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사 준비로 바쁜 며느리는 손녀 손자를 할머니한테 맡겼다.
생후 39개월째인 손녀, 24개월째인 손자는 낮에는 잘 놀다가도 밤중이 되면 은근히 제 어미아비를 기다리는 눈치이다. 자꾸만 현관문쪽으로 고개를 기우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눈을 크게 떴다. 조금은 칭얼거리는 눈치이기에 할미는 이 어린 것들을 억지라도 재우려고 거실의 전등불을 껐다.
나는 내 방으로 갔고. 아직은 잘 때가 아니라서 무어라도 해야 했다. 내 방의 컴퓨터는 고장난 지가 오래 되어서 켤 수도 없고. 책꽂이에서 글쓰기 책이나 보아야 했다. 수필 잘 쓰기 책이 수십 권. 요즘 이 카페에서 이름이 오른 한상권 교수의 수필쓰기 책 두 권을 비롯하여 윤재천, 신재기, 정진권 등등의 책을 잠깐씩 읽었다. 그냥 후루룩 수준이다.
수필 잘 쓰기 책의 저자는 이태준, 윤오영, 신상철, 간복균, 김봉균 등 초기의 수필대가 이론책이 더 정감이 간다.
나는 예전부터 딱딱한 역사책, 중국 고전소설, 한 질 십여 권의 대하소설을 읽었지 수필은 읽지 않았다. 내가 수필을 읽기 시작한 때는 오십 살 이후에야 읽었다. 읽었다라기보다는 그때 한창 사이버 세계인 카페가 등장했기에 남의 글을 읽고 나도 글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짧은 글인 수필, 산문을 읽기 시작했다.
간밤에 수필 잘 쓰기 이론책을 보자니 어떤 수필 이론가는 되게 자랑질을 하더라. 신참이라서 그럴까.
수필을 정성들여서 쓴다는 말은 이해하지만 남의 글에 대해서 '신변잡기, 신변잡사, 잡문' 등이라는 용어를 써 폄하한 책들도 있었다. 나로서는 이맛살이 찌뿌려지는 용어이고 인간성이 밥맛인 그들이다. 그렇게 잘났으면 왜 노벨문학상을 이제껏 받지 못했을까에 대한 변명이 곁들였으면 싶다.
나한테는 그 어떤 글도 잡문, 잡글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책 읽기 좋아하는 내가 50대 초반까지는 수필 책을 별로 사거나 직장 도서실에서 빌려 본 사실이 별로였던 것처럼. 그게 뭐 대단해서.
간밤 어떤 교수가 좋은 수필이라면서 예로 든 50명의 이름을 적어서 남녀를 구분했더니만 거의 엇비슷했다. 아무래도 여성 수필가가 더 많다는 사실은 인전해야 할 듯 싶다. 수필이 나긋나긋거렸으니까. 실생활과 동떨어진 온유한 내용이라서 무척이나 니글거렸으니까.
'바쁜 벌은 쉬지 않는다'는 잠언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세상에서 노니는 사람들이나 쓴 글로 여겨졌기에.
이와는 달리 운정 윤재천 교수, 강범우(한국 국보문학 초기의 지도교수 역임) 교수는 '수필 인간학'이라는 용어를 썼다. 맞다. 수필은 인간학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쓴 글을 독자들이 읽어서 따스함을 함께 느끼며 간직하는 것이다.
운정 교수는 수필 잘 쓰기 책을 두껍게 여러 차례나 냈고, 정주환 교수도 두껍게 책을 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고, 최근에 산 곽흥렬 교수의 책은 두께가 적절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후루룩 빠르게 읽는 나로서는 금세 읽을 수가 있기에.
잘난 체를 덜 했으면 싶다.
나는 60여 년째 책 읽기를 좋아하는 책벌레이다. 책벌레라고 해서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다.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잠실부근에는 대형서점이 있다. 교보문고 지점. 몇 년 전에 생긴 반디 앤 루이스 지점, 최근에 생긴 중고서점인 알라딘과 잠실역 8번 출구에 있는 중고서점 등에서 책을 보면 그 엄청난 양과 다양한 분야에 질린다. 더미처럼 진열한 책들이다. 고작 한 두 권씩 진열했는데도 그 종류는 헤아릴 수도 없는 다종다양한 분야에 압도당한다. 이 가운데 문학 책도 있다. 문학 책도 여러 장르이기에 수필은 극히 한 부분이다. 대형서점 전체로 보았을 때에는 문학글 책은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는 딱딱한 책을 보았고, 공부했기에 문학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다만 젊은날 심심풀이로 소설(장편, 대하소설)을 직장 도서관에서 빌려서 제법 보았어도 수필류에는 별로였다. 수필이 아닌 산문형태의 기행문, 역사, 자연지리, 천문학, 농학, 산야초, 논리학 등을 좋아했다. 이들 책이 실용적이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지식과 경험을 간접으로 익힐 수 있다.
