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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다"라는 제목으로 집필을 어느정도 했습니다. 카페에 한 꼭지씩 올리고 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놓은 곳은 있습니다. 내용도 좋아야 되지만 출판사에서 손해가 안될 정도로 대중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출판을 하기에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오겠냐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일도 가끔씩 일어나야 세상 사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
간단히 캄보디아 코로나 상황 글 올린 것이 있습니다. 상황이 갈수록 어렵습니다. 저희도 4차 접촉자로 분류가 되어 며칠간 자가 격리를 했습니다. 다행이 2차 접촉자가 음성이라 잘 넘어갔습니다. 어제밤을 싯점으로 프놈펜을 비롯한 몇 지역은 2주간 락다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생필품 구입이나 일은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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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도 하나님의 창조물
안타깝게도 우리의 선택은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가 앞선 탐욕과 맘몬을 선택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나의 왕국과 야망을 좇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차분히 관찰하기만 한다면 만물 속에 깃들여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 20
위 말씀을 묵상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 궁금했다. 코로나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도대체 코로나가 어떤 놈인데 온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인지 모두 궁금하게 여겼다. 과학자도 코로나 정체 파악이 급선무였다. 그래야 백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제일 먼저 코로나 유전자 정보를 파악하고 공개했다. 그러자 세계 유명 제약회사들이 동시에 그 정보를 바탕으로 백신 개발에 돌입했다. 나도 수의 바이러스학과 전염병학 수업시간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살짝 배운 기억이 있다. 동물에게도 장과 호흡기에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원래의 역할과 임무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존재케 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생충을 연구하고 있는 조카에게 연락했다. 조카는 임상 의사가 되는 길보다는 마을과 나라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은 신념으로 환경 의생물학 기생충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2019년 기초의학 분야 신진학술상까지 받은 실력 있는 친구다. “만물은 그 존재의 목적이 있다.”라는 창조 신학의 믿음을 따라 기생충과 숙주와 세균총의 상관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기생충은 단지 쓸모없는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숙주에게 면역을 높여주고, 아토피나 알레르기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조카는 기생충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창조할 때는 창조의 목적이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으로 연구를 했는데 연구 결과가 대박이다. 아벤다졸 회충제 한 알로 모든 기생충은 박멸해야만 하는 아무 쓸데 없는 기생충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기생충이 아토피나 알레르기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앞으로 연구할 주제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 19에 대한 궁금한 것을 조카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했다.
“주영아 바이러스도 하나님 만드신 것 맞나?” 조카의 대답은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걸 만드셨죠” 다시 물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만드신 목적이 있겠네?” 조카의 대답은 “네 있을 겁니다.”
만약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으면 “뭐꼬?”라고 물었을 텐데 “있을 겁니다”로 대답을 해서 더는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혼자 인터넷을 뒤지며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토양 1g 속에도 100만 종류의 미생물이 10억 마리 정도 살고 있고, 바닷물 1mL에 약 2억 5천만 마리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는 연구가 오래전에 나왔다. 바이러스가 생존하기 위해 세포 생물 속으로 들어가 감염을 시키지만, 바이러스가 무조건 나쁘거나 박멸의 대상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본래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해양 생태계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의 20~30%는 바이러스로 인해 매일 사멸되고, 분해된 박테리아는 이 지구상에 필요로 하는 아미노산, 탄소, 질소 등 유기물질을 만든다. 또 지나친 박테리아의 증식을 막는 역할을 하면서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만들어 간다. 무엇 하나 의미 없이 만들어진 피조물은 없다. 그러면 인간은 왜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을 당하나?
인간의 탐욕이 미생물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문화명령을 주셨지만, 사람은 탐욕을 따라 화학비료와 농약과 제초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토양은 갈수록 산성화되고, 생물과 미생물의 생태계는 파괴되었으며, 공장식 축산의 사료 작물 때문에 아마존을 비롯한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숲과 밀림은 벌목과 무차별한 개발로 사라졌다. 이런 인간의 탐욕 때문에 미생물이 서식해야 하는 안전지대는 위협을 받게 되고 다른 숙주를 찾아 마침내 사람에게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강한 외부 공격(항생제와 농약 남용)에 생존하기 위해 더 강력한 슈퍼 바이러스로 변이를 하고 있다. 결국, 탐욕으로 인해 인간은 바이러스와 세균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농업 분야의 일례일 뿐이다.
