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병으로서의 Lanciarii

비석에 새겨진 Lanciarii에 대한 기록들은 3세기의 끝이자 4세기의 시작이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4두체제 당시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러한 비석명 기록을 토대로, Brian Cambell을 비록한 학자들은 Lanciarii는 ‘Comitatus’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sacer comitatus’(‘신성한 수행원’. 황제는 신성한 자질을 가졌기 때문에 그를 수행하는 자는 신성성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었습니다)는 4두 황제들이 동반하고 다닌 소규모의 야전부대로서 그 기원은 전대 황제인 갈리에누스에 의해 창설된 전략예비대였으며 또한 제2 파르티아 군단의 창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호위병들인 Comitatus는 모두 Lanciarii 스타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Valerius Tertius의 커리어를 분석한 Cambell의 의견에 따르면, Lanciarius는 군단병보다는 상위에 있었지만 근위대보다는 하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가면 야전군(Comitatus의 후신)은 국경방위군보다는 상위에 있지만, Scholae 근위대보다는 하위에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Lanciarii가 군단병과 근위대의 중간에 있다는 점은 저에게 Lanciarius가 ‘경보병’ 같이 특정한 ‘타입’의 병종이라기 보다는 호위병과 같은 특정한 ‘상태’에 있는 병사라는 것이 훨씬 와 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명한 피아차-아르메리나 모자이크는 정밀한 조사에 도움이 됩니다. 시칠리아에 있는 이 놀라운 모자이크는 4두체제 후반 시기인 서기 4세기 경에 제작된 것입니다. 이 모자이크는 병사로 보이는 남자들이 코끼리, 사자 등을 사냥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그림들은 모자이크 내에 그려진 병사들을 확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원수정 후기에서 전제정 시기에 로마에서 일상적으로 입는, 현란한 무늬가 들어간 옷(달마티카 - 역주)을 입고 있으며 100년 후에 발간된 Notitia Dignitatum에 묘사된 문양이 들어간 방패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기병과 보병 모두 경무장 상태이며 심지어는 투구조차 쓰고 있지 않는데, 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그 당시 유행하는 그림 스타일이었으며 한 세기 전 아파메아의 비석에 묘사된 것과 같은 스타일의 기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섣불리 그들이 실제로 갑주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창대가 가늘고 그 창을 던지는 병사들의 동작으로 미루어 우리는 그림 속의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창이 Lancea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 입니다. 모자이크의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우리는 조악하게 비석에 새겨진 그림에서보다 Lancea에 대한 더욱 자세한 외양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문에 묘사되었던 작은 사이즈의 방패 대신 실제크기로 묘사된 방패도 인상적입니다.

위에 있는 또 다른 그림은 모자이크의 또 다른 면에 묘사된 것으로서 지체 높은 사람이 그의 호위병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는 이 모자이크가 꾸며져 있던 빌라의 주인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그는 지위 높은 장교이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최고계급의 장교, 바로 황제를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에 나온 병사들과 위에 있는 다른 그림에 나온 병사들은 어쩌면 Sacer Comitatus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에 나오는 기병들도 Lanciarii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면 여태껏 Lanciarii를 경보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겠습니다만, 디오도로스는 그의 저작에서 Longchophoroi 기마병에 대해 서술한 적이 있고 아리아노스도 그의 전술서적 ‘Techne taktike’에서 로마기병은 두자루의 Longche를 들고 다닌다고 기록해놓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이 문서의 초기버전을 웹사이트에 업로드 했을 무렵, Ross Cowan은 RSO Tomlin의 토론을 담고 있는 2장의 논문을 올려 제 관심을 잡아 끌었는데요, 이 논문들은 로마제국 치하 브리튼에서 Lancea가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다룬 ‘Roman Manuscripts from Carlisle(‘the ink-written tablets', Britannia 29 (1998), 31-84)’ 와 'The missing lances, or Making the machine work(in A. Goldsworth & I.Haynes (eds.), The Roman Army as a Community, JRA supp. ser. no. 34 (1999), 127-38)' 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가지 중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전해 듣기로는 서기 100년 경에 기병대 십인대장이 자신의 병사들이 Lanceae를 잃어버렸다면 손망실 보고를 한 편지라고 알고 있으며, 여기에서 개개 기병은 Lancea와 함께 경투창으로 보이는 ‘Subarmales’라고 부르는 무기 2자루를 더 지참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보아 심지어는 원수정 초기라 할 지라도 Lancea를 사용하는 주체가 꼭 보병으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더 주목해보면, 4두체제 시절의 기병 Lanciarius에 대한 Cambell의 주석은 Lanciarii (Lanceae를 소지한 병사가 아니라 아직은 Lanciarii가 아닌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을 때의 Lanciarii) 를 단순히 보병대에 한정하여 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Lanciarii에 대한 분류가 그들의 기능이나 무장보다는 앞서 말씀드린 바 있듯이 ‘호위대’ 라는 그들의 ‘상태’ 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러한 분석은 기존에 알려진 Lanciarii 라는 병종의 용도와 크게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시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가 Lanciarii에 대한 비석문 증거를 가진 바로 그 군단, 제2 파르티아 군단은 그 비석이 만들어질 당시 여전히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군단은 로마군단으로서는 처음으로 로마국경 밖에 영구주둔을 하고 있었으며 나중에는 황제와 함께 파르티아에 대한 동방원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요세푸스와 아리아노스의 언급처럼 황제나 다른 유력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개의 군단이 Lanciarii를 배속하고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개 군단이 통째로 근위병단처럼, 즉 Lanciarii로서 움직였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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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일단 번역한 곳 까지는 다 왔네요. 아직 반 정도가 남긴 했는데, 이건 언제 번역할지 좀 요원합니다-_-;;;;;;
첫댓글 오오 정말 새글이 나오길 기대하고있습니다 우오오옹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나머지 반은 제가 지금 인턴 원서 쓰느라 정신이 없지만 최대한 틈틈이 번역해보겠습니다.
총독님 고생많으시네용 천천히하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