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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始 無 始 一 析 三 極 無 盡 本 (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 |
<번역>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되지만 시작이 없는 ‘하나(一)’이며 그 ‘하나(一)’에서 천지인 삼극이 갈라져 나오지만 근본은 다함이 없도다.
(해설) 궁극적 실재(根源的一者)인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되지만 그 ‘하나(一)’는 감각이나 지각을 초월해 있으며 인과법칙(因果法則)에서 벗어나 자본자근(自本自根).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절대유일의 ‘하나(一)’인 까닭에 시작이 없는 것이라 하여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라고 한 것이다.
시작도 없다는 것은 동시에 끝이 없다는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하나(一)’에서 천. 지. 인 삼극이 갈라져 나오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는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곧 근원성, 포괄성, 보편성을 띠는 ‘하나(一)’의 본질과 무한한 창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 하자면 천. 지 . 인 혼원일기인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나오는 일즉삼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천부경의 논리구조로 볼 때 삼(三)은 사람과 우주만물을 나타내는 기본수이므로 ‘일즉삼’ 곧 ‘일즉다’ 이다. 이러한 본체와 작용의 상호관통은 一과多 理와事, 靜과動, 空과色이라는 불가분의 관계로 분석될 수 있다. 여기서 ‘하나(一)’라고 한 것은 ‘하나(一)’라는 명상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사실로서 존재해온 것으로 유(有)라고 하자니 그 모습이 텅 비어있고 무(無)라고 하자니 우주만물이 다 이로부터 나오니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그냥 ‘하나(一)’라고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 묘한 ‘하나(一)’에서 만유가 비롯되니 하도 신령스러워서 때론 님자를 붙여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궁극적 실재인 ‘하나(一)’는 그 자체는 생멸(生滅)하지 아니하면서 만유를 생멸케 하고 그 자체는 무 규정자이면서 만유를 규정하며 만유에 편재해 있는 무시무종의 유일자이므로 감각과 지각을 초월해 있으며 언어세계의 포착망에서 벗어나 있다. 유일신이 만물에 편재해 있음은 비가 대지를 고루 적시고 태양이 사해를 두루 비추며 달빛이 천강을 고루 물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일신은 본래 무명이다. 유일신에 이름을 명명하는 것은 신을 죽이는 일이다. 모든 종교가 그토록 경계하는 우상숭배에 빠지는 일이다. ‘나’ 만의 ‘하나’님 내 종교만의 ‘하나’님으로 묶어두게 두면 ‘하나’님은 보편성을 상실하고 물질화 되어 무소부재일 수 없고 절대 영원일 수도 없으니 유일신을 죽이는 일이 되는 것이요. 만유에 편재해 있는 ‘하나’님의 실체를 외면 한 체 자신의 부정한 의식이 만들어낸 “나”만의 ‘하나’님 내종교만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짚신이나 나막신 수준의 물신을 경배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우상숭배에 빠지는 일이다. 이 세상 모든 반목과 갈등은 우주만물에 내재하는 절대유일의 ‘참나’를 깨닫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으로 분리시킨 데서 오는 것이다. 절대 유일의 ‘참나’가 곧 유일신이다. 천. 지. 인 삼신이 곧 유일신 ‘하나(一)’이다. 따라서 ‘참나’는 천. 지. 인 삼신이 곧 유일신 ‘하나(一)’를 지칭하는 것이다. 오늘날 삶과 종교, 종교와 종교간 불화의 단초가 되고 있는 유일신 논쟁은 진리의 편린에 집착함으로 인해 큰 진리가 가려진 데서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믿는 신만이 유일하다고 하는 편견과 아집이 결국은 전쟁을 불러오고 급기야 아프가니스탄 일질사태를 초래하게 한 것이다.