지금은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속과 회복을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썩어질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로마서8: 21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복음은 온전하지 않고 반 토막의 복음이 되었다.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4장(chapter) 복음 중 창조와 회복적 관점에는 큰 관심이 없다. 십자가 중심의 구속을 늘 강조하다 보면 타락과 구속에 집중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창조를 보지 못하면 사람을 제외한 다른 창조물에 관한 관심은 사라지게 된다. 또한, 문화명령을 정복 명령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웃과 피조세계가 신음하든 말든 중요하지가 않다. 부를 위해서 환경은 파괴해도 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가지려 한다. 소위 말하는 번영신학의 해악이다.
구원도 마찬가지다. 창조 신학이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으면 다른 피조물은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구원은 모든 피조물을 향하고 있다. 사람만이 구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모든 피조물에 적용된다. 이 피조물도 썩어질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세계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선교는 협의적이지 않다. 선교는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인간과 피조세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창조세계의 모든 영역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 선교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자와 목회자는 자연과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신학이라는 것만 어떻게 따로 홀로 존재 할 수 있겠나? 신학 서적과 성경책만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교만이다.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만물 속에 담겨 있어서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 19로 온 세계가 고통 하는 오늘날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왜 이와 같은 전염병이 계속 일어나고 있을까? 말세의 징조일까? 분명한 말세의 징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말세의 분명한 징조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는 기독교가 큰일 날 것처럼 반대하면서, 돈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는 왜 그렇게 관대할까? 동성애는 교회가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애를 쓰는데 그만큼 같은 에너지로 부동산 투기가 죄라는 것은 왜 선포하지 않을까?
농사를 짓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을 하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건강하고 공정한 사회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으면서 토지와 부동산 투기로 쉽게 돈을 번다면 누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려고 할까? 만약 이런 사회가 지속하고 대물림 된다면 다음 세대는 희망이 없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금지한 것이 구약의 희년 제도다. 50년마다 땅은 원주인에게 돌아가고, 종은 자유를 얻고, 빚은 청산되는 국가적 리셋이 일어난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가 희년의 원리를 따라 토지법을 만들고 불로소득을 원천 봉쇄하고자 하는 노력과 관심이 없을까? 동성애 반대도 기독교의 중요한 이슈이지만, 희년은 더욱더 중요한 주제다. 성경 전체와 구속사 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희년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주제를 가지고 제대로 설교하는 교회가 몇 교회나 될지 궁금하다.
대부분 하나님 나라가 성경의 핵심 주제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열어가는 핵심 키워드는 희년이다. 희년을 빼고 성령만 이야기하면 말씀과 균형을 잃은 은사 중심의 오순절 운동이 된다. 성령을 빼고 공의와 정의를 이야길 하면 은혜를 잃은 자유주의자가 된다. 희년을 빼고 복음 전도만 이야길 하면 사회적 책임을 잃은 영지주의적 복음주의가 된다.
단순히 내가 죄인이다. 모든 것이 다 내 죄 때문이라는 식의 회개 운동은 온전한 회개가 될 수 없다. 구약의 예언자는 누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를 정확히 지적한다. 그것이 절대 권력의 왕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회개의 몫은 당사자다. 우리는 다만 중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회개다. 행동(Action)이 따라야 한다. 먼저 내가 그리고 가정이 그리고 교회가 지금(now) 여기서(here) 회개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삭공동체는 행동의 일환으로 희년과 성령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관점이 녹아 있는 생태적 농업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첫댓글 탁월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아주 맛깔나게 조명된 글~ 감사드립니다! 캄보디아에도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해서 큰일이네요. 힘든 시간이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긴 인재임이 자명한 사실인지라 겸손히 긍휼을 간구하며 오늘도 자비를 간구합니다. 그 곳에 계신 모든 분들도 고난 중에 샬롬을 소망합니다!
네. 격려 감사합니다. 락다운이 되면 가난한 사람이 많이 힘듭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