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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의 스타는 준우승팀인 대만의 라뉴 베어스였다. 일본의 한 기자는 라뉴를 가리켜 “아시아 야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이라며 극찬하기까지 했다.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재미를 팬들에게 선사했다는 뜻이었다. 불행히도 현재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 야구는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진정 어떤 야구가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 그 길을 찾아 봤다.
“일본에서도 역시 축구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1월 9일 도쿄돔에서 만난 야나모토 모토하루 씨는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최고의 야구주간지 <슈칸베이스볼>의 편집장이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게 심상치 않았다.
“일본의 국민스포츠였던 야구의 자리에 축구와 골프가 밀고 들어왔다.” 야나모토 씨의 말마따나 일본에서 야구는 어린이들에게 더 이상 꿈을 주지도 않고 국민스포츠로서의 위상도 잃어가고 있다.
서점가를 둘러보면 더 잘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일본 서점의 책장에 야구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리고 야구책을 자신의 책장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축구서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무래도 A매치의 영향이 크다.” 일본 종합스포츠 격주간지 <넘버>의 주요 컬럼니스트인 하세가와 쇼이치의 분석이다. 국가대표팀 간의 빅매치가 자주 벌어지는 축구가 자국리그에서만 경기를 갖는 야구에 비해 국민적 관심도가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공동개최하며 축구 특유의 내셔널리즘을 경험한 바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가. 야구도 A매치가 자주 벌어진다면 축구가 보여주는 건전한 내셔널리즘의 재미를 팬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세가와 씨의 야구부흥에 관한 대안을 듣자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세가와 씨와 같은 견해를 긍정적으로 수용해 창설한 대회가 바로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다. ‘아시아 야구의 세계화’를 목표로 만든 대회지만 국가대항전의 성격을 띠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조가 주는 교훈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여기저기서 야구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일본야구계는 어떻게 위기를 돌파하고 있을까.
홋카이도 지역의 스포츠일간지 <도신스포츠>의 시노하라 마사토 기자는 “올시즌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니혼햄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에게서도 답을 찾지 못하는 마당에 인기없기로 유명한 니혼햄에게서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시노하라 기자는 단호한 어투로 “니혼햄 모델을 따라야만 한다”고 했다.
니혼햄의 전담기자이기도 한 시노하라 기자는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이전하기 전까지의 니혼햄은 형편없는 팀이었다.
요미우리와 함께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때에는 1만 명 이하의 관중이 대부분이었고 4천 명 이하의 관중이 들어올 때도 많았다.
그런데 홋카이도로 가자마자 갑자기 관중이 4만 명 이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사실이다.
물론 홋카이도에 프로야구 팀이 없었던 까닭도 있다.
야구를 직접 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던 홋카이도 지역민들이 니혼햄의 연고지 이전 후 야구장에 수없이 몰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바로 신조 쓰요시다.
2004년 니혼햄에 입단한 신조의 눈부신 퍼포먼스가 니혼햄의 홈구장 삿포로돔에 관중을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
만약 신조가 니혼햄에 입단하지 않았다면 니혼햄의 우승은 물론이려니와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누가 곤돌라를 타고 외야에 등장하고 옷깃이 달린 유니폼 윗도리를 입고 나오겠는가.” <홋카이도 TV> 스포츠부 모리야마 유지 기자의 생각도 같았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과거 센트럴리그 한신이나 메이저리그 시절에는 어째서 신조가 이런 이벤트를 펼치지 않았을까.
모리야마 기자는 “한신과 같이 전통 있는 팀에서는 신조가 이벤트를 펼칠 수도 없었겠지만 설령 펼친다 해도 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을 것이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야구를 직접 가서 보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신조가 하는 퍼포먼스조차 ‘이게 당연한가’ 싶어했다”며 크게 웃었다.
어쨌거나 신조의 퍼포먼스는 홋카이도를 넘어 일본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야구인기를 회복하는 데 호재로 작용했다.
시노하라 기자는 “공격야구니 수비야구니 하는 팀색깔이 야구인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며
“요즘 야구팬들은 야구 이상의 무엇인가를 보길 원한다.
어차피 마쓰자카 다이스케나 우에하라 고지, 이승엽 등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실력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관중의 마음을 끌어올 때만이 야구의 미래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화끈한 공격야구로 팬을 즐겁게 하라
대만프로야구는 계엄령 해제라는 자유주의 분위기에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대만프로야구를 낮은 수준의 리그로 보지만 실력이나 노력으로만 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대만직업봉구연맹(CPBL)은 1990년 프로리그 출범 때부터 외국인선수제도를 도입했는데 1989~1990년 트라이아웃을 거쳐 더블A 수준의 외국인선수 16명을 받아들였다.
