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했다.
2학년이 되었다는 것 외에 학교생활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산악회 활동은 1학년 때와 같고 영섭과 현영, 보영은 산악회 활동 후 가끔 뒤풀이로 만났고 현영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 혜선은 현영을 그리고 보영과 영섭을 가끔 술친구로 찾았다.
현영과 숙영과의 사이는 많이 좋아졌다.
숙영의 현영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고, 지난번 편지, 숙영이 보낸 편지를 받은 후 현영이 숙영에게 기울이는 관심이 많아져 가던 중 보람이로 인하여 그동안도 단호히 현영의 구애를 거부해온 보영을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입장이 된 현영이 숙영을 찾게 되여 숙영과의 만남도 늘게 되고 숙영의 병을 알게 된 현영이 숙영이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고 그로 인해 숙영의 부모님들도 숙영과 현영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아기를 낙태하고 미국으로 간다고 하던 보람의 소식은 그 후 정말 미국으로 갔는지 두절이 되었다.
영섭이네 과에 경기도 양주군 남면 신산리에 살고 있는 현수는 영섭과 과에서 제일 친한 친구다.
신산리는 의정부에서 적성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육군 25사단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도 군부대로 커진 마을이며 적성에서는 동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의정부와 적성을 오가는 버스가 꼭 통과하게 되어 있어 영섭과 현영이 의정부에서 학교 다닐 때는 주말이면 가고 오며 2번은 반드시 들러서 집과 학교를 오가던 곳이었다.
대학 진학을 하여 서울로 온 후로 영섭은 신촌에 있는 작은 댁에 있게 되며 문산을 거쳐 집으로 가는 때가 많아졌지만 휘경동에서 하숙하는 현영은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가는 방향이 달리하지만 휘경동에서는 신산리로 집에 가는 것이 좀 편리해 주로 신산리를 거쳐 집으로 간다.
같은 과 친구이어서 친하게 된 영섭과 현수는 이렇게 고향이 이웃이어서 가끔 고향도 같이 내려가곤 하였다.
5월 초 부처님 오신 날이 월요일이어서 연휴가 계속되는 때었다.
현수가 영섭에게 연휴에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제의를 했다.
자기네 집 앞에 좀 넓게 흐르는 시내(川)가 있는데 오염이 아직은 안 되고 민물고기와 가제 그리고 다슬기가 많으니 천렵(반두나 투망으로 민물고기를 잡아 시냇가에서 국수를 넣어 끓어 먹으며 노는 것)도하고 가제와 다슬기도 잡아 삶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영섭은 둘보다는 셋이 노는 것이 나을 것은 생각에 현영과 같이 가겠다고 제의했고 현수도 좋다고 했다.
현수도 영섭의 소개로 현영과도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에 집에 도착한 영섭은 현영이 오길 기다려 현수의 제의를 말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
현영이 물론 좋다고 동의했고 둘이는 저녁 6시쯤 신산리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는 현수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현수가 자기네 동네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농촌이라며 지름길로 가면 운치도 있고 재미있다며 따라오란다.
현수를 따라 시냇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산모퉁이에 난 오솔길을 따라 4Km 정도 들어가니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여 1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나온다.
길가에는 연초록 나무들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있고, 산에는 때늦은 철쭉꽃이 여기저기 한 무더기씩 피어있다.
동네 담장에는 라이락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진동시키고 대추나무가 초록색을 이고 산들바람이 팔랑거린다.
목가적인 냄새가 나는 전형적인 농가 여기가 현수네 동네란다
마을 앞에는 제법 넓어 보이는 시내(川)가 흐르고 그 위에는 다리도 놓여 있다.
현수의 말이 다리가 놓인 시내(川)는 아까 우리가 건너온 징검다리가 있는 시내(川)의 하류 쪽으로 우리가 온 길은 지름길이고 차들은 그 다리를 건너 돌아서 시내(市內)로 나간다며 급하여 차를 타는 경우가 아니면 현수네 동네 사람들은 주로 지름길을 이용한다고 한다.
시골에서 십여 리 정도야 보통 걷는 거리임으로.
그중에서 제법 큰 기와집으로 인도한 현수가 대문을 들어서며
“어머니 우리 왔어요.” 한다.
그 말을 받아 현수 어머니가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시며
“오느라고 수고했다, 어서들 오거라.” 하신다.
