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芒種)이란 한자 뜻 그대로라면 까끄라기망 혹은 가시랭이 망에다
씨 종자가 붙여진 말이다.다시 말해서 보리나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를 말한다.
또 절기상으로는 소만과 하지 사이에 들며 24절기중 9번째로 음력 5월, 양력으로는 6월6일경인데 올해는 6월5일에 들었다.
태양의 황경이 75도에 달한 때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 다음으로 길어 전깃불이 없던 시절에는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이 때쯤이면 농촌에서는 무지하게 바쁜 시기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보릿고개도 무사히 넘겼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고 논에 옮겨 심어야 하는 모내기는
하지 전에 끝내야 한다. 하지가 6월 21일이니 망종에서 하지까지 보름동안이 농촌에서는 제일 바쁜 시기다.
일손이 모자라 누워있던 부지갱이도 벌떡 일어나 도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리가 완전히 영글기(익기) 전에는 보리이삭이 말랑말랑하다.
산에 소 먹이러 가면서 소를 산골짜기에 저 혼자 풀을 뜯어먹게 풀어 놓고는 아해들이 모여서 재작을 짓는다.
노릇노릇한 쌀보리를 한 묶음 베어 와서 마른 소나무 가지나 잡목을 주워다가 불을 놓고선 보리를 거설러(구워서)
이삭이 시커멓게 타면 손바닥 위에 놓고 비벼서 입으로 바람을 호호 불어내면 보리껍질이 날려 나가고
연두색 알갱이만 손바닥에 남는다.파릇파릇하고 말랑말랑한 알갱이를 입 속에 탁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
풋풋한 보리향과 함께 달브드레한 단맛이 어우러져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보리를 구워 먹고 나면 모두 입가에는 시커멓게 재가 묻어 있어서 제모습은 보이지 않고 친구들의 입가가 시커멓게 보이니
서로 산도둑놈 같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킬킬대며 놀려대기도 했다.
익은 보리를 빨리 베어 내어 말려서 도리깨로 타작을 해야 한다.
이 때쯤이면 비가 잦아 낫을 갈아 제 때에 베지 않으면 (거두지 않으면) 보리 이삭에서 싹이 나버린다.
그렇게 되면 일년동안 피땀 흘려 지은 농사가 허사가 되고 만다.
보리타작이 끝나면 곧 바로 논에 물을 대어 소를 길들여 쟁기로 논 흙을 갈아 엎어야 된다.
비료가 없어서 두엄도 지게에 져다 내어 논에다 뿌려야 한다.
또 물을 대어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쓰레질도 해야 하고 논두렁도 삽으로 다시 쳐야 한다.
모내기를 할 때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므로 동네 이웃사람들이 품앗이로 돌아가면서 함께 일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모심기 때 모줄을 잡았다.
남여노소가 줄을 맞춰 모내기를 할 때는 구성진 육자베기로 고단함을 잊게 해 주었다.
모심기를 할 때는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래서 중참이란게 있는데 대개 밀가루로 부풀려 찐 술빵과 막걸리가 나왔다.
초가집 안방 구돌막에 담요로 에둘러 놓은 술단지에 누룩과 꼬두밥을 비벼서 물을 적당히 넣고
이스트를 한 봉지 털어 넣어 두면 한 이틀만에 술단지 안에서 술이 익어 복닥복닥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먹을 게 없는 시절에 아직 익지도 않은 술을 숟가락으로 한 숟갈씩 퍼 마시기도 했다.
요즘은 전깃불도 들어오고 타작도 기계가 하고 모내기도 기계로 하니 예전 같지 않다.
그리고 올해는 가뭄이 들어 한창 모내기를 해야 할 때인데 물이 없어 모내기도 못할 판이라니 걱정이다.
오죽했으면 "자식 입에 밥숟갈 들어가는 것과 모내기 한 논에 물들어 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