우주만물에 내재하는 ‘참자아’의 동질성을 깨달은 사람은 우주의 조화 기운과 하나가 됨으로서 유일신과 한 호홉 속에 있게 된다. 모든 종교에서 그토록 유일신을 섬기라고 하는 유일신이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참나‘이며 ’참나‘에 대한 주체적 자각 없이는 인간의 자기실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하나(一)’인 ‘참나’를 공경함은 곧 진리인 실체에 대한 인식이며 동시에 우주 ;한생명‘ 실천이다. 우주의 실체는 의식이므로 ‘하나(一)’인 ‘참나’는 곧 순수의식(천채의식,우주의식)이요 하나인 마음이다. 거울에 비친 형상과 거울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마음의 거울에 비친 만상과 마음을 분리시킬 수 없다. 거울이 모든 형상을 받아드리고 바다가 모든 강줄기를 받아들이듯이, 일심一心 은 만물만상을 포용한다. 우리들 자신의 깊은 의식이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의식의 근원에 이르게 되면 하나의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일심의 나타남이다. 우리의 마음이 일심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면 천심과 부합되어 사랑과 평화 행복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변역> 하늘의 본체(天一)가 첫 번째(一)로 열리고, 땅의 본체(地一)가 두 번째(二)로 열리고, 인물의 본체(人一)가 세 번째(三)로 생겨나는 것이라.
(해설) 먼저 하늘의 본체가 열리고 다음으로 땅의 본체가 열리고 그다음으로 인물의 본체가 생겨난다고 하여‘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한 것이다.
‘천일, 지일, 인일’은 ‘하나(一)’의 본체를 천. 지. 인 셋으로 나눈 것으로 그 근본은 모두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一)’의 묘리의 작용으로 천지가 열리고 인물이 생겨나는 무위의 천지창조 과정을 일一, 二이, 三삼의 순서로 나타낸 것이다.
실지로 천지운행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혼원일기인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리고 그 ‘하나(一)’가 곧 참나(우주적본성, 신성, 자성, 일심)임을 체득하지 않고서는, 천. 지. 인 삼재의 융화를 이룰 수가 없으며 따라서 우주 ‘한생명’을 실천할 수도 없다.
‘하나(一)’에서 천. 지. 인의 본체가 열리는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은 영적차원에서 물질 차원으로, 근원적 일자(一者)의 위치에서 다양성의 세계로 나오는 일즉삼, 일즉다의 이치를 천치창조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정신은 물질을 통하여, 보편성은 특수성을 통하여 스스로 구현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서, 정신과 물질, 보편성(전체성)과 특수성(개체성)의 관계에 대하여 사유하게 한다. 사람이 일심의 원천에 이르면 정신과 물질이, 보편성과 특수성이 결국 하나임을 알게 되고 본체계와 현상계의 양 세계를 자유로이 내왕함으로서 ‘색(色,物質,有) 이 곧 공(空,精神.無)이요 공이 곧 색임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현상의 본질로서 존재 자체 속에 내재해 있는 절대유일의 ‘하나(一)’인 보편자는 물질을 통하여 특수성을 통하여 구체적 현 실태가 되는 것이다.
一 積 十 鉅 無 匱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 |
<변역> ‘하나(一)’가 쌓여 크게 열(十)을 이루지만 다시 다함이 없이 천.지.인 삼극(三極)으로 화하게 되는 도다.
(해설) ‘하나(一)’는 만유가 비롯되는 현묘玄妙한 문이요. 천변만화가 작용하는 생명生滅의 문이며, 만물만상이 하나가 되는 진여眞如의 문이다.
‘하나(一)’의 묘리의 작용으로 우주만물이 생장. 분열하고 수렴. 통일되지만 그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장.분열하는 천. 지. 인 삼극의 천변만화의 작용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은 다함이 없이 순환 반복되는 것이라 하여 一 積 十 鉅 無 匱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一)’가 종자라면 우주만물(三)은 그 나무이고 열(十)은 그 열매다.
