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卐과 卍 ~ 길상과 만덕의 표징

[유정해원명심]

목차

1. 卐과 卍 - 길상만덕의 충만함
2. 불교미술에 나타난 卐문양

‘┼’이 기독교의 상징이라면 ‘卐’은 불교의 상징이다. 사찰 건물에 불교의 상징으로 가장 흔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밖에 건물의 서까래와 기와, 탑비의 귀부(龜趺), 불화 등 여러 방면에 나타나 있다.

卐은 범어(梵語)로 스바스티카(Svastika)라 하며, 원래는 글자가 아니라 상(相)이요, 상징형이다. 이 상징형은 중국에서 ‘卍’이라는 글자로 개창(改創)되기 이전부터 고대 인도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그리스 등 여러 국가의 장식미술에서 사용되었으며, 브라만교와 자이나교 등에서도 이 문양을 사용해왔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신의 가슴에 있는 선모(旋毛)에서 발하는 서광(瑞光)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한편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슴과 발 등에 나타나는 이 문양을 ‘상서로운 상(相)’ 곧 길상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동시에 부처의 경지를 나타내는 불심인(佛心印)으로도 사용하였다.

卐과 卍 - 길상만덕의 충만함

십자형을 기본으로 하는 卐은 동·서·남·북의 상징에 오른쪽으로 도는 운동적 요소를 가미한 형태이다. 십자형의 네 가지[枝]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구의 한끝에서 다른 끝으로 옮겨가는 태양의 궤적에 따라 공간이 분할된다는 사실이다.

석남사 영산전 단청의 卍문양단청 문양으로 자주 등장하는 卍문양은 글자이기 전에 일종의 상(相)이요, 상징형이다.

고대인들은 도시나 궁성을 세울 때 남북 축선상에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남북과 동서에 각각 성문을 열고 사대문을 갖추어 십자의 형태를 취하였다. 그것은 우주 원리에 따라 하나의 소우주로서 인간의 자리를 창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에 사문유관(四門遊觀)¹⁾ 한 행위는 지구상에 창조된 소우주를 편람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卐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가로로 한 번 그은 선은 삼세(三世)이고, 세로로 그은 것은 시방[十方]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는 무형적인 시간이고, 시방은 방위적인 공간이다. 이때 공간은 평등이고 시간은 곧 차별이다. 그래서 卐은 일심(一心)의 덕(德)이 삼세시방을 관통해서 종횡무진한 것을 나타낸다.

또 석가모니 부처가 녹야원(鹿野苑)에서 행한 설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卐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에 예배 대상의 하나였던 바퀴 모양의 법륜(法輪)을 도식화한 것이라고도 한다. 바퀴살의 모양을 형상화한 데서 생겨났다는 이야기이지만, 이 견해는 불교 성립 이전에 그리스나 페르시아 등에서 이미 이 문양을 사용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신빙성이 약하다.

卐이 오른쪽으로 도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우주와 태양계의 회전 운동에 동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도는 우선(右旋)을 우주 자연의 정상적인 운동 원리로 여겼으며, 그 반대 방향 즉 좌선(左旋)을 우주 질서를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배척하였다. 탑돌이를 할 때 우요삼잡(右繞三匝)이라 하여 탑을 중심에 두고 시계 방향인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절을 하는데, 이는 우주의 운행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예이다.

