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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의 대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존 맥스웰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저서 가운데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격려’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세상에서 우리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을 네 종류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첫째는 인생에 무엇인가 더하는(+)사람들입니다.
이 부류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들어주고, 부족을 채워주고, 친구가 되어 주는 일을 의도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줍니다.
두번째는 인생에 무엇인가를 빼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마이너스의 사람들이라 합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심결에 자기를 주장하고 상대에게 짐을 지우고 무겁게 하고 힘을 빼어냅니다.
세번째는 인생에 무엇인가를 곱하는(*)사람들입니다.
곱하는 인생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다른 사람의 비전을 분명하게 세워주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격려입니다.
네번째는 인생에 무엇인가를 나누는(%)사람들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끄집어 내려서 상대를 궁지에 빠뜨리므로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는 사람입니다. 남을 적극적으로 해치려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는 베냐민 지파의 사울 청년은 다행스럽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위 더하는 사람들, 곱하는 사람들이 붙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어떻게 이끌어 갔습니까?
갑자기 아버지 기스 집의 중요한 재산인 암나귀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기스는 암나귀를 찾도록 사울에게 종을 붙여주었습니다. 사울은 종과 함께 이곳 저곳을 찾아 헤메였지만 네 발 달린 짐승인 나귀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았고 찾지를 못하여 지쳐갔습니다.
이때에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믿음이 있는 종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을 만나서 나귀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자”고 조언을 했습니다. 사울은 종의 조언에 따라서 선지자를 만나러 가는 가운데 마침 물을 길으러 나온 처녀를 만나 선지자가 성소에 방금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성소에 있는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기까지 사건사고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버지 기스에게 암나귀를 잃어 버린 사건, 나귀를 찾으러 갈 때에 함께 했던 신앙적인 종, 길가에서 우연하게 만난 물 길으러 나온 처녀 – 이 모든 일들은 우연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계획하셔서 이끌어 주신 사건 사고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계획하심 가운데 사울의 처신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부분을 또한 생각하게 합니다.
(1)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게 합니다.
(2) 잃은 나귀를 찾지 못하자 집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염려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게 합니다.
(3) 나아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종에게 말했을 때에 하나님의 선견자를 만나보자는 제안을 받아드리는 겸허한 마음, 자기의 고집과 생각을 바꿀 줄 아는 온유한 심령의 소유자였습니다.
(4) 하나님의 종을 만나러 갈 때에 빈손으로 가는 것을 염려하는 예의를 차릴 줄 아는 그런 모습을 우리는 사울에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5) 그런가 하면 사무엘 선지자가 “당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하는 그 사람이요”라고 했을 때에 자기를 낮추어서 “나는작은 베냐민 지파 소속이요, 그 지파에서도 작은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사울을 하나님의 분부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일들을 진행시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성소에 딸린 객실에 성읍의 유력한 인사 30명을 초대한 자리에 사울과 그 종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22)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상석에 앉도록 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이리저리 찾아다니면서 먼지 쌓이고 얼룩진 옷을 입은 꾀죄죄한 청년과 종을 상석에 앉게 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그런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 쭈뼛쭈뼛하면서 굉장히 힘들어 했을 것 같습니다. 사울도 아마도 성읍의 원로들, 유력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그것도 상석에 앉게 되어 상당히 힘들어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선지자 사무엘의 배려이니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식사 연회를 준비시키면서 고기의 넓적다리 부분을 따로 보관하도록 미리 지시한 것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화목제 제물을 드릴 때에 제물의 넓적다리 부분은 제사장들의 몫으로 좋은 부위로 여겨졌습니다(출 29:26-28).
그 좋은 부위를 가져다가 사울 앞에 두게 하고서 먹게 했습니다. 최고의 대우를 했습니다.
왜, 선지자 사무엘은 사울을 정성을 쏟아 높은 자리에 앉게 했을까요? 왜, 가장 좋은 부위의 고기를 따로 준비해서 먹게 했을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단순히 키 크고 건장한 잘 생긴 청년이 받기에는 너무나 황송한 대접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암나귀를 찾아 다니는 평범한 청년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꾀죄죄한 모습인 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스라엘이 왕정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명령하셨고, 왕을 세울 것을 말씀했기에 순종으로 나아갔습니다. 참으로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한 사람이기에 당연히, 마땅히 그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드렸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날은 권위가 무너지는 시대라고 합니다.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개혁적인 인물로, 깨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주어진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빠지므로 그 반대급부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권위에 대하여 존경과 인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보십시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므로 부모의 권위를 드러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공경하는 것은 과거의 낡은 관습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권위를 세워 주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국가와 정부의 지도자와 관리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여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권위는 세속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위입니다.