따라서 ‘하나(一)’와 세(三)과 열(十)은 종자와 나무와 열매의 관계로 모두 하나이다. 천부경의 사상은 한마디로 대일(大一)의 사상 즉 ‘한사상’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제 2장 중경(中經) 지전 (地轉)
중경 지전에서는 음양양극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천지 운행이 이루어지고 음양오행이 만물을 낳는 과정이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하나(一)’의 이치와 기운의 조화 造化 작용을 나타낸다.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_)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_) |
<번역> 하늘에도 음양이 있고 땅에도 음양이 있으며, 사람에게도 음양이 있어 음양 양극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으로 천지운행이 이루어지고 우주만물이 생장 변화 하도다.
<해설) 하늘에도 음양(日月)이 있고 땅에도 음양(水陸)이 있으며, 사람에게도 음양(男女)이 있어 음양 양극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으로 천지가 운행하고 우주만물이 생장 변화 하므로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도덕경』에서 도(道)는 일(一)을 낳고 일은 이(二)를 낳으며, 이는 삼(三)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陰)을 업고 양(陽)을 안으며 충기(冲氣)라는 화합력에 의하여 생성된다. 라는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렇듯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은 음양 양극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으로 천지운행이 이루어지고, 만물이 화생하는 과정을 본체와 작용의 상호 관통으로 풀이할 때 자기 생성적 네트워크 체제로서의 우주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
<번역> 대삼(大三), 즉 하늘의 음양(二)과 땅의 음양과 사람의 음양이 합하여 육(六)이 되고, 칠 팔 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해설) 대삼(大三), 즉 하늘의 음양과 땅의 음양과 사람의 음양이 합하여 육(六)이 되고, 육에 천. 지. 인 기본수인 일一, 이二, 삼三을 더하여 칠 팔 구가 생겨나는 것이라 하여 ‘대삼합육 생칠팔구’라 한 것이다.
음양 이기二氣에의해 오행(水 . 火. 木. 金. 土)이 생성되고 음양오행에 의해 만물이 생겨나지만 음양오행 그리고 만물 내에도 ‘하나(一)’의 진성은 그대로 존재하므로 ‘하나(一)’와 음양오행과 만물은 분리시켜 생각 할 수 없다.
말하자면 ‘하나(一)’는 본체계와 현상계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일자一者로서 우주만물에 편재해 있는 보편자이다.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 성환오칠) |
<번역> 천. 지. 인 셋三이 네四 단계, ‘하나(一)’ 일 단계) (천일 지일 인일 이단계) (천이 지이 인이 삼단계)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네 단계를 운행하면서 오행(五)이 생성되고 음양오행(七)이 만물을 낳는 과정이 순환 반복되는 원궤(環)를 이루는 것이라.
(해설) 천. 지. 인 셋三이 네四 단계, 즉 ‘하나(一)’ 일 단계) (천일 지일 인일 이단계) (천이 지이 인이 삼단계)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네 단계를 운행하면서 오행(五行:수화목금토)이 생성되고 음양오행(七)이 만물을 낳는 과정이 끝없이순환 반복되는 원궤(環)를 이룬다고 하여 ‘운삼사 성환오칠’이라 한 것이다.
이 네 단계는 『도덕경』의 도생일 道生一, 일생이 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 三生萬物의 도道, 일一, 이二, 삼三 의 네 단계와 일치하는 것이다. 음양이기二氣에 의해 오행이 생성되고 음양오행에 의해 만물이 화생하나, 만물은 결국 하나의 음양으로, 그리고 음양은 ‘하나(一)’인 혼원일기混元一氣 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체와 작용의 관계를 불교에서는 연기적 緣起的 세계관으로 풀이하는데 윤회사상은 바로 이연기적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다. “이미 건너가야 할 저쪽 언덕이 없는데 어찌 떠나가야 할 이쪽 언덕이 있으리” 라고 한 『열반종요涅槃宗要』의 구절이 말하여 주듯, 기실은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니 윤회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얽매인 그 마음이, ‘나와너’ ‘이것과 저것’을 이원화 하고 편착偏着하는 그 마음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三 과사四의 수리數理를 운용하여 오五와 칠七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바가 표징標徵하는 인간 세계의 윤회란 오욕칠정이 낳은 우리 내부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다함이 없이 카르마(업.業)의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카르마의 법칙(윤회의법칙 또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 은 인간의 영혼이 완성에 이르기 위한 조건에 관계한다. 내적자아의 각성과 영적인 힘의 개발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인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야 말로 이러한 법칙에 대한 용제溶劑이다.