한편 부처가 전생에 선한 업을 쌓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특수한 32길상(吉相) 80종호(種好)를 갖추었다고 하는데, 그 32길상 가운데 백호상(白毫相)이 있다. 백호상의 요체는 부처의 눈썹 사이에 흰 털이 하나 나서 오른쪽으로 말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80종호에서도 신체의 털이 모두 오른쪽으로 말려 올라간다고 했다. 이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주의 순행 원리에 부합하며 길상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엄경음의』(華嚴經音義)²⁾에서도 오른쪽으로 도는 형상을 설명할 때  모양으로 표시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 장수(長壽) 2년(693)에 불교의 길상상(吉祥相)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卍 모양의 글자를 만들어 정식 문자로 채택하였으며, 만덕(萬德)이 모였다는 뜻을 새겨 ‘萬’자로 읽었다. 『화엄경음의』에서는 卐이라는 길상상의 상징 의미를 卍으로써 설명하였는데, “卍은 그 발음이 만(萬)이며, 길상만덕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말한다”(卍音之爲萬 謂吉祥萬德之所集也)고 해석하였다. 결국 卐은 만상(萬相)이 원만(圓滿) 유전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길상의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경』(華嚴經)³⁾ 권48에서도, “여래의 가슴에 상(相)이 있다. 이 형상은 卍자와 같다. 이를 길상해운이라 한다”(如來胸臆有大人相 形如卍字 名吉祥海雲) 하였다. 또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는, “卍자의 상은 금강견고의 빼어난 갈무리처로서 마음을 장엄했다. 일체의 모든 마귀가 온다 할지라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卍字相 金剛堅固勝莊嚴心 一切衆生數等魔來乃至 不能動一毛)고 했다. 한편 중국 후진(後秦) 때의 인도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과 당나라의 승려 현장(玄裝, 602~664)은 卐을 ‘德’자로 해석하였으며 길상해운, 유락(有樂), 경복(慶福), 행운(幸運)의 의미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卐을 부처와 보살로서는 최고 경지에 도달한 자인 십지보살(十地菩薩)의 가슴에 생기는 길상상이라 하였으며, 소승불교에서는 부처의 가슴에만 생기는 한정된 것이 아니라 부처의 경지, 즉 불심인 그 자체라고 하였다.

한편 중국 민간에서는 卍자를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 천지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자로 간주하였다. 중국 먀오족(猫族)의 풍습에서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수차(水車)의 모양을 닮은 卍자를 풍농을 가져다주는 주술의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 생활 장식문양으로 널리 사용하였다. 특히 주택의 창살문양으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길상만덕이 실내에 충만하기를 바라는 세인들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불교미술에 나타난 卐문양

불족도에 나타난 卐과 卍엄지발가락을 뺀 나머지 발가락에 문양을 표현하였다. 향해서 왼쪽 발가락에는 卐문양이, 오른쪽 발가락에는 卍문양이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卐문양의 역사는 매우 길다. 가장 오래된 예로는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하기 직전에 남겼다는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에 있는 족적(足跡)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紀)⁴⁾에 의하면 탑 부근의 정사(精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돌에 부처님의 족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삼장법사 현장이 친히 이 족적에 예배하고 스스로 본을 떠서 중국에 가져왔으며, 지금은 산시성(陝西省) 방주(坊州)에 있는 옥화산(玉華山)의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부처님의 족적에 표현된 다섯 발가락과 발바닥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卐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후에도 卐문양은 불교미술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인도 쿠샨왕조 때의 아마라바티(Amarāvati) 조각과 마투라 조각의 불공양제물 등에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굽타왕조 때 만들어진 아잔타석굴의 불족도(佛足圖)와 벽체나 기둥에 새겨진 조각, 불화의 배경 장식문양에도 卐문양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고려시대 불화에서 卐문양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삼존도〉에는 부처의 가슴 부분에 卐문양이 나타나고, 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의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2의 표지에도 卐문양이 보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 있는 고려시대 불화 가운데 교토 치온인(知恩院) 소장의 〈미륵하생경변상도〉와 도카이안(東海庵)에 있는 〈아미타여래도〉, 그리고 도쿄의 일본은행과 네즈(根津)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여래도〉 등에서도 卐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불화에 보이는 卐문양 역시 우선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아미타여래도(좌)와 미륵하생경변상도(우)의 卐문양

부처의 가슴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卐문양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부처의 경지, 즉 불심인을 나타낸다. 일본 네즈미술관(좌)과 치온인(우) 소장.

