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예성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장정숙
■ 다니엘기도회 설교 요약[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라(시편119:71)]-박상원 선교사(11월 2일)
□ 독일로 연수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저는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살았습니다. 1976년에 남편이 독일에 국비장학생으로 연수를 받으러 갔는데 1년 만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헤어졌습니다. 그해 9월에 저는 한국에서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 무렵 남편이 독일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편지로 저를 전도하여, 저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매주 편지를 받으며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1년간의 연수가 끝날 무렵, 이제 남편이 금의환향 하여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기 때문에 신학을 해야겠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기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며 영국으로 가서 또 신학을 하겠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교회 철야기도에 가서, 하나님, 우리 부부를 제발 놔 달라고, 저는 못 하니 하나님 일에 다른 사람을 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영국으로 공부하러 간 남편이 아프리카 말라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 1984년 8년 만에 남편이 한국에 왔습니다. 와서는 “우리가 어쩌면 아프리카에 가서 살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는 “당신이 한국에 오든지, 유럽으로 데리고 가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무 답도 하지 않고 3개월 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이후 영국으로 편지를 보내면 답장 대신 편지가 반송되어 왔습니다. 너무 놀라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몇 달이 지나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남편의 편지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아름다운 곳으로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말라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이고,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알프스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어 편지에 답장도 못했습니다. 남편 선교사님이 계속 편지를 보내왔는데 ‘이곳은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데, 당신과 아들이 없어 외롭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면서, 초청장과 비행기표를 보낼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러한 편지를 계속 받으니 마음이 조금씩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고생시키셨는데, 설마 또 고생시키겠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떠난 해에 태어난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 아프리카에 도착해 열악한 선교지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 남편으로부터 초청장과 비행기표를 받아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말라위로 가는데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 남편이 가장 싼 비행기표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편도 비행기표였습니다.
- 1986년 공항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는데 남편이라고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2년 만에 만난 남편은 1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너무 마르고 새까맣게 얼굴이 변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비행기를 환승할 때, 그곳 전도사님이 “선교사님은 아프리카에서 마른 빵만 먹고 산다.”고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습니다. 남편은 돈이 없어 마른 빵만 먹고 산 것입니다. 그날 밤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벗어 놓은 남편 바지의 허리띠에는 살이 빠져 못으로 낸 구멍이 6개나 뚫려 있었고 바지는 낡아 있었습니다.
- 영국 선교사님들은 선교지에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가 먼저 보이고 같이 결정한 이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는데, 남편은 신학을 공부하는 것부터 선교지로 가는 것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였습니다. 아프리카도 저에게 무조건 오라고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 원주민 목사님들이 저를 맞으러 공항으로 왔는데 선교사님을 영적인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를 영적인 어머니로 껴안으며 기뻐했습니다. 선교사님이 1년 동안 머무른 숙소에 가보니, 원주민 집에 얹혀 살고 있었습니다. 10살 된 아들이 방에 들어갔다가 도마뱀과 바퀴벌레를 보고 뛰쳐나왔습니다. 이런 곳을 남편이 ‘아프리카의 알프스’라고 편지에 쓴 것입니다. 가슴이 무너졌고 한동안 실어증에 걸렸습니다.
- 남편이 돈 가져온 것 있으면 내 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을 받아 어딘가로 매일 나가 저녁에 들어오길 두 달이 되었습니다. 답답해서 같이 가자고 해도 여기는 귀신 들린 사람이 많아서 나가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 집에만 갇혀 있다가 주일날이 되어야 교회 가기 위한 외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남편 선교사님이 “내일은 우리가 대궐 같은 집으로 갈 테니, 짐을 모두 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한국에서 제가 가지고 간 돈으로 외국인이 살 수 있는 시내 지역의 옷 공장 창고를 사서 남편이 혼자 두 달 동안 수리해서 만든 작은 집이었습니다.
□ 궁핍한 생활로 불평이 늘고 강퍅해져만 갔습니다.
- 선교사님은 학교 교실을 빌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원주민들은 교통비가 없어 한두 시간씩 걸어서 예배를 보러 옵니다. 비를 흠뻑 맞고 와도 젖은 옷을 짜서 다시 입고 교회에 들어와 무릎 꿇고 두 손 들어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교회에 오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라며 은혜롭게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제 부족한 믿음이 회개되었고 강퍅해진 마음이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 교인들은 가난한 우리 집에 밥을 먹으러 많이 왔고,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야만 갔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목사님이 광고시간에 누구든지 배고프고 목마르면 다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먹을 것이 없는데 목사님은 광고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늘 불평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광고를 그만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남편선교사님이 “그들이 당신을 영적인 어머니로 생각해서 좋아서 오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영적인 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믿음이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마음이 강퍅해져서 남편 선교사님과 매번 싸웠습니다. 교인들이 집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음에 항상 불평이 많아 기도하는 가정이 되지 못했습니다.
- 어느 날 집에 누가 찾아왔습니다. 한국말로 “여기가 김종양 선교사님 댁입니까?” 문을 여니 한국인 부부가 서 있었습니다. 그분 가정에 초대받아 가보니 그분들은 정말 아프리카의 알프스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독일 선교회에서 파송 받은 물리치료사 부부였습니다. 냉장고를 보니 계란과 우유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계란과 우유 때문에 남편과 밤새도록 싸웠습니다. 남편은 “당신, 여기 뭐 하러 왔느냐? 무슨 신분으로 왔고, 누구의 아내로 왔느냐? 나는 선교사고, 당신도 선교사로 왔다. 계란 하나 우유 하나가 뭐가 그리 소중해서 잠도 못 자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원주민 아이들보다 더 잘 먹고 살지 않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냐?”고 합니다. 저는 강퍅해져서 ‘안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계란 하나 못 먹이는 생활이 선교사 생활이면 나를 한국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왕복 비행기표가 있었으면 벌써 돌아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선교사님이 저를 피해 다녔습니다.