궁극적 실재인 ‘하나(一)’와 우주만물이, 본체와 작용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하여 이 우주가 ‘한생명’임을 깨닫게 되면, 윤회의 수레바퀴는 멈추게 될 것이다. 오욕칠정을 쫒는 삶이 허망한 것은, 향이 다 타서 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듯 우주의 조화 작용과 인간의 정신작용이 조응관계에 있는 것은 혼원일기인 ‘하나(一)’가 천. 지. 인을 관통해 있기 때문이다. 우주만물은 모두 간 것은 다시 돌아오고 돌아온 것은 다시 돌아가는 법,
이러한 자연의 이법理法을 일러 『동경대전東經大全』『문학문論學文』에서는 ‘무왕불복지리’無往不復地理 즉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이법’ 이라고 하고 천도天道라고 명명하고 있다. 천. 지. 인 셋이 네 단계를 운행하면서 오와 칠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이 숫자들의 묘합(妙合)에서 하도낙서河圖洛書로 설명되는 음양오행, 팔괘(八卦)가 나오고 천지운행의 원리가 나온다.
삼三과사四의 묘리를 운용하여 오五와 칠七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것을 도형으로 나타내는 것이 원방각(圓方角 ○□△)이며 삼일도를 형성하게 된다.
생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삼라만상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할 뿐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 모두가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의 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초목을 키우고 초목은 다시 인간에게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생명의 흐름은 상호의존 상호전화 상호관통 하는 원궤를 이루며 영원히 이어진다. 일원(우주의 1년)인 12만9천6백년을 주기로 천지개벽의 도수度數에 따라 우주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개벽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순환,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고 태양계는 은하세계를 약 2억 2천만년 주기로 회전하며 은하세계는 은하단을 향하여 회전운동을 하는 천체의 순환, 그리고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에 조응하는 생명체의 순환, 카르마의 작용이 불러일으키는 의식계의 순환, 그 속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제3장 하경(下經) 인물(人物)
하경 인물에서는 우주만물의 근본이 ‘하나(一)’로 통하는 삼즉일(三卽一)의 이치와 소우주인 인간의 대우주와의 합일을 통해 하늘의 이치가 인간 속에 징험(徵驗)됨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一)’의 이치와 그 조화 기운과 하나가 되는 일심一心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경 “천리”가 가능태(可能態)라면, 하경 “인물”은 구체적 현실태로 “천부중일(天符中一)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一 妙 衍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本 心 本 太 陽 昻 明 人 中 天 地 一 (본심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
一 妙 衍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
<번역> ‘하나(一)’의 묘리妙理의 작용으로 삼라만상이 오고가며 그 쓰임(用)은 무수히 변하지만 근본은 변함이 없도다.
(해설) ‘하나(一)’의 묘한 이치의 작용으로 삼라만상이 오고가며 그 쓰임은 무수히 변하지만 근본은 변함도 다함도 없는 까닭에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이라 한 것이다.
우주만물이 다 지기至氣인 ‘하나(一)’의 화현化現이고 우주만물의 생성. 변화. 소명 자체가 모두 ‘하나(一)’混元一氣의 조화의 자취이니, ‘하나(一)’의 묘리妙理의 작용으로 삼라만상이 오고 간다고 한 것이다.
