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 복음 묵상 (마르 1,40-45) (이근상 신부)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마르 1,40-42)
짧고 단순한 치유 기적이지만 힘이 넘치는 이야기다. 먼저 41절에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로 흔히 번역한,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단어가 있는데, 몇 몇 주요 수사본에는 '화를 내다'란 단어가 쓰인다. 해서 몇 몇 현대성경에서는 화를 내셨다로 번역한다. 우리나라 주교회의에서 번역하여 내놓은 주석도 같은 내용을 전하는데, '... 본디는 이 ‘가엾은 마음이 들다’ 동사가 잘못 쓰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겨진다.'고 주석하였다. 그러니까 이 장면이 누군가 찾아와 할 수 있다면 고쳐주십사 청하였을 때, 달달한 모습으로 가여워하며 고쳐주시는 것과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화를 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 나병이라는 더러움 낙인이 찍힌 이를 보며 그 처지에 분노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복음의 번역처럼 가엾은 마음에 북받치신 것이기도 하고... 여하튼 예수님은 고통 속에 있는 이 곁에서 격정 속에 계셨다.
그리고 그 격정은 예수님의 다음 행동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모세의 율법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행위; 더러운 병에 걸린 이에게 손대지 말라는 법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에게 대시며 그를 고쳐주셨다. 굳이.
그리고 깨끗하게 됨.
그러나 세월을 살아내며 얻은 두려움인지, 나는 그의 깨끗해진 피부에 여전히 달라붙어 있을 그의 옷, 피고름이 여전히 배겨있는 옷에 눈이 간다. 그가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것 같다. 우리처럼.
낙인찍힌 이들 앞에서 격동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밤. 그리고 아직 더러운 옷을 걸치고 살아내야 하는 담담한 용기를 주시기를.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mWvD79Eq7SiazM5WpQuZbtFMchvbk7qZvYiwPkmWQDux57rUFST19aEMFDaTW8t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