었고, 목공 일을 부업으로 하면서 근근히 입에 풀칠은 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조지 루커스의 눈에 띄어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한다. 첫 등장은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한 솔로 역으로, 한 솔로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엄청난 부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 '젊은 오빠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며 대스타가 되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어 루카스 필름의 신작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주역을 맡게 되어 더 유명해졌다. 인디아나 존스 역의 인상이 너무 강한 통에 현재 포드의 이미지와 상징은 인디아나 존스로 꼽힌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데커드 역을 맡았다.
할리우드 최고 스타 중 한 명으로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외에도 수많은 히트작들(에어포스 원 (영화) )이 있으며, 한 솔로와 인디아나 존스의 이미지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포드 본인은 이 두가지 만으로도 크게 만족하는 것 같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새로 찍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몸까지 만들고 준비까지 다 마칠 정도로 자신은 인디아나 존스를 좋아하는 듯하다. 어쨌건 신작인 4편에서 60세가 넘은 나이로 그대로 주연으로 등장하였고, 배역을 전혀 무리없이 소화해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만 39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세계 총액은 60억 달러를 넘겨 미국 영화사상 4번째 흥행 배우로 등극했다. 에서 꼽은 100대 영화 스타 중 1위를 기록하였다. 2010년, 코미디 앨리 맥빌에 출연한 캘리스터 플록하트와 결혼했으며(세번째 결혼), 총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
2014년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 작품 촬영 중에 발목과 골반에 골절상을 입고, 이듬해 3월엔 비행기 경착륙(hard landing)으로 다시 골반 골절을 당했다.
#<인디아나존스>
<레이더스>의 전세계 폭발적인 흥행으로 제작자,감독,배우가 다시 의기투합해 1984년 속편을 제작했다. 전편 <레이더스>와 마찬가지로 007시리즈처럼 화려한 신무기들은 없지만 아날로그적 스피드와 액션을 최대로 끌어올려 숨막히는 액션을 보여준다. 3년후 제작된속편은 속편답게 전편을 넘어서기위해 몇배는 더커진 세트와 규모 영화는 잔인해지고 분위기는 음울해졌다.
제작비 : 약 2800만 달러
수익 : 179,870,271 달러(미국 국내 수입)
333,000,000 달러(해외 수입)
♧ 한국에 8번 방문을 하는 톰 크루즈도 탑건 출연으로 대스타가 되는 초석이 된다.
톰 크루즈는 14세 때 프란체스코 신학교(Franciscan seminary)에 다녔는데, 그의 장래 꿈은 사제(司祭)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개런티가 높은 배우 중 한명이 됐다. 톰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연기에 관심을 갖고 18세 때 뉴욕으로 가서 연기경력을 쌓았다. 그러다가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 감독이 연출을 맡은 <엔드레스 러브>(Endless Love, 1981)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데뷔를 했다.
톰은 1981년 아직 신인일 때 <생도의 분노>(Taps)라는 사관학생들의 분규를 다룬 영화에서 과격파 학생지도자의 역할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위험한 청춘>(Risk Business, 1983)이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흥행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미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토니 스코트(Tony Scott) 감독의 <탑 건>(Top Gun, 1986)이 빅히트를 치면서부터였다. 이 영화를 계기로 항공대에 입대하려는 젊은이들의 지원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어쨌든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이후 스타시스템의 제1인자(top gun)가 될 터였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톰 크루즈의 인기는 주로 그의 수려한 외모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도 ‘미남 청춘스타(pretty boy)’라는 것이 전부였다. 말하자면 그는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톰은 아카데미와는 아직 인연이 없지만, 골든글로브(Golden Globe)에서 최우수남우주연상을 세차레나 받았다. 1990년 <7월 4일생>(Born on the Fourth of July), 1997년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그리고 2000년 <매그놀리아>(Magnolia)로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탑 건>의 대성공 이후 톰 크루즈의 연기력이 인정을 받게 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과 공연하여 호평을 받은 배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맨>(Rain Man, 1988)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반전영화 <7월 4일생>(Born on the Fourth of July, 1989) 등과 같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그는 출중한 외모에 탁월한 연기력까지 갖춘 더할 나위 없는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톰 크루즈의 물오른 연기력은 롭 라이너 감독의 <어 퓨 굿맨>(A Few Good Man, 1992)이라는 영화에서 절정에 달한다. 해병대 병영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맡아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하는 해군 법무관 다니엘 캐피 중위 역을 맡은 톰 크루즈의 존재는 정의의 화신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그가 갖고 있다고 여겨진 이지적(理智的)인 이미지가 극중 배역과 너무나도 적절하게 융합한 결과였다.
YouTube에서 '[옛날TV] 영화 '탑건'ost .' 보기
https://youtu.be/4JTuot3vc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