하지만 이런 추세에서도 원주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의 귀부와 봉화 각화사의 고려시대 귀부에서처럼 좌선하는 형태의 卍문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원공국사승묘탑비에는 두 가지 형식의 문양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 귀부의 卍문양이 귀부에는 좌선과 우선의 두 가지 형식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사진의 것은 왼쪽으로 도는 卍문양이다.

조선시대의 것을 예로 들면, 예천 용문사 대장전에 걸려 있는 목각탱화 액자의 상단 부분에 우선하는 卐문양이 하나 새겨져 있다. 또한 영주 부석사 소장의 괘불에는 좌선하는 卍문양이 석가모니 부처의 가슴에 있으며, 구례 천은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 돌절구에 새겨진 문양도 같은 형태이다.

묘법연화경 변상도의 卐문양부처의 가슴에 오른쪽으로 도는 卐문양이 보인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용문사 대장전 목각탱화액자의 상단 부분에 우주 자연의 정상적인 운동 원리에 순응하는 의미를 지닌 卐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고려시대 불화에는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간혹 귀부 등의 석조물에서 좌선하는 형태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좌선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우선하는 형태가 혼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혼재 현상은 고성 건봉사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회전 방향이 각기 다른 문양이 한 곳에 병존하는 특이한 사례로, 왼쪽 기둥에는 좌선하는 卍문양이, 오른쪽 기둥에는 우선하는 卐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건봉사 돌기둥의 卐과 卍

회전 방향이 각기 다른 문양이 한 곳에 병존하는 특이한 사례로, 왼쪽 돌기둥(좌)에는 좌선하는 卍문양이, 오른쪽 돌기둥(우)에는 우선하는 卐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근년에 지은 사찰에서는 우선하는 卐문양이 시문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좌선하는 卍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축한 사찰 건물 지붕의 합각(合閣) 부분이나 서까래 마구리에 그려진 것은 물론이고, 종단에서 불교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표지(標識) 역시 卍문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원래 길상 상징으로서의 卐문양이 동일한 뜻을 지닌 한자의 卍자와 함께 혼용되어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卍자로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불국사 대웅전 합각벽의 卍문양삼보문양과 함께 왼쪽으로 도는 卍문양을 그려놓았는데, 오늘날의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각주

1. 1 사문유관: 석가모니가 아직 태자로서 가비라성에 있을 때, 놀러 나갔다가 동문 밖에서는 노인을, 남문 밖에서는 병자를,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북문 밖에서는 출가 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탈하기 위해 출가 수도할 뜻을 품었다는 고사(故事).
2. 2 화엄경음의: 당나라 승려 혜원(慧苑)이 편찬한 책으로, 본명은 『신역대방광불화엄경음의』이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즉 신역 80화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정리한 용어해설집이다.
3. 3 화엄경: 본명은 『대방광불화엄경』이며, 동진의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60권과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80권, 그리고 반야(般若)가 번역한 40권이 각각 전한다.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뒤, 27일째 되던 날에 법계(法界) 평등의 진리를 증명하고 깨달은 부처의 만행과 만덕을 받들어 칭송한 경문이다.
4. 4 대당서역기: 당나라 승려 현장이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쓴 견문록. 각지 불교의 상황과 지세(地勢), 제도, 풍속, 산업 등을 기술하고 불타(佛陀)시대의 역사적인 전설을 기록한 불교의 근본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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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심님, 감사합니다.
사진이 하나도 안 보여서 시간이 지나면 보일란가?했는데 계속 안보이네요.
절무늬(제맘에)가 보이면 그냥 볼 줄만 알았지 그 뜻이랑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재밋게 읽었습니다.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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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해원명심]

우담바라님께서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이미지 위치를 클릭하니 보이네요!"

[甘露華]

아~그렇군요. ㅎㅎㅎ 잘 봅니다.
네이버에서 와서 그러네요.
이래서 계속 배우고 또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