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래트(procrat)’ 이정우 교수를 만나다
“기득권세력 견제와 개혁, 프로크래트(procrat)가 필요하다”
- 사람사는 세상 회원기자 ‘로키’
▲ 2011년 11월 24일 대구경북지역위원회 발족식. 이정우 교수는 공동대표를 맡았다.
오랜만에 이정우 교수(경북대)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주말 오후인데도 이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지도에다 학부 학생들의 장학금 신청까지 몰려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학생들과 대화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한때 참여정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내며 국정운영의 중심에 섰던 인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상하고 인자한 선생님의 모습 꼭 그대로였다. 30분가량 시간을 할애 받아 이야기를 나눴다.
-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위원회 공동대표이자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의 대선레이스 외곽조직인 ‘담쟁이 포럼’ 연구위원장을 맡고 계시는 걸로 압니다. 한동안은 정치와 거리를 두셨는데 어떻게 이런 직책을 맡게 되셨는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의 대통령들과는 다른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 제가 정치에 가까이 갔고요, 그때 함께 노 대통령을 모셨던 문재인이란 사람에 반해서 이번에 도와드리게 됐습니다.”
- 문재인은 어떤 분이십니까?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침착한 노무현’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분입니다. 뭐랄까, 흙속의 진주 같은 분이죠. 그러나 정작 본인은 진주가 아닌 흙으로 보이려고 하는 분입니다. 저는 정계에서나 지식인층에서 그런 인품을 지닌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기성 정치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 그런 성품이 정치를 하는 데는 약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구태 정치에서라면 흠이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정책실장을 하다가 정책기획위원장을 하셨는데, 왜 중도에 나오셨는지요? 자의반 타의반 뭐 그런 겁니까?
“2년 반을 했으니 물러날 때가 되어서 학교로 돌아온 거지요.”
- 그런데, 요즘 민주당의 친노 예비주자들이 노무현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노무현 정신은 기득권을 앞세우는 구태 정치인들의 틀을 벗어난 참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재벌문제, 관료문제, 한미FTA 등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걸 뛰어 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재벌문제란 어떤 것이죠?
“우리는 자극적인 ‘재벌개혁’이란 말 대신에 온건한 ‘시장개혁’이란 말을 썼어요. 그런데 지내놓고 보니 재벌의 경제력이 더 커졌습니다. 반성할 대목이지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합니다.”
- 한미FTA에는 어떤 아쉬움이 있습니까?
“참여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했을 때는 자동차 정도가 유일한 이익이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의 한미FTA에서는 미국의 자동차 관세폐지 5년 유예 때문에 그 이익조차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말썽 많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 같은 독소조항도 재협상해야 하는 거지요.”
- 관료 문제에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관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관료집단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유능하고 헌신적이긴 한데, 개혁성이 절대 모자라죠. 그래서 개혁을 해내려면 적어도 장관 자리는 관료출신에게 맡기기보다는 개혁성을 갖춘 전문가를 앉혀야 합니다. 일본이 그렇게 하지요.”
기득권세력 견제와 개혁, ‘프로크래트(procrat)’가 필요하다
-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간극이 너무 깊고,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그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총선 때 대구 수성 갑에서 김부겸 후보가 민주당 간판으로 나와 5대 4의 선전을 펼쳤는데, 이는 대구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대구에 큰 희망을 주었지요. 총선 후에 김 후보를 만났을 때 다음 선거에는 상대방이 누가 나오더라도 반드시 이길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원래 대구는 역사적으로도 진보의 고장이었잖아요. 전라도 출신의 조재천 의원이 민주당 간판으로 대구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된 적도 있고요. 대구가 짙은 보수의 색깔을 입은 것은 박정희 정권 이후라고 봐야지요.”
-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폴리페서(polifessor)’란 말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걸 보았습니다만, 교수가 정치 쪽에 몸담았다가 다시 교수로 돌아오는 것은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란 의견이지요?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 정치를 했잖습니까. 사대부의 ‘士’는 선비 즉 학자란 뜻이고 ‘大夫’는 벼슬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둘이 한 몸이란 뜻입니다. 학자는 평소 공부를 하다가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정치에 참여하여 경륜을 펼쳐야죠. 그러다가 자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표를 내고 다시 학자로 돌아오는 겁니다. 따라서 보수언론들이 ‘폴리페서’란 말을 만들어내어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폄하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죠. 저는 영어 표현을 싫어하지만 굳이 쓴다면 ‘폴리페서’란 말 대신 ‘프로크래트(procrat)’라고 써야 합니다. professor + beurocrat란 뜻이죠. 우리말로 하면 바로 ‘사대부’가 됩니다. 교수도 연구와 강의만 하는 교수와 사회운동을 병행하는 교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저는 평생 전자를 지향하다가 요즘은 후자 쪽으로 기운 것 같아요(웃음).”
- 개혁을 하자면 프로크래트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요.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면 약 1,000명을 새로 임명한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개혁이 되려면 적어도 50명 정도의 사대부들이 정부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두 명으로서는 역부족이죠. 기득권세력을 견제하면서 개혁을 이루려면 그 정도의 숫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근혜 절대 안 돼…당선되면 300년 노론시대 재연될 것”
- 교수님은 만약에 기회가 온다면 강의를 쉬고 정치 쪽으로 가실 것 같이 보이네요.
“저는 한 번 해봤잖습니까. 그러니 강의실을 지켜야지요. 제 강의를 듣는 학생이 연간 1,000명 정도 됩니다. 그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에 저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낼 것 아닙니까.”
- 경제학을 가르치잖아요. 그런데 그런 기대가 충족될 수 있습니까?
“제 강의는 경제를 3분의2 정도 가르치고, 3분의1은 역사와 시사를 가르칩니다.”
- 요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새누리당 주자의 지지율이 약간 떨어지고, 문재인 예비후보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주자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조선시대 300년 노론시대가 재연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득권층은 대외적으로 사대주의이면서 대내적으로는 개혁을 절대로 거부하는 속성을 지녔습니다. 이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지요.”
- 담쟁이 포럼은 잘 되고 있는지요?
“340여명의 각계 인사가 참여하고 있는데, 곧 2차로 회원을 영입할 계획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는데 이 교수를 면담하려는 학생들이 연구실 앞 복도에 수북이 기다리고 있었다.
* ‘로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김상태님은 회원기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칠순이 넘으셨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깊은 연륜으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영남일보 사장, 편집국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평화뉴스에서 ‘김상태 칼럼’을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