- 선교사님이 기도하면 “하나님, 예쁘고 착한 여자도 많은데 왜 저런 여자를 저에게 붙여주셨습니까? 하나님이 데려가시든지 변화시키든지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제가 옆에서 “하나님, 무슨 목사가 저렇게 거짓말을 잘 하냐?”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 가정의 현실이었습니다.
- 어느 날 팔노매라는 지역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선교사님이 그곳에 초청받아 갔다가 3일 만에 선물을 가져오셨는데, 계란 80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지역 목사님들이 원주민들에게 선교사님 선물로 3일간 낳은 계란을 가져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계란을 아들에게 먹이는 동안은 한 번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철없는 아내의 불평을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강퍅한 저를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병으로 치셨습니다. 황달과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의 지경까지 갔습니다. 의사도 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때 선교사님은 괜히 데려왔다고 가슴 아파 우셨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남편에게 “나 죽으면 여기에 묻지 말고 돈이 얼마가 들어도 한국에 묻어 줘. 여기에 묻으면 가만히 안 둘 거야.”라며 철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선교사님이 “당신 안 죽어.”하는 것입니다.
- 저는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런 체험을 간증할 때, ‘뭘 요란스럽게 예수를 믿어’했습니다. 어느 날,그 아픈 중에 “하나님, 너무 아픕니다. 이 땅에서 살기 너무 힘듭니다. 저를 데려가시든지 살려주시든지 해 달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밤에 너무 아파서 자고 있는 선교사님을 깨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니, 너무 피곤한 몸으로 간신히 손을 내밀어 기도해주면서 빨리 자라는 것입니다. 자고나면 아픈 거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가 밖으로 나와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너무 아파요, 그때 하나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너는 내 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아프리카로 불렀다. 내가 너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거듭나야겠다. 네가 거듭나지 않았고 지금 그대로 있으면 내 이름만 더럽히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남편에게 “하나님이 당신만 불렀지, 나는 부르지 않았다. 당신만 사랑하고,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의 잘못을 빛으로 비추어 주셨습니다. 저도 몰랐던 내용들이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밥을 감추어 둔 것, 아들에게만 빵을 두껍게 썰어 준 것, 주님의 종을 대적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는 네 아들을 사랑해서 그렇게 했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서 내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용서해 달라고 엎드려 울며 밤새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릅니다. 새벽에 누군가 등을 쳐서, 저는 하나님이 데리러 오신 줄 알았더니 남편이었습니다. 의자에 남편을 앉히고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너무 악한 아내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남편에게 전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남편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저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 거듭나니, 환경은 똑같은데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 제가 거듭나니, 환경은 여전히 똑같은데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데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말라리아와 황달병 약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남편이 다시 주워와 그러지 말고 약을 먹으면서 기도하자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만나주셨는데 데려가면 천국이고, 살려주시는 것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 저는 100일 동안 하루 한 끼만 먹고 금식기도와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몸이 이상해지는 것이 느껴져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아직 살아있었냐고 했습니다. 무료로 진료해주는데도 병원에 안 와서, 죽은 줄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검사해 보더니, “무슨 약을 먹었냐?”고 물었습니다. 병이 모두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 하나님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열 살 먹은 아들이 빵을 먹다가 펑펑 울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냐며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도 만나고, 학교도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붙들고 울자, 남편 선교사님이 우리 둘을 끌어안고 같이 울다가 “하나님 우릴 데려 가세요.”라고 하다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 라는 찬양을 먹이 터져라 불러주시니 제가 위로를 받고 평안이 임했습니다. ‘그래, 하늘가는 밝은 길이 있는데, 이까짓 배고픔쯤이야 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주의 여종이 된 게 너무 감사해서 주님께 생명을 드려 일하겠습니다.’라고 해놓고 아들에게는, “너는 다른 것 다 해도 제발 선교사는 되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울다가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미쳤어? 그런 거 하게?” 그 아들이 지금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함께 왔습니다. 우리 가정에 너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부어주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 알프스는 스위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마음이 천국이면 알프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가난했던 선교사에게 스와질랜드에 의과대학이 있는 종합대학을 세워 운영하게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것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워서 말을 해도 다 못합니다. 대학의 영상을 보여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결어 및 기도
-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 일일까요? 똑같은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면 세상이 달라져 보입니다. 세상의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선교사님을 통해 하신 위대한 일을 시간이 없어 다 듣지는 못했지만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지금은 선교지에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십자가의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성령님께 마음을 여시고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고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성령님, 충만함으로 기름 부어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이 우리 인생길을 앞장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은사로 충만케 하십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고 옛사람의 습성도 끊어지게 됩니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이 시간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게 하옵소서.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은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므로 죄악이 있는 곳에 임하지 못합니다. 숨겨진 죄악이 있다면 회개하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이 더 이상 짐이 되지 말고 감격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붙들림 받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 남편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 부모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그러함으로 이 세상이 달라져 보이게 하시고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하옵소서. 지금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종교인으로 신앙 생활하는 분이 있습니까? 이번 다니엘기도회 기간 동안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주님을 가슴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거듭나서 이 세상이 달라지게 하시고, 우리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하옵소서. 내 자신이 거듭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내 남편이, 내 부모가, 내 자녀가 거듭나게 하옵소서. 우리 가문이 믿음의 가문이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 때에 쓰임 받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