우주만물은 ‘하나(一)’에서 나와 다시 ‘하나(一)’로 복귀하므로 ‘하나(一)’의 견지에서 보면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없다. 만물만상은 무상無常한지라 한결같을 수 없고 오직 ‘하나(一)’만이 한결같아서 이러한 대립과 운동을 통일시킨다. ‘하나(一)’는 천지만물의 근원으로서 무한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달(月)이 수천 갈래 시냇물에 비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달은 변함도 다함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밤이 다하면 물속에 있는 수천 개 ‘달’은 그 근원인 ‘달’에 의해 거두어진다. 무지無知의 바람이 고요해지면 일체의 현상은 ‘하나(一)’의 본질속이로 흡수되기 마련인 것이다. 본체계와 현상계, ‘하나(一)’와 우주만물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실체와 보이는 그림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자본자근自本自根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하나(一)’의 조화 즉 생명의 파동적波動的 성격을 깨닫게 되면, 불연不然의 본체계와 기연期然의 현상계를 회통會通함으로서 내재와 초월, 본체와 작용이 결국 하나임을 알게 된다. 창조주와 피조물, 신과 인간의 이분법적 도식화는 본체계와 현상계를 상호 관통하는 ‘하나(一)’의 조화 작용을 깨닫지 못한데 기인한다.
일체의 이분법이 폐기된 이른바 ‘무리지지리 불연지대연’ 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의 경계에 이르면, 삼라만상은 ‘하나(一)’混元一氣 가 남긴 자국들에 불과 한 것임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진여眞如 와 생멸生滅, 본체와 작용의 합일을 깨닫게 되면, 자기생성적 네트워크 체제로서의 ‘참여하는 우주’가 그모습을 두러내는 것이다. ‘창조론’ 과 ‘진화론’의 논쟁은 일체의 생명현상이 자기 근원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체-객체 이분법으로 무리하게 설명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스스로 생성되고 스스로 변화하여 스스로 돌아가는 것인데, 누가 누구를 창조한단 말인가! 거울에 비친 형상과 거울을 분리시킬 수 없고, 천강千江에 비친 달그림자와 달은 분리될 수 없듯이, 우주만물과 혼원일기混元一氣인 ‘하나(一)’ 즉 유일신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풀 한포기 물방울 하나 까지도 모두 유일신 ‘하나(一)’ 混元一氣의 조화작용이 나타남인 까닭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창조하는 주체와 창조되는 객체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주체-객체 이분법에 근거한 ‘창조론’의 설명은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비과학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진화론 또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곧 다른 ‘모든것’임을, 생명의 유기성과 상호 관통을 어찌 ‘진화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주체-객체의 이분법적 사고가 폐기되고 진지眞知를 체득함으로써만이 종식될 수 있는 것이다.
本 心 本 太 陽 昻 明 人 中 天 地 一 (본심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 |
<번역> 인간의 근본 마음자리는 우주의 근본인 태양과도 같이 광명한 것이어서, 이렇게 환하게 마음을 밝히면 사람 속에 천지가 하나가 되어 천. 지. 인 삼신일체三神一體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 인간의 참본성은 우주의 근본인 태양과도 같이 광명한 것이어서, 이렇게 환하게 마음을 밝히면 사람 가운데 천지가 하나로 녹아들어가 천. 지. 인 삼재의 융화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라 하여 ‘본심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근본은 우주의 근본과 하나로 통하는 것이어서 인간의 참본성(神性.自性.一心.‘참나’)이 회복도면 천. 지. 인 삼재의 융화가 구체적 현실태로 나타남으로써 인간의 완전한 자기실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나’와 만나기 위해 인류는 그토록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 왔다. 역사상 그 무수한 국가의 멸망과 문명의 부침浮沈과 삶과 죽음의 투쟁, 그 모든 것은 ‘참나’와 만나기 위한 교육 과정이요, 국가, 민족, 인종, 종교, 성, 계급간의 경계를 넘어 인류가 하나임을 인식하기 위한 시험의 관문이었다.