제 모교회에 배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어르신에게 두 아들과 일곱 딸이 있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중에 둘째 딸 배진옥이가 제 동기 동창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서 모교회의 교육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배 장로님은 자건거를 타고 교회를 가다가 가끔식 저와 마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면 딸의 친구인 저에게 손을 들어서 표시를 하고 그냥 지나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배 장로님은 자전거에서 내려서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셨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저에게 굉장히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교회의 청년 한 사람으로, 딸의 친구로 대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를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전거에 내려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어리고 부족한 저를 교역자로 예의를 갖추어 주셨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갔지만 그 어르신이 기억됩니다.
사무엘과 같이 위대한 선지자라도, 시골 청년 사울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켰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목사나 직분자에게도 그 사람 자체가 위대해서 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고 따라야 합니다. 부족함이 드러날 때에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우리 성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존경하고 높여야 합니다. 모두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쓰시는 종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겸허하게 존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무시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젊은 사울을 극직하게 대우하여 성읍의 원로들과 유력자에게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25)
사무엘은 성읍의 유력자들과 잔치를 끝나고 산당에서 내려와서 사울을 위해 좋은 곳에 잠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담화를 했을까요? 이때에 두 사람의 대화는 아마도 사무엘의 주도로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선지자 사무엘은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사로써 이스라엘에 대한하나님의 통치를 했던 일들, 그리고 왕정이 실시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 지금의 이스라엘 상황과 주변 이방 나라와 관계, 또 이스라엘 민족이 나아갈 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기 위해 진행하면서 사울을 왕으로서 가져야 할 자질을 갖출 수 있는 과정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직분을 세울 때에도 그렇습니다. 경솔하게 하지 않도록 교회는 교회법과 규칙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장로와 권사 그리고 집사를 세울 때에 대충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장로를 세울 때는 당회의 결의와 노회의 허락을 얻어서 합니다. 교회는 공동의회를 통해서 교회 회원의 2/3를 득표를 얻도록 합니다.
장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헌법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 35세 이상 65세 이하의 남자 세례교인으로 무흠하게 7년을 경과한 자
(2) 신앙과 행위가 복음적이고 본이 되는 자
(3)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는 자
(4) 공적, 사적 생활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
(5)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6) 성품이 원만하며 덕망이 있는 자(딤전 3:1-7)
(7) 본 교회에 등록한 후 3년 이상 경과된 자
이런 자질을 갖춘 사람을 선출되었으면, 교회는 노회에 보고를 합니다. 그 다음에 담임목사는 최소한 6개월 동안 피택된 자를 교육합니다. 그리고 노회 장로 고시를 치루고 패스하면 장로로 안수를 받게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교회 지도자는 많은 대화와 교육을 통해서 장로 직분과 직무 그리고 섬김에 대해서 깨닫아가게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조만간에 장로 피택을 위한 공동의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지붕에서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로 하여금 종을 먼저 떠나 보내게 합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27절 중간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사무엘 선지자와 사울이 다시 독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무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40일 금식 후에 마귀가 인간 예수님에게 시험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취약한 상태를 꿰뚫어 보고는 “돌로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마 4:4)
예수님은 구약 신명기 8:3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과 사울은 독대했습니다. 함께 하는 종(사환)을 떠나 보내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
말씀이 내면화 되고, 말씀이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의 다섯 손가락을 기억하십시오.
듣기, 읽기, 묵상하기, 공부하기, 암송하기
그 중에 제일 기본 되는 것이 ‘듣기’입니다. 예배시간에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어옵니까? 그 말씀이 마음으로 파고 듭니까?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려와야 합니다. 설교를 잘 듣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사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 안되면 교회생활이 힘이 듭니다.
한 주간을 규모 있는 생활을 하시되 주일 예배를 위해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생활을 정리해야 합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분주한 우리의 걸음을 멈추고 규모있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말씀묵상을 매일 하고 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바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말씀 앞에 독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십시다.
사무엘선지자는하나님의계획하심가운데사울을만나기름을붓기전에
(1) 그를 성읍의 원로들 앞에서 왕으로서 은밀하고 극진한 대우를 했으며,
(2) 밤 늦도록 대화를 나누며,
(3) 기름 붓기 전에 독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향한 개개인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선지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매일 매일에 분주한 삶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리며 순종으로 나아가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찬송 / 주의 말씀 듣고서 204, 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