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_가족세우기 #대물림 #동일시 #가족세우기 #통찰
가족세우기에서 수없이 많은 횟수의 세션을 받았으면서도
나는 녹화된 내 세션 영상을 다시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세션 영상을 글로 정리하는 축어록 작업도 거의 하지 못했다.
가족세우기 세션에서 누군가를 제외하여 그 사람과 동일시 되는
수많은 사례를 보았음에도
나도 동일시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2월 주말 이틀간의 레이키 교육으로 오랫만에 만난 동기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알아졌다.
4년동안의 가계도 작업에서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과 배다른 언니를 가계도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는 것을...
그들을 내 가족테두리에서 철저히 제외하고 있었다는 것을...
버트 헬링거 선생님이 가족세우기를 통해 알게 된 첫번째 통찰은
가족공동체가 누군가를 제외하면 그를 가족 전체에 포함시키고 소속시키기 위해서
후손중의 누군가가 그와 비슷한 정서를 갖고 살아간다(동일시)는 것이다.
이제서야 처음으로 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과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고
나의 큰 딸은 나의 배다른 언니와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은 어린 딸을 친정에 맡기고 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때 고정적인 돈벌이가 없었던 것 같다.)
배다른 언니는 4~5살 때 쯤 외가에서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후 서울로 아버지를 찾아온 첫번째 부인은 아버지와 함께 살기를 원했고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와 가정을 이뤄 살고 있어 어렵다고 했단다.
여기까지가 내가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의 전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도 "내가 버려졌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 기억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버려졌다"는 느낌은 쉽게 가시지를 않았다.
그리고 '자리'와 관련된 이슈가 있었다.
고정석이 아닌 회의나 모임에 참여했을 때는
지금 차지하고 앉은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나? 싶은 불안함이 늘 있었고
모임이 진행되는 중에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오면 언제나 내가 먼저 스스로 일어나 내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큰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육아휴직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정 어머니가 아이는 당신이 돌볼테니 너는 돈을 벌라는 말씀을 따라
3개월 된 큰 딸을 친정에 맡기고 직장을 다니며 1주일에 한 번 딸을 보러 갔다.
남편은 10년간 월급을 가져올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나는 계속 직장을 다니느라 아이가 8세가 되어서야 큰 딸과 함께 살게 되었다.
가족세우기 워크숍에서 큰딸은 "나도 데리고 가지.", " 버려졌다"는 정서를 보인다.
정서 대물림과 동일시를 우리 가족 속에서 여실히 본다.
큰어머니, 언니
당신의 고통과 비극으로 제가 태어났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사셨기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당신의 운명에 동의합니다.
저와 제 딸이 잘 사는 것은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저와 제 딸이 잘 살 수 있도록 축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