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월요일(미 현충일) 비.《로기완을 만났다》를 다 읽다.
하루 종일 어둑 컴컴하고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데, 날씨가 많이 쌀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오리털 상의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습씨로 10도라고 한다. 우리가 여기 2주 전에 왔을 때는 낮에 걸어 다니면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웠는데 참 이상하다.
오후에는 어제 갔던 다도Dado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로기완을 만났다》를 다 읽었다. 200쪽이 안 되는 분량인데, 일인칭 “나”라고 하는 화자話者는 방송국의 전업작가인 미혼 여자이다. 이 소설에서는 탈북소년 로기완의 이야기와 함께 다음과 같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뒤섞여 나온다.
화자 자기의 후견인이면서 애인 관계인 남자 피디PD. 그와 사이의 어쩐지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미묘하고도 서먹서먹한 관계. 그 두 사람이 다루어 한번 히트를 쳐 보려고 수술 날짜를 고의로 크리쓰마쓰 날 밤까지 몇 달을 미루었다가, 그만 한쪽 볼에 낫던 큰 혹이 악성으로 변화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가, 한쪽 귀를 완전히 도려내고서야 살아남은 열일곱 살 난 불상한 고아인 한 여자 아이. 북한에서 월남하여 어머니와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불란서까지 가서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었지만, 만년에 병마로 고생하던 아내를 아무도 모르게 안락사 시킨 죄책감으로 언제나 마음속으로 떨고 있으면서도, 베르기로 탈출한 로기완을 도와주고, 또 이 소설의 화자가 무작정 방송국을 떠나서 로기완을 소재로 글을 한번 써 볼까 하고 베르기까지 와서 얼마동안 체류할 때도 성심껏 도와주는 교포 노인 박(박사).-그는 화자의 얼굴에서 자기가 안락사 시킨 아내의 환영을 그리기까지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로기완은 어떤 인물인가? 북한의 함경도 오지의 한 작업반에 아버지는 이 사람이 5살 때 탄광에서 일 하다가 사고로 죽었고, 1990년대 중반에 들어 혹독한 흉년과 홍수가 3년간 계속되자(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 살 길이 막연하여 소학교도 3학년까지 밖에 못 다니고, 국경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친척집을 찾아서 무작정,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모자가 탈출하였다. 중국에 와서 몇 년 동안 지내는 동안 로기완은 중국공안에게 붙들릴까 겁이 나서 밤낮으로 친척 집의 컴컴한 골방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숨어 지내고, 엄마만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하여 밤마다 노래방에 몰래 나가서 허드렛일도 하여 주고, 노래도 불러 주면서 근근이 목숨만 부지하여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 여인은 밤 중에 집으로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는데, 공안의 눈이 무서워서 로기완을 엄마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조차 가지 못하게 친척들이 단속을 하고서는, 그 시체를 해부용으로 판 돈을 가지고서 그를 부로커를 통하여 베르기까지 탈출을 시킨다.
베르기에 와서 한국대사관을 찾아갔으나, 북한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아무 증거도 특별히 제시할 수 없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돈은 다 떨어져서 추위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거리를 전전하다가 쓰러진 뒤에 경찰에 발각되어 고아원으로 옮겨졌다. 여기서 고아원장과 박씨의 도움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중국음식점에 취업도 하게 되어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된다. 여기서 역시 불법 체류자인 필리핀 아가씨를 하나 알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여자와 함께 영국으로 가서 같은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게 되는 이 두 사람을 이 소설의 화자가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자인 전업작가와 피디를 빼고는 모두 그런대로 형편이 좋아진다. (박씨 노인조차도 이 여 작가의 얼굴에서 자기가 안락사 시킨 아내의 환영을 보면서 그녀를 베르기에서 런던으로 떠나보낼 때 공항에서 얼굴을 만져보다가 포옹을 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불행한 사건을 소재로 삼아서 다루는 직업인들의 남모르는 심리적인 고통을, 이 몇몇 유형의 고단하고 처참한 삶을 서로 뒤섞어 가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이 소설의 짜임새라고 할 것이다.
흔히 정신병 전문의사가 이상한 사람들만 보다가 보면, 자기 본인도 이상하여져서 심지어 자살하는 사례까지도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도 하여튼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한 때는 모두 정신까지도 이상 상태였던 사람들을 보면서 겪게 되는, 어떤 경우(한국의 고아 경우)에는 그런 사람의 불행에 자기들이 개입하여 더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미묘한 감정을 다루고 있는 게 이 소설의 주제인 같이도 생각된다.
대체로 문장은 길게 늘어진 투가 아니라서, 그런대로 대충 읽어 나갈 수 있으나, 복잡한 심리 묘사는 금방 금방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이 많았다. 그런 것을 잘 몰라도 이야기의 진행이야 그런대로 짚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해도 되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