나는 이해하기 힘든 수필글보다는 이해하기 산문글을 좋아한다.
실생활에서 쓴 글이기에 진실하고 솔직하고 어떤 경험과 미래의 척도를 얻을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진부한 문학글(수필)이 전혀 아닌데도 문학적인 냄새가 솔솔 난다.
나는 서해안 갯바다에 얼마 안 떨어진 산골이자 농촌에서 자랐기에 갯벌, 해양문화도 즐겨하며, 자연지리와 산야초에도 관심있고, 등산과 여행도 즐겨했다. 여름밤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의 잔치인 유성, 천문학에도 관심이 있고...
아쉽게도 퇴직한 뒤 아흔 살인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이런 책과 취미를 접어고는 텃밭농사만 즐겼다. 덕분에 또다른 글감도 얻었다. 풀과 벌레, 먹을거리, 산야초에도 대한 잡글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
2.
아침에 며느리가 손녀 손자를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오후 네시 반쯤에 데리고 온다면서 데리고 나갔다.
졸지에 아내나 나도 해방이다. 우리가 사는 잠실아파트 부근에 어제 이사왔기에 어린 손녀와 손자하고 자주 만날 수 있다. 손녀는 계집아이라서 그럴까 언어 습득력이 무척이나 빠른데도 손자는 머슴애라서 그럴까 조금은 더디다. 손자는 속은 뻔드름히 있어서 몸짓으로 표현해도 말로는 단어를 어설프게 말한다. 어린애들을 보노라면 언어습득이 인위적이라는 것보다는 자연적으로 보고 싶다.
인위적인 것이 아쉬운 것도 있다. 태어난지 39개월째인 손녀가 숫자를 헤아릴 때 '하나 둘 셋 넷 다섯...'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원 투 쓰리 훠 화브...'라고 말했다. 50살 때까지 영어공부를 했던 나로서는 눈이 똥그랗다. 아무래도 어린이 유아원에서 그렇게 가르치나 보다. 왜 자기 나라 말을 먼저 익혀야 하는 게 아닐까? 숫자 개념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애(젖먹이, 기저귀 수준을 살짝 벗어난 아이)한테 외국어를 먼저 가르쳐 주다니...
손녀는 '영어로 무어라고 말해야 돼?'하고 물었다. 세상에나다. 우리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가 영어로 무어라고 말해야 되느냐고 묻다니... 영어에 서툰 할미나 영어를 접은 지가 이십 년째 가까워지는 할비는 걱정이 태산이다. '몰라'가 유일한 대답일까 싶어서.
어쩌면 과거에는 '한문사대주의', 지금은 '영어사대주의'로 이어가는 듯 싶다.
아쉽다. 제 나라의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한테 벌써부터 사대주의로 길들이는가?
언어습득은 10살 이하에서 얼추 다 형성된다는데 개념없는 유아원일까 의문도 된다.
우리나라 말과 글을 정부차원에서 정립하는 기관이 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국어연구원.
1999년에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하고는 끝났다. 50만 단어에서 4,000여 개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되었다. 이를 수정한 후속 책자를 지속적으로 발간해서 표준국어 언어를 이끌어나가야 하는데도 지지부진하고 있다. 표준국어정책이 어떤 학회의 고집과 편향적인 기준으로 인하여 우왕좌왕하는 꼬라지를 연출하는 듯하다.
아쉽다. 남한에서조차도 이 지경이라면 북한의 언어정책은 또 어떨까 싶다. 남북으로 갈린 지가 70여 년이 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민족의 언어는 자꾸만 이질적인 방향으로 어긋날 것이다.
남북한의 언어뿐만 아니겠다.
남한의 신세대가 주축이 된 언어활동도 그렇다.
이질적인 외국어, 외래어, 신조어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이런 논리의 글을 국어학 전문가나 할 일이고...
잡글 쓰는 나는 잡글 하나라도 제대로 썼으면 싶다. 다다닥하고 빠르게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겨서 생활글이라도 제대로 적었으면 싶다.
나는 내 글을 '수필'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잡글'이라고 부른다. 내 생활에서 건진 글이기에 크게 수식하거나 과장할 것도 없다. 그냥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기 쉬운 우리글로 올바르게 많이 쓰고 싶다'.
곁들여서 수필은 보기 좋고, 이해하기 쉽고, 쓰기 쉬운 말과 글로 썼으면 싶다. 이런 글이라면 나는 기꺼히 즐겨 읽으면서 내 삶을 살찌울 게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손녀손자가 오후 네시 반쯤에 유아원에서 돌아온다니 그 새 중간에 나는 서점에 나가야겠다.
