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4일) 오후 4시 30분경 나는 김명환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그의 영정 앞에서 나는 서서 묵도를 한 후
사진 속의 그의 얼굴을 멍하니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호통을 치는 듯 했다.
“야! 105 이놈아. 정말 오래간만이다.
내가 죽은 지 3일만에야 나타나서 묵도만하고 가려고?
똑바로 해라. 제대로 2번반 큰절을 올려라.”
나는 마음속으로 느끼는 그의 기세에 눌려 다시 절할 자세를 취했다.
무릎을 꿇고 상체를 바닥에 구부리려는 순간 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뚝’하는 소리가 나며 배가 헐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당황하며 일어나면서 보니, 좀 오래된 허리벨트가
큰절로 인해 구부러져 부풀려지는 뱃살의 크기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버클에서 빠져나온 사고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두 번째 절을 위해서 또다시 상체를 구부리는 순간
이번에는 버클의 무게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해서
허리벨트가 스르르 바지 앞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오른 속으로 양복상의 아래쪽을 눌러 버클을 잡았다.
그런 자세로 절을 마치고 엉거주춤 일어섰을 때
벌써 허리띠는 20센티 정도나 불쑥 앞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계속 오른손으로 빠져나온 허리띠를 누르며
상부(미망인)와 상주들에게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간신히 머리인사만 드리고
한마디의 말도 없이 당황한 표정으로 빈소를 급히 빠져나왔다.
김명환 회장 영정 앞에서 무언극의 코미디를 연출한 셈이었지만
슬픔에 잠긴 그의 가족들은 나의 코미디를 눈치 채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빈소 밖으로 나오니 3인용 의자에 앉아있던 낯익은 사람이 반갑게 인사했다.
당연히 동기동창인 줄 알고 나도 반갑게 인사하며 잡담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에게 계속 존대를 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옆방 빈소에 문상 온 C대학 한문학 교수 K씨였다.
나는 K교수에게 조금 전에 당했던 황당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K는 이렇게 덕담으로 받아주었다.
“고인이 유머가 많으셨던 분인가 봐요.
미망인 앞에서 자신에게 문상 온 친구의 허리띠를 풀게 하다니!
너무 재미있네요.
그런데 고인의 음덕으로 머지않아 (그 댁에)경사가 있을 것을 알리는 길조에요.”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최정남 학형이 앞에 나타났다.
지하철역까지 라이드를 드리겠다고 그를 나의 차에 태워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차권이 없었다.
결국 병원의 내규에 따라 하루분의 주차비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 나는 최정남 학형에게 내가 연기했던
‘무언극 코미디’를 반복하며 배꼽을 잡았다.
하루 분의 엉뚱한 주차비를 지불하고도 전혀 억울함을 느끼지 못했을 만큼
나는 김명환 회장이 빈소에서 제작 감독해 준 코미디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구려!
잘 가시오. 유당 김명환 회장!
당신이 경기56회 회장(04-05년도)으로서 쌓아올린 업적과 헌신
그리고 친구로서 따뜻한 인품을 우리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오.
첫댓글 빈틈없는 105에게 그런일이....항상 덜렁대는 우초는 어찌하오리까?????
우초가 빈틈없이 부지런하지, 나는 그 반대일세.
미국에 있었다고 빈소도 찾지못했는데, 105(백오)의 슬픔과 아름다움과 우정이 가득 담긴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