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시 신인상[심사평] 이도현
‘떠나기’와 ‘건지기’의 환상적 교직
권데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도현의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글쓴 이는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그 역사를 수필로 풀어내었다. 흔히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우표수집부터 시작해서 그녀는 상표, 수석, 이 밖에도 모으는 재미에 빠져 동전, 지폐, 연필, 껌 종이 등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으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수필이 제재와 주제 중심의 문학인 까닭으로 이 수필은 ‘수집’이라는 단일 제재로 해서 수집의 취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승화시켰는가를 잘 그려내고 있어 성공적이다. 이도현 씨는 수필가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하겠다. 이 수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수집이 사인본 책으로 이어지다가 펜으로 종결되면서 결국에는 작가의 꿈에 닿았다는 이야기,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이 큰 감동을 준다. 책을 수집하면서 독서력을 키우고, 펜을 모으면서 자신도 남이 쓴 글을 모우는 입장에서 글을 써서 남기는 입장으로의 대전환을 통해 드디어 작가의 꿈을 달성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구축된 삶의 실상이다. 그 안에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강한 의식의 주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몰입시켜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도현도 마찬가지다. 수필을 써서 등단공모네 응시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은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독특한 수필세계로 독자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일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몰입해서 하는 일이란 가치 있는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인간은 어느 하나에 미쳐야 한다고 했다. 이도현의 수필 안에는 그녀의 압축된 삶의 진한 영혼이 서려 있다. 그 영혼을 만나기 위해 이도현은 항상 ‘수집’을 위한 길을 떠난다. ‘떠나기’와 ‘건지기’의 환상적 교직이다. 글쓴 이는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인생론을 펼치고,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영역의 그 순수와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얼마나 멋진 생의 여정인가.
혼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구조결합이라는 끈을 통해 다른 구성소와 자신을 하나로 묶더라도, 열정이 없으면 그것은 애착에 지나지 않는다. 이도현은 자신의 삶에 온갖 애착을 담는다. 사물과 일종의 인연맺기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해 나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둥지를 찾아 길을 떠나고 나그네가 되어 방황을 계속한다. 그 둥지의 실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객체라는 데 있다. 무엇인가에 열렬히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 대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소박하게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물이다. 사물과의 연을 다지겠다는 생의 가치다. 그녀가 수필가로 등단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잊고 있거나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향수와 우리가 진짜 관심 가져야 할 사물에 대한 발견과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애장품의 발견은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소중한 인연의 끈으로 묶고 있는 작가의 아름다운 사물 사랑이 질펀하게 녹아 있어 감동을 준다. 이 수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수필에 대한 자부심이다. 글을 써보고자 하는 욕망을 책과 펜 수집에서 키웠지만, 결국 수필을 선택했다는 데 감사를 드린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완고할 정도의 애정이며, 자기를 실존케 했던 운명적 존재에 대한 애착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가슴에 살아 있는 애장품에는 작가와 인연된 것들의 정이 물결친다고 하겠다. 수집 취미는 가정사의 단조로움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무엇인가를 가슴에 지니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수집품은 치유의 시간을 부여하는 매게체이기에 글쓴 이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수필가란 일상적 삶을 영위하면서도 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새롭고 편리한 것이 나오면 가볍게 그것을 취하지만 수필가들은 사라지는 것들의 허전한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주고자 한다. 이제는 수필적 자아의 삶을 꿈꾸고자 한다. “내 맘을 따라 사인을 받으러 경기도로 충청도로 강원도로 전국의 길을 따라다니다 보니 슬그머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끼어든다. 누군가의 발끝에 내가 모은 펜이 머무는 순간이 오려나.”라는 마지막 대목은 그녀의 미래를 잘 보여준다. 이는 건강한 생활인의 자연적 부화라는 측면에서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부가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의 공감대 위에서 작가가 떠남을 통해 수집의 행복에 젖어들고 있는 것은 무료한 일상을 지나가는 시간의 관성이 아니라 창조의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지의 확산으로 보인다. 생의 깊이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에 대한 몰입을 통해 위기의 삶을 창조적으로 전환해야겠다고 피력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애장품을 간직하면서 튼튼한 삶을 더 튼튼히 다지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인간화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도현의 삶은 수집과 수필의 교직이라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빛난다. 결말부의 적절한 변주를 통해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낸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제 수필가란 날개를 달았으니, 훨훨 상상의 세계를 날아보기 바란다.
최종심사 권대근(문학평론가)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이도현
수집을 좋아한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열심히 모으는 것처럼 나 역시 이것저것 모을 것을 찾아다닐 때는 마냥 기쁜 건 어쩐 일일까. 애써 수집한 것들을 분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크기별로 나누거나 시대별로 구분하고 때로는 색상이나 모양에 따라 각기 놓이는 위치가 다를 때도 있다. 이렇게 모여진 것은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들여다보고 먼지를 털어내는 등 손질을 한다.