“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하는 현수의 물음에 외양간에서 황소를 돌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나오시며
“응! 나 여기 있다. 그래! 어서들 와라.” 하신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윤현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이영섭이라고 합니다.”
영섭과 현영도 인사를 드렸다.
“이쪽으로 와 여기가 내방이야.”
하고 현수가 자기 방으로 인도할 때 안방에서 무엇인지 하고 있던 초등학생이 문을 펄쩍 열고 나오며
“형! 나도 여기 있어.” 한다.
“응! 현철이구나. 형님들한테 인사해라.”
“형님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그런데 현수, 너와는 어떻게---?”
“응 내 동생이야, 부모님이 나 혼자는 쓸쓸하다고 늦둥이를 두셨어.”
그 말에 어머니가 계면쩍으신 듯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시고 아버지도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신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현수 등은 천렵 준비를 하고 가제와 다슬기를 잡을 준비도 마치고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아침 밥상에 앉았다.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숭늉을 떠가지고 들어오신다고 나가신 어머니가 잠시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들어오시더니 어머니가 혼자 말 비슷하게
“희수네 모를 못 내면 어떻게 하나? 그 집 큰일 났구먼” 하신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그 말을 들은 현수가 묻는 말에
“응? 응! 희수네 모내기가 어렵게 됐어.”
하고 건성으로 말씀하신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현수가 재차 묻는 말에
“희수네가 오늘 모를 내려고 일꾼을 둘을 샀거든?”
“그런데요?”
“이상하게 돼서 두 사람이 모두 일하러 못 온 데?”
“왜요?”
“한 사람은 갑자기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서 어제저녁에 거기 갔고 다른 사람은 배탈이 나서 꼼짝을 못 한다는 거야?”
“저런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무슨 그래서 요야, 모내기를 못하게 됐지.”
“모는 벌써 쪄 놓았을 것 아니에요?”
“그렇지 모를 쪄서 내놓은 지 여러 날이 되고 오늘 모를 못 내면 일꾼 얻기가 힘들어 또 며칠 후에나 모를 내게 될 터인데 그러면 모가 곯아 많이 못 쓰게 될 텐데 큰일이야.”
“희수네가 어딘데요?”
이제까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영섭이 끼어들었다.
“우리 동네 오른쪽 끝에 있는 집인데 우리와는 일가야.”
현수가 대답한다.
“오늘 모내기해야 하는 논이 몇 마지기나 되는데?”
“그 집이 모두 짓고 있는 논이 열 마지기인데 다섯 마지기는 이미 모를 내고 오늘 낼 것은 나머지 다섯 마지기야.”
어머니의 말씀이다.
“저희들이 좀 도와드릴까요?”하는 영섭이 말에
“학생들이?”
“너희들이?”
어머니와 현수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래! 우리가 도와드리자 현영이 너는 어때?”
“그러지 뭐! 천렵은 내일 하기로 하고”
“학생들이 모내기할 줄 알아?”
“잘은 못 해도 저희도 농촌에서 자라고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농촌봉사 활동을 해서 흉내는 낼 줄 압니다. 다섯 마지기면 하루 일하면 되겠지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내가 얼른 가서 말해야겠네.”
하며 어머니는 휭하니 나가신다.
“너희들 괜찮겠어?”
“괜찮아. 걱정하지마.”
“놀려오라고 하고서 일 시키는 꼴이 됐잖아.”
“괜찮다니까? 네가 계획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대신 내일 신나게 놀면 되지.”
그리고 현수의 설명이 있었다.
현수네 동네는 농가가 적고 논도 많지 않아 아직 이양기를 구입하지 못해 모내기를 인력으로 하고 있다고
밖이 부산해지더니 어머니의 부름 소리가 들린다.
“현수야! 나와 봐라.”
어머니 부름에 방문을 열고 나간 영섭네는 어머니와 같이 서 있는 50대 중반의 아저씨를 만났다..
“희수 아버지! 이 학생들이에요. 오늘 희수네 일을 도와준다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말씀에 그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 학생들!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아저씨! 우리가 잘 도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는 영섭이 한 말이고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현영이도 거들었다.
첫댓글 즐독입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기상조건님!
지키미님!
무혈님!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 열심히 쓰겟습니다
봄날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