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2023년 5월 3일에 동북인도 마니푸르 대폭동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메제리티인 메이테이부족이 마이너리티인 고산족 미조-쿠키족의 땅을 약탈하고자 주의회에서 법을 바꾸려고 시도하다가 고산족들의 저항으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5월 3일 당일 오후에 분노한 메이테이부족이 쿠키-미조족을 대량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집에 방화하였습니다. 그 후 메이테이의 침략과 공격에 대비하여 쿠키-미조의 청년들이 자위대를 만들어 인도중앙정부가 그어놓은 버퍼존에서 교대하며 오늘까지도 불침번을 서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메이테이가 지리밤의 미조족의 마을을 침범하여 방화와 학살을 감행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순교자가 된 아름다운 청년과 그 부모님
다니엘은 작년 11월,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메이테이 테로리스트들에게 총과 칼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는 고난당하는 지리밤의 동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자위대원을 자원하여 지리밤에 도착하자마자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변을 당한 것이다.
작년 11월 지리밤에서 30대 여성이 메이테이 테로리스트들에게 칼에 찔리고 총에 맞은 뒤 살아있는 채로 불에 태워졌다는 소식이 추르찬드푸르의 고산족의 심장을 강타하였다. 특별히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의분으로 너도나도 지리밤 자위대로 나섰다.
다니엘도 지리밤 방위대를 자원하였다. 그는 독자이므로 처음부터 방위대 의무에서 면제되는 청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친구들과 함께 2023년 5월 3일 폭동 이후로 버퍼존에 가고자 자위대에 자원하였으나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버퍼존에서 불침범을 서고 있는 친구들과 선배 방위대원들에게 죄책감을 느꼈으며 고난 받는 동족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던 중 테로리스트들이 24년 11월에 조상킴을 살해한 뒤 이어서 지리밤의 고산족들의 집들을 방화하며 사람들을 해쳤다. 그러나 인도 중앙정부도, 군인과 경찰관도 이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고산족들의 심장은 화산처럼 끓어올랐으나 아무도 그들의 편에 서지 않았고 정부관계자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였다. 다니엘은 고산족이라는 이유로 유년시절부터 메저리티들에게 차별과 학대를 받으며 마이너리티의 설움과 고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지리밤과 그 일대에서 무차별한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 된 동족의 고난에 침묵할 수 없었다. 그가 지리밤 자위대를 자원하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사정하고 애원하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그는 애통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애원하였다. "부모님의 뜻대로 버퍼존에서 근무하는 자위대원이 되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에는 제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폭력을 행하지 않기로 약속했음에도 폭력으로 우리를 괴롭히며 약탈을 서슴 지 않는 저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이 우리를 더 앝봅니다. 더 이상 큰 참변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디 이번에는 말리지 마십시오. 일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자위대로 떠나기를 애원하는 아들을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어 눈물로 보냈다.
그들은 아들을 끌어안고 포옹하며 임무를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살아오라고 당부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날마다 자나깨나 하나님께 보호해주시라고 빌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은 지리밤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테로리스트들에게 저격을 당하였다.
작년 연말에 이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유족들과 마니푸르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 후 몇 몇 교회에 가서 고산족 순교자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람들의 뜻을 모아 모든 희생자 가족에게 위로금을 보냈다. 그 후 살림에 보탬이 되길 희망하며 돼지를 보냈다.
그리고 금번에는 유족들을 방문하여 그냥 같이 울기로 하였다.
아들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지 1년 조금 지났지만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슬픔과 고통으로 무표정하였고 집안의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웠다. 감히 침묵을 깰 수가 없어 가만히 순교자의 사진 앞에서 합장하고 허리를 깊이 숙여 애도를 표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동행한 리더들이 내가 순교한 아드님의 죽음을 애도하고 가족을 위로하고자 멀리 한국에서 왔고 앞서서 위로금과 돼지를 보내주신 사람이라고 나를 유족들에게 소개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유족을 보러온 사람이며 전에 위로금과 돼지를 보낸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유족들이 놀라며 잠시나마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냉담하였고 우리를 귀찮아하는 것이 역력하였다.
우리의 방문을 거부하는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읽었지만 그냥 돌아 나오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였다. 그는 격렬한 어조로 "말할 수 없다!" 며 퉁명하게 거절하였다.멋적었으나말문을 어머니에게 돌렸다. "왜 독자인 아들이 자위대로 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느냐?"고물었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애원하며 울며 말렸지요. 그래서 처음 자위대 모집 때는 빠질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조상킴 죽음 이후 지리밤의 집들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자원해서 자위대에 들어 갔어요. 도무지 우리 힘으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애원하는 우리에게 살아서 돌아올테니 걱정 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우리는 살 희망과 힘을 다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마냥 눈물을 닦아냈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오랫동안 누워지냈고 어머니가 혼자 농사를 지어 집안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그가 10학년을 졸업하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건축 일을 하여 집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집안에 화기가 돌고 웃음소리가 감돌았다.
그의 죽음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사형선고였다. 부부의 믿음은 얼음처럼 냉냉해졌고 마음 속에는 자기 아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않은 하나님께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저는 당신들의 고통과 슬픔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가 있길 기도합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그들이 뿜어내는 침통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 서둘러 기도하고 준비해간 담요와 위로금을 전달하고 축도로 방문일정을 마쳤다. 그들은 우리의 권유로 함께 사진을 찍었음에도 우리가 나올 때도 인사도 아니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그들을 등뒤로 하고 나오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마치 머리칼이 쭈빗 서고 뒤통수가 땡기는 것 같았다.
독자를 잃은 어머니, 아버지의 슬프고 아픈 마음을 누가 다 알겠는가? 누가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위로하겠는가? 누가 그들에게 아들을 대신하는 기쁨과 위로를 주겠는가?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슬픔으로 병 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터치해주길 간구하였다.
그 날 잠자리에서도 고통에 절은 얼굴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그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주시길 빌었다.
다음 날 아침, 순교자 묘지에 참배하러갈 준비를 하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다니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타났다.
순간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심 당황해하고 있는데 그 험악했던 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다가와 악수를 청하였다.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얼떨떨해진 나에게 함께 방문하였던 에스더가 상황설명을 하였다.
그는 아침 일찍 다니엘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일행이 떠나고 난 뒤에 그들은 편안해진 자신들을 발견하였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사라졌고 두통도 가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변화에 놀랐고 우리가 다녀간 것을 천사의 방문으로 여겼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아들이 헛되이 죽지 않았으며 살아 있을 때처럼 하나님 전에서 자기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멀리 한국에서 사람을 보내 자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큰 위로와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먼길을 달려왔고 에스더가 그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다니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빨간색의 모직 숄을 어깨에 둘러주며 하나님의 사랑이 늘 나를 감싸주긴 기원하였다.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두 분을 감싸주길 빌며 스카프와 옷을 드렸다.
그 분들을 배웅하고 순교자 묘소를 찾았다. 모두의 순교가 슬프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니엘의 묘소 앞에서는 그의 뜨거운 마음이 짚혀져서 가슴이 뛰었다. 자기 생명과 안전을 생각치 않은 그의 의분과 힘없고 약한 종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죽음의 공포를 떨친 그의 용기가 마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을 다투어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에 참여하다 죽은 우리 조선의 청년의 의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어붙은 죽은 가슴을 어루만지고 치유하였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렸다. 그리고 더 이상 의로운 청년들의 죽음이 없는 세상! 함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기원하였다.
하나님 전에서 순교자들의 피가 마니푸르의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결코 의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성탄의 계절에 모든 순교자들의 유족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길 빈다.
2025년 12월 2일 화요일 저녁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