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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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내가 비판하지 않으려 해도.. 내가 다른 사람의 눈에서 티를 보지 않으려 해도..
존재적 죄인인 송경순은
비판하는 걸 당연시 여기고.. 꿀을 찾는 꿀벌처럼.. 다른 사람의 티를 찾기를 즐거워 하는 죄인 중의 괴수다.
어제 밤에도 통화 중에 또 죄를 지었다. 낮부터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판단과 감정의 응어리가
풀어낼 대상을 만나니 죄의 새끼줄을 꼬아 대며 입술로 죄를 짓는다.
그리고는 또 마음이 많이 어렵다...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마음을 짓누르고.. 나 자신에 대해 또 마음이 어려워진다.
판단하는 마음도 품고 싶지 않다.
비판하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말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마음과 생각 안에 꽉꽉 채워져 있는 죄가 문제다.
난 안산에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 훈련을 받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나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이고, 긍휼이었다는 걸...
그렇게 오랜 시간 훈련을 받았는데도 내가 지금 이 모양이다.
다시 생각이 드는 건.. '역시 하나님은 공동체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과 '그런데 왜 나는 홀로 가게 하시지??" 하는 생각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내가...
내가 혀를 잘라서라도 정죄하고 판단하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면...
눈을 뽑아서 내가 다른 사람의 티를 보지 않을 수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눈이나 혀의 문제가 아니라서 문제다.
그런 죄들이 다...
마음과 생각에서 나온다는 거다.
나의 존재 자체가 죄라는 거다...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실제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다.
'죄에서 자유케 되어지는 것..'
그건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되어 사실 때에만... 가능하다.
참....
갈길이 멀기만 합니다, 주님....
언제나 제가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긍휼을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