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북신문 공모전 은상 수상작
홍등, 750년을 밝히다
- 이현숙 -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마을로 들어서자 풍성한 잎을 달고 선 나무가 눈에 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우람하다. 10m도 훌쩍 넘을 키에 매단 잎을 보니 푸르른 청춘이요, 사춘기 소년처럼 싱그럽다.
노거수를 먼저 눈으로 그러안으며 다가선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다가갈수록 골골이 쌓인 연륜이 그득하다. 얼마나 숱한 풍상에 시달렸을까. 노쇠한 몸을 스스로 지탱하지 못해 쇠지팡이에 의지했다. 발치부터 가지 끝까지 세월을 밀어낸 흔적이 아로새겨졌다. 나무 둥치는 하나가 아닌 둘로 가운데가 쩍 갈라지고 텅 비었다.
갈라진 한쪽 둥치 아래를 휘감은 옹이의 움푹한 눈이 인간의 속을 꿰뚫는 듯해 절로 숙연해진다. 마주한 둥치는 희끗한 수피가 바람과 햇살이 새겨놓은 자잘한 무늬로 대장경 목판을 빼곡하게 꽂은 듯 경외롭다. 백 년도 채 못 사는 나는 칠백 년을 훌쩍 넘긴 신령스러운 기운 앞에 그만 수굿해진다.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 하여 찾아 왔는데 정말 명성에 걸맞은 외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욤나무와 접목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실수라니 쳐다볼수록 신비롭다. 곁을 스친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지, 얼마나 많은 주린 배를 채워주었을지, 내 작은 소견으론 차마 헤아릴 수 없어 너그러움에 그저 고개만 주억거린다.
감나무는 오래 살아야 250년이라는데, 무려 750년을 살았다. 긴 가뭄에 목이 타고 눈이 감겨도 두 손 모아 비는 사람을 보며 눈을 부릅뜨며, 어제보다 오늘을 생각했고 내일을 꿈꾸며 무수한 날 허공을 향해 가지를 뻗어 올렸으리라. 마을 사람들의 배를 채우려고 열매 맺기에 온 힘을 쏟았을 수많은 날이 저 둥치, 저 가지, 저 잎새에 그득하다.
물길을 찾아 캄캄한 땅속에 뿌리를 내리며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 양분을 들이켜고 햇살을 삼켰다. 감꽃이 피는 봄에는 순백의 감꽃을 떨어뜨려 주린 배를 달래고, 잎이 풍성해지는 여름이면 그늘을 내준다. 감이 붉게 익은 가을이면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며 배를 불린다. 겨울에는 부족한 먹거리를 대신해 처마 밑에 곶감으로 매달려 사람들을 살찌웠다.
소은리 사람들은 나무를 신성시 여겨 수호신으로 모셨다.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자식의 앞날을 기도하고 부모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가끔, 입성 그대로 달려와 신산한 마음을 내려놓거나 떼를 쓰며 하소연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신령스러운 기운에 마음을 의지하며 하나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무를 귀히 섬긴다.
감나무는 한 몸이면서 둘로 갈라져 시멘트로 상처를 메우고 섰지만, 그 뿌리는 하나여서 여전히 해마다 3천 개가 넘는 감을 매달아 보는 이를 감동케 한다. 한때는 나무줄기가 썩어들어 안타까운 나머지 자식 다루듯, 부모 대하듯, 영양제를 주고 땅심을 돋구었다. 썩고 문드러진 둥치를 반이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주며 기도했다. 정성을 헤아린 감나무는 여전히 감을 매달고 자신의 건재함을 내보이며 섰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없었다. 초여름엔 골목길을 따라 감꽃을 주우려 다녔다. 하얗게 떨어진 감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들고 감꽃이 누렇게 변하면 하나씩 따 먹으며 골목을 오르내렸다. 어쩌다 시퍼런 감이 떨어지면 주워다 단지에 넣고 익혀 먹었다. 거리에 낙엽이 몰려다니는 가을엔 큰집을 번질나게 드나들었다. 큰집 사랑채 옆 감나무의 감이 익으면 우물에 비친 홍시까지 붉어 온통 풍요로웠다.
