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일을 하던 아버지가 숨을 거뒀을 때 그는 7세였다.
어머니는 빚쟁이를 피해 달아났고,
그는 초등학교 대신 남대문시장 옷공장에서 실밥을 뜯었다.
옷공장·오락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아홉살부터 열한 살까지 그는 광양 친척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서울에서 돈 버는 누나에게 드문드문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누나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누나가 뺑소니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몹시 앓았다.
가출했다. 친척이 하루 몇백원씩 주는 용돈을 모아 2만원이 됐을 때 기차표를 샀다.
서울역 쪽방촌에 돌아와 어머니를 수소문했다.
어머니는 외대역 뒤 반지하 방에 시각장애인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의붓아버지는 지하철에서 손톱깎이를 팔았다.
1년이 조금 지난 뒤 삶에 지친 어머니가 또 달아났다.
그는 먹을 것을 훔치다가 경찰에 잡혀 서울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에 인계됐다.
이곳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새로운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2000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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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애 수녀(앞줄 오른쪽에서 2번째)와 최종호 사장(뒷줄 가장 왼쪽) 등 쎈뽈나우리 식구들과 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수녀들. |
최종호 쌘뽈나우리 사장(23). 10년전 불우한 환경에서 방황하던 소년은
지금 심리치료 도구를 판매하는
연 매출 3억원의 자활 공동체 기업 '쌘뽈나우리'의 사장이 됐다.
작년 말엔 구운 소금 판매로 사업을 확장했다.
"전부 엄마(아동상담치료 센터장 김보애 수녀) 덕분"이라고 했다
"공적인 자리에서야 '수녀님'이라고 하지만,
우리끼리 있을 땐 '엄마'라고 해요"라며 최 사장은 쑥스럽게 웃는다.
최 사장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불우청소년들의 엄마다.
최 사장은 센터에 들어와서도 첫 1년은 가출을 자주 했다. 하지만 김 수녀는
그런 최 사장에게 꿩 우리 관리, 운동장 청소 등 일을 맡기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가족이 돼줬다.
최 사장은 그런 김 수녀에 기대어 많이 울면서 가족애를 느꼈다.
그러면서 사는 것에 희망을 얻었고 열심히 노력했다.
2006년 검정고시를 거쳐 국제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최 사장이 합격하던 해 김 수녀는
'쌘뽈'은 '성 바오로'를, '나우리'는 '나와 우리'를 뜻한다.
"사회에서 제 몫을 하려면 18세 이후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국가의 보호나 지원은 18세에 끝난다"며
"센터에서 나갈 나이가 돼서 취직을 시켜줘도 적응을 못해 관두고,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며
김 수녀는 안타까워 했다.
김 수녀는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쌘뽈나우리를 세웠다.
2년후 대학 1학년을 마친 최씨가 대표가 됐다.
과거 김 수녀의 모래놀이 심리치료로 도움을 받은 한 경제인이
"모래놀이치료 도구를 판매하는 회사를 차려보는 것이 어떠냐"며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회사 수익에 수녀회 기금을 보태 1억35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102㎡·31평)를 얻었다.
최씨를 포함해 20~36살 청년 11명이 이 집에 함께 살며 쌘뽈나우리에서 일한다.
회사 수익으로 학비와 공동 생활비를 대고,
월급(110만~350만원)은 김 수녀가 청년들 이름으로 적금 붓는다.
최씨가 센터에 들어온 뒤,
최씨의 어머니는 간간이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2007년 여름 의정부 골목길에서 쓰러졌다. 암 말기였다.
119 대원들이 최씨에게 연락했다.
서울 성가복지병원으로 옮기는 구급차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울었다.
일주일 뒤 새벽 2시 어머니는 혼자 숨졌다.
김 수녀와 최씨가 갔을 때 그녀는 아직 따뜻했다.
김 수녀가 말했다.
"틀림없이 네 말을 들으실 수 있을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꼭 해라.
"최씨가 떨리는 입술을 뗐다.
"엄마, 다 털어버리고 천국에 가. 누나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해."
작년 말에는 경기도 여주의 옹기 장인이 옹기에 소금 굽는 기법을 기부해줬다.
카이스트 분석결과 미네랄이 풍부했다.
대진대 미대 교수가 무료로 판매 용기를 디자인해줬다.
소금 원료는 서해안의 청정지역인 신안군에서 가져온다.
신안군의 천일염에 미생물 효소를 넣어 황토용기에 담아
고온에서 오랜 시간 구워 만든 알칼리 소금이다.
김 수녀와 최 사장은
"이 소금을 요리에 사용하면 조미료를 쓰지 않아도 음식 맛이 난다"며
"또 아토피성 피부나 감기, 비염 등에도 좋다는 등
사용해 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입을 모아 자랑한다.
이들은 주말마다 성당을 돌며 소금 좌판을 편다.
아직 판매가 성당 위주이다 보니 매출은 크지 않다.
작년은 특히 금융위기로 매출이 줄어 3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도 조금씩 늘고 있다.
1분기까지 회사 매출을 파악해 보니 1억8000만원이었다.
많지 않은 매출이지만 수익금 중 일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받지만 말고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김 수녀는 항상 강조한다.
지난 일요일(2월 28일) 역삼동성당에서 소금을 팔던
최 사장의 꿈은 같이 있는 형제들이
"회사가 더 커져서 우리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돈을 많이 벌어서 같이 있는 형제들이
자동차 좋아하는 동생은 정비학원에 보내주고
요리 잘하는 형한테는 빵집도 내주고 싶어요.
다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그걸 이루게 도울 거예요."
첫댓글 아 위대한 사랑의 힘....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어요.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_()_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인도해준 수녀님의 사랑이 참다운 부처님의 보시이겠지요. 이런사랑이 많은이에게 전염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수녀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 듬뿍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 인간극장에서 보았네요. 수녀님 감사합니다. _()_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동입니다 ^(^ 감동 그 자체입니다 _()_
평범한 꿈이 이루어지시고
사업 대박나시길 기원드립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미안 합니다. 최종호씨. 그 어렸웠던 때에, 그대의 옆에서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 미안 합니다. 부디 성공 하셔서,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세요. 고맙습니다. 김보애 수녀님._()_()_()_
수녀님 멋싯씁니다*홧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