이는 한국보다 8년이나 빠른 것이다. 1
991~1993년 3년 연속 LA 다저스를 초청해 친선경기를 치르며 야구 인기를 확산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이번 코나미컵에서 증명됐듯 수비나 투수력, 공격력 모두 한국과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만야구에도 두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첫 위기는 1992년에 시작됐다. 1992년 6,878명이던 평균 관중이 1996년에는 4,548명으로 내려가고 1998년에는 1,786명으로 급감했다
. 이유는 있었다. 팀당 외국인선수가 10인(1997년)으로 늘어나며 국내 스타 기근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외국인선수의 비중이 무려 51%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위기는 1997년에 터진 도박 스캔들이었다.
선수들이 경기 결과에 거액의 돈을 건 조직폭력배와 짜고 승부를 조작한 사건이 일어났다
. 이 사건은 급기야 대만프로야구계의 내분을 불러 일으켜 가뜩이나 작은 시장에 2개 리그가 생기는 비극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2003년에 단일리그로 통합되며 시즌 1백만 명이 넘는 폭발적인 관중동원을 할 수 있었다.
도박으로 얼룩졌던 상처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CPBL 리처드 왕 국제부장은 “구단에서 철저하게 선수들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하고 정부기관에서 프로야구계를 감독하면서 야구도박은 이제 옛말이 됐다”고 단언했다.
<차이나 타임스>의 쿠오칭창 기자는 코나미컵에 출전한 자국팀 라뉴 베어스가 “대만 야구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 “대만은 성적만 좋으면 팬을 그러모을 수 있다. 만약 A팀을 응원하다가도 B팀이 잘하면 금방 B팀을 응원한다”며 “그러나 재미난 야구를 하는 팀에는 더 많은 관중이 몰린다”고 덧붙였다.
라뉴는 성적이 좋아 단시간 내에 많은 팬을 모으기도 했지만 ‘보여주는 야구’ 즉, 공격적 야구가 많은 팬들에게 어필했다는 평이 많다.
CPBL에서 유명한 포수였던 라뉴의 홍이충 감독의 야구철학은 “야구는 관중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표현의 스포츠”라는 것이다.
수비와 투수력으로 버티는 야구스타일이 승리를 가져 올 수는 있겠지만 팬을 관중석에 앉힐 수는 없다는 게 홍감독의 생각이다.
라뉴가 첸진펑과 린즈셩 등 훌륭한 거포들이 있어 공격야구를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홍감독은 이미 공격야구를 지향하기 위해 젊은 타자들을 2~3년 전부터 육성해 왔다.
코나미컵에서 맹타를 휘둘렀던 린즈셩이 대표적이다.
홍감독은 “나라마다 야구스타일이 다르기에 뭐라 할 수 없지만 라뉴는 언제까지나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는 호쾌한 야구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그러다 부진한 성적으로 해임되면 어쩌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양쪽 어깨를 들썩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야구에서 영원불멸의 법칙은 수비를 보는 즐거움보다 홈런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이다. 그게 보기 싫어지는 시대가 오면 내가 먼저 옷을 벗겠다.”
한국프로야구의 철학은 무엇인가
한국은 일본, 대만과는 다른 야구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야구인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만은 다르지 않다.
지금이라도 고민을 하지 않으면 언제 닥쳐 올지 모르는 ‘야구 빙하기’를 무방비 상태에서 겪고 말 것이다. 일본과 대만 야구 관계자들이 말하는 모델은 그들만의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의 모델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코나미컵에서 삼성은 애초 바람과는 달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야구는 10번 타석에 들어서 3번만 안타를 치면 환영받는 스포츠이기에 패배에 대해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늘 지면 내일 이길 수 있는 게 야구다. 그러나 정작 많은 야구팬들이 삼성에게 다소 실망한 이유는 그들이 4개 팀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국내리그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끝나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곤했던 것만은 사실이었지만 야구는 선수들을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선수도 관중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또한 많은 돈을 들여 아시아 야구의 중흥을 시도해 보자고 팔을 걷어붙였던 일본야구계나 자국리그가 끝난 이후에도 열정을 다해 훈련을 거듭했던 대만야구계에게 파트너로서의 예의도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왜 피곤하지 않았겠나.
어쩌면 삼성 선수단이 코나미컵 대회 내내 보여준 태도는 ‘야구발전 모델’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저 팀 우승에만 연연해야 하는 국내야구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지 모른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팬서비스에 대해서는 ‘귀찮다’는 생각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팬들이 선수단을 향해 “야구 보기 귀찮아 죽겠다”는 말을 내뱉으며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한국과 일본, 대만은 모두 같은 배를 탄 신세다. 지금 그 배에는 물이 차고 있다.
SPORTS2.0 제 26호(발행일 11월 20일) 기사
도쿄=박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