주렁주렁 열린 감이 홍시가 되어 마당 귀퉁이로 우물가로 툭툭 떨어졌다. 그 덕에 나는 홍시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큰아버지는 감나무의 홍시가 점점 줄어들면 여남은 개를 나무에 남겼다. 사람도 먹고 짐승도 같이 먹어야 한다는 큰아버지의 논리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워 애꿎은 홍시만 쳐다보았다.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까막까치가 깍깍거리며 날아들었다.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은 황량하고 스산하다. 감나무는 잎을 다 떨구어도 끝끝내 움켜잡은 가지 끝에 하나둘 홍등紅燈을 켠다. 담벼락에 기대서서, 밭둑이나 들판의 모퉁이에서, 산길 초입을 훤히 밝히며 뭇사람의 가슴을 따스하게 물들인다. 고향을 떠나 세파에 부대끼던 사람이 빈 몸으로 돌아와도 등불을 켜고 길을 훤히 밝힌다.
인생살이는 풋감처럼 떫다. 때론 겁 없이 벌인 사업에, 생각지도 못한 건강 악화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 걱정까지, 먹고사는 일은 그 자체로 쓰고도 떫다. 떫은맛은 푹 익혀야 빠진다. 젊은 시절엔 서운한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남의 행복을 보며 나의 불행을 비교하고 비관했다. 마음보가 사나워지고 인상은 날카로워졌다. 딱딱하게 굳어 시퍼런 감으로 매달렸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무슨 일이든 이리 재고 저리 따지며 섣불리 덤벼들지 않는다. 악착같이 몸을 챙기려 운동하며 영양제를 삼킨다. 자식에게 매달렸던 마음을 거둬들인다. 객관화하여 바라보니 조바심하던 마음이 한결 느긋해진다. 남이 하는 말은 흘려버릴 말과 담아둘 말을 골라 듣는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살아가며 조금씩 깨닫는다. 나 잘났네 하며 튕겨내던 사나움을 누그러뜨리니 인상도 부드러워진다. 잘 익은 홍시가 절로 뚝 떨어지듯이 내 안에 남은 떫은맛을 곰삭힌다.
삶도 익어가는 원리와 같다. 젊은 날엔 몸은 성숙하지만 속은 설익은 감과 같다. 익지 않은 속은 세상의 비바람과 햇살을 골고루 받아야 제대로 익는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쓴맛과 매운맛을 경험한 후에야 제대로 영글어진다. 나도 인생의 가을을 맞은 지금에야 발그레 익어가는 중이다.
서두름은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라 웬만하면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걷는 속도마저 느려진다. 새삼스레 여유 속의 여유를 찾는다. 떫은 감을 삼키듯 부리나케 지나며 놓친 것을 찾아 인생의 가을을 엮는다. 책 속에 파묻히거나 글을 쓰는 일도 잘 익은 홍시가 되려는 마음에서다.
감나무는 750년이나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았다. 아이가 태어나는 첫 울음소리, 아이들이 고샅에서 뛰어노는 모습, 쟁기를 들고 밭을 가는 농부, 광주리 머리에 이고 장에 가는 아낙, 울면서 시집가는 옆집 막내, 한 생을 다하고 상여에 실려 뒷산으로 가는 노인, 그리고 마을의 길흉화복까지, 말없이 지켜보며 마을을 지켜왔다.
돌아오는 사람은 마을보다 감나무를 먼저 보고 떠날 때는 감나무를 마지막으로 보고, 그렇게 감나무는 고향의 랜드마크로 마음속에 남았다. 객지로 떠난 사람은 고향 마을 감나무를 그리워하고 감나무 역시 객지에서 지쳐 돌아온 사람을 따뜻하게 맞았으리라.
이 여름날, 나는 감나무의 물성을 배운다. 잎이 넓어 글씨 쓰기 좋으니 문文이요, 가지는 화살촉으로 쓰이니 무武이며, 겉과 속이 똑같은 색이니 충忠이다. 이가 없는 노인도 홍시를 먹을 수 있어 효孝이며,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가지에 달려 있으니 절節이라는 찬사가 있듯이, 살아 있는 문·무·충·효·절 앞에서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인생의 가을, 자신을 돌아보며 사색에 드는 시간이다. 살면서 지금까지 몇 사람에게 잘 익은 마음의 홍시를 건넸는지, 누구의 황량한 가을을 따뜻하게 밝혔는지. 칠백여 년 홍등을 밝힌 감나무 앞에서 내 문·무·충·효·절을 반추한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감나무
심사평 ; 심사위원 김은중
이현숙의 은상 수상작 ‘홍등, 750년을 밝히다’는 감나무 한 그루가 품은 마을의 세월과 생명력을 통해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서정적 기록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따라 걷듯, 마을의 역사와 자신의 삶을 겹쳐 읽는 구성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