어릴 때는 우표 수집에 몰두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편지봉투에 붙어있는 우표에 관심이 갔다. 편지의 대부분은 아버지께 오는 안부 인사와 경조사 알림 같은 것들이었다. 음성만으로도 귄위적이라 무서웠던 아버지가 외출하시기만을 틈타 사랑채로 달려갔다. 편지봉투에 붙은 우표를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잘 떼어 내기 위해 손끝에 온 정성을 모았다. 간혹 잘못 뜯어 끄트머리가 찢겨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우표가 자주 등장하지도 않고 편지도 오는 양이 줄어들자 어느 순간 시들해지고 말았다.
어느 날 들판에서 일하다 새참으로 마시는 커다란 소주병이 눈에 들어왔다. 병이 비워지면 얼른 물에 불려놨다가 상표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뜯어냈다. 상표라고는 대부분 큰 소주병, 작은 소주병, 사이다병에 붙은 것들이었고 가끔 과자 상표를 모으기도 했었는데 그것도 모으는데 한계가 있어 이내 싫증이 났다.
이번엔 ‘수석 채집’이란 명분으로 시냇가를 휘젓고 다녔다. 수업 시간에 어느 선생님께서 수석 수집이 취미라며 국화석이라는 어른 손바닥만 한 돌을 보여주셨다. 내 눈에는 그냥 얼룩덜룩한 둥그런 무늬로 보였는데 선생님은 금광석이라도 되는 듯 이리저리 돌려가며 설명하셨다. 어느새 돌도 대단한 것으로 여겨져 매일 어둑해질 때까지 국화석 문양이 있는 특별한 돌을 찾아 길, 도랑, 산에 보이는 돌이란 돌은 모두 뒤지고 다녔다. 수많은 돌 중 내가 찾는 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국화석 대신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것 몇 개 주워 선반에 올려놓고 내 나름의 의미를 붙여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밖에도 모으는 재미에 빠져 동전, 지폐, 연필, 껌 종이 등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으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 이후 바쁜 일상에 쫓겨 수집하는 것을 중단하고 지냈다. 직장 일을 마무리하고 조금 시간이 여유로와지자 최근 수집 병이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어떤 대상을 모아서는 화석처럼 모셔 두었던 것에 비해, 마음의 여행을 따라 좋아하는 작가들을 찾아가 만나고 그 의미 안에 생생한 추억을 모아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젊은 날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밤이면 입시 준비를 하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구름을 헤치고』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었다. 도시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빠의 짐 속에서 나온 책이었다. 저자가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에 들렀다 유럽·동남아를 거치며 쓴 국한 혼용체의 세계 일주기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계 일주를 하였다는 사실과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한 이야기로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궁금함을 갖게 해준 책이다.
그 책을 기억하며 나이들어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은 서류 더미에 쌓여있었다. 책에서 보았던 삼십 대 후반의 흑백사진과는 달리 팔순의 연로한 저자는 멀리서 찾아온 독자에게 단아한 필체로 사인을 해주셨다.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음에도 책꽂이에서 다른 책들과 서로 부대끼며 표지의 한쪽 귀퉁이가 날아가고 잉크가 번지며 종이가 부스러져 있었으나 사인만큼은 명징했다. 사인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내 것이 된 것처럼 부자가 된 뿌듯함을 안겨 주었다.
바람 부는 날 비 오는 날을 제외하면 맑은 날이 그리 많지 않다더니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었다. 흡사 척박한 환경에서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처럼 그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익숙한 것과의 결별』, 『떠남과 만남』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어느 날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가 그곳에서 『낯선 곳에서의 아침』에 사인을 받았다. ‘이 선생님 좋은 시간 되었습니다. 훌륭한 일생 되세요’라는 사인본은 선생님이 갑자기 떠나신 후 더욱 애틋한 책으로 남아있다.
사인본 수집을 위한 먼 길 여행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다람쥐가 소중하게 모은 도토리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듯 사인본이 한 권씩 쌓여가는 책들로 풍성해져 가는 책장은 마치 살아있는 나만의 세계로 거듭났다. 그건 형용할 수 없는 위로였다. 마음을 맑게 하고 그 책이 주는 무게만큼 나의 세계가 넓어져 갔다. 어느 사람이 이만큼의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사인을 받다보니 펜도 같이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마테호른과 몽블랑으로 트레킹 가는 지인에게 부탁했다. “가는 길에 볼펜을 파는 곳이 있으면 한 개 사다 주세요. 우리나라 모나미 볼펜처럼 그 지역 사람들이 편안하게 많이 사용하는 가장 평범한 것을요. 만약 없다면 한여름 눈 덮인 산을 힘차게 함께 다녀온 펜을 제게 선물로 주세요. 공항이나 백화점의 선물용 고급 볼펜은 사절입니다.”
언제까지 몇 자루를 모을지는 알 수 없다. 내 맘을 따라 사인을 받으러 경기도로 충청도로 강원도로 전국의 길을 따라다니다보니 슬그머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끼어든다. 누군가의 발끝에 내가 모은 펜이 머무는 순간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