'한국 국보문학' 2017년 12월호가 교보문고 잠실지점에 비치되었는지를 확인해겠다.
점심 뒤 교보문고 잠실지점에서 확인했다.
반갑다.
그런데 왜 잠실 내 집에는 아직껏 우송되지 않을까 의문이다.
배달사고일까? 나중에 국보사무실에 들려서 가슴에 안고 와야겠다.
책방 출입구에서는 한 젊은이가 가만히 서서 고개와 눈을 좌우 상하로 흔들리면 서점 출입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책을 슬적 집어가는 사람도 있단다.
하루 9시간 꼬박 서 있으면 무릎이 엉청나게 아프겠다. 로보트기계처럼 단순노동을 하는 젊은이가 안 되었다. 무릎이 시원찮은 나로서는 힘이 드는 직업이라고 여겼다. 서점에 출입하는 고객들은 책 도둑질을 안 했으면 싶다.
달리 생각하면 책 도둑이 많아야만이 이런 직업도 생기는 것일까?
취업이 힘든 세상에 이런 직종도 있게끔 책도둑질이 성행해야 하나?
또 헷갈린다.
3.
귀가하면서 지하마트 식품점에 들렀다.
그 넓은 식품매장에는 육류와 채소과일류가 엄청나게 진열되었다.
나는 촌사람이라서 그럴까. 육류 비린내에 얼굴을 찡그리고는 곡식 채소 과일전이나 기웃거렸다.
내가 흔히 먹는 식품이다. 호박고구마가 100g 512 ~ 772원, 방울토마토 100g 512원, 애기손바닥만한 들깻잎 7장 550원, 단호박 한 덩어리 3,380원.
세상에나다. 왜 이렇게 비싼 거여? 서해안 텃밭농사꾼인 나한테는 눈알이 돌아간다.
특히나 들깨잎이다. 낱장에 80원이라니... 아무리 겨울철에 나오는 풋잎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그런데도 구매자들은 득실벅실거렸고 종업원도 정신없이 물건을 쟁이고 있었다. 없는 것은 나같은 비리비리한 촌늙은이의 빈 지갑뿐이었다. 동양계의 키 작은 외국인이 제법 많았다. 단체관광을 왔나 싶다.
장사꾼인 남한테 무어라고 탓할 바는 전혀 아니다.
돈 없는 서민인 나를 스스로 반성해야 하니까.
글 나중에 보탠다.
2017. 12. 4. 월요일.
첫댓글 저도 윤재천 수필가(교수 및 한국수필학회장 역임)님한테
수필학 개론과 수필집을 15년 전에 선물 받은 적(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장 재임시)이
있습니다.
운정 윤교수님은 중앙대 문과교수를 역임했다고 하시고 수필 이론 책을 여러 권 냈지요. 두툼해서 좋더라고요.
청바지을 입는 교수의 모습이 수수해서 좋더라고요. 저는 한 번도 뵌 적은 없고, 책 몇 권만 사서 쌓아두고는...
저는 수필은 모릅니다. 수필가들이 냉대하는 잡문도 안 되는 잡글이나 긁적거립니다. 내 삶에서 건져 올린 생활글이지요. 남한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소소한 산문글을 좋아합니다.
저는 50대 이후에서야 잡글 긁적거리면서 수필 쓰기 이론책을 사서 모우기는 했어도 남의 수필 그 자체는 별로입니다.
왜? 잘난 체를 많이 하더라고요. 시골사람인 저한테는 별로... 그런데도 수필쓰기 이론책이 자꾸만 늘어갑니다.
저는 수필집을 많이 읽지는 않았고 오직 소설을 읽은것 같아 반성합니다
소설을 창작하려면 그 시대의 용어(말)와 사회현상에 정통해야겠지요.
제가 요즘 신문을 보면 신세대의 신조어를 이해 못하지요. 그렇다고 (사전류)들을 많이 사서 모아야만이 제대로 된 소설을 창작할 수 있겠지요.
즉 다양한 사회경험을 해야겠지요. 바깥으로 나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직접 먹어봐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여행 좋아하는 조 선생님은 발로 쓸 겁니다.
가 보지도 못한 곳의 지리 역사 환경 언어 풍습 등을 설명하려면? 아무래도 그 지방에 관한 책을 섭렵해야겠지요.
저도 예전에는 소설책 엄청나게 좋아했지요. 예컨대 박경리 소설 '토지'에서 저는 1권 첫 페이지에 서너 쪽을 생생하게 그리지요.
@최윤환 조 선생님은 잘 하실 것 같은 예감입니다.
희망이고 기대이지요.
기다릴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