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건강과 병, 맑은 하늘과 태풍 등의 대조적 체험을 통해 우리 영혼은 더욱 맑고 밝고 확대되고 강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들이 모두 하나라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참나’로 가는 길이 곧 동귀일체同歸一體요 귀일심원歸一心源이다. ‘참나’가 바로 불생불멸의 영원한 ‘하나(一)’ 이며 이는 곧 하나인 마음一心으로 우주적 본성을 일컬음이다.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면 사람이 하늘을 모시고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되는 법. 이는 곧 평등성지平等性智의 나타남이다. 만유가 그러하거니와 사람 또한 지기至氣인 ‘하나(一)’ 즉 하늘의 화현인 까닭에 하늘과 둘이 아니므로 인내천人乃天이라 한 것이다. 깨달은 자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깨달은 존재이다. 말하자면 일심은 근원성, 포괄성, 보편성을 띠는 까닭에 우주만물의 근본과 하나로 통하게 되므로 일체가 밝아지는 것이다. 이는 곧 소우주인 인간과 대우주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부경의 진수는 바로 이 “인중천지일”에 있다. 천부경 81자의 의미는 뒤에 나오는 삼일신고三一神誥 366자와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이념을 366사事로써 제사한 참전계경參佺戒經에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天地人. 귀신. 음양에서 “사람이 바로 하늘이요 하늘이 바로 사람이니 사람밖에 하늘이 없고 하늘 밖에 사람이 없다”고 한 것도 ‘인중천지일’과 같은 의미이다.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三敬사상은 우주만물의 조화적 질서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것으로 마음을 밝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경천은 허공을 향하여 상제上帝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공경함이니, ‘오심불경 즉천지불경 吾心不敬 卽天地不敬’이라고 한 것이다. 우주만물에 대한 차별없는 사랑과 공경의 원천인 바로 그 하나인 마음을 공경함이 곧 ‘경천’이다. 우상숭배란 바로 이경천의 도道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저 푸른 창공도 저 까마득한 허공도 아닌 하나인 마음 즉 ‘하나(一)’를 공경함으로써 불생불멸의 참자아 즉 자신의 내재적 본성인 신성神性을 깨닫게 될 것이요, 일체의 우주만물이 다 내 동포라는 전체의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며, 기꺼이 헌신하고자하는 마음,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나니, 실로 ‘하나(一)’ 에 대한 공경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중추를 틀어쥐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천의 원리는 경인의 행위가 수반되지 않으면 발현될 수 없는 까닭에 ‘사람을 버리고 하늘을 공경한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해갈을 구하는 자와 같다, 고 한 것이다.
천부경에 나타난 ‘천부중일天符中一’의 이상은 인간의 신성회복을 통해 인류의 삶을,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인간과 신의 이원성을 폐기함으로써 이성과 신성을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낡은 교의나 철학적 사변이나 언어적 미망을 떠나있으며, 에고가 만들어 낸 일체의 장벽을 해체할 것을 선언한다. 그것은 우주 ‘한생명’에 대한 선언이요 ‘성통공완性通功完’에 대한 갈파이다.
실로 참본성이 열리지 않고서는 공功을 완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부정한 의식의 철폐를 통한 지지眞知의 회복, 바로 여기에 제2의 르네상스가 있고 제2의 종교개혁이 있다. 그것은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체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것은 유럽적이고 기독교적인 서구의 르네상스나 종교개혁과는 달리, 전 인류적이고 전 지구적이며 전 우주적인 존재 혁명이 될 것이다. 삶과 학문, 삶과 종교, 학문과 종교, 종교와 종교의 진정한 화해는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천부경의 ‘하나(一)’ 의 원리는 일즉삼, 삼즉일의 이치를 명징하게 밝힘으로서 무수한 진리의 가지들을 하나의 진리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다. ‘인중천지일’은 이성과 신성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부경의 실천적 논의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이성과 신성이 통합된 ‘참삶’속에서 자유의지와 필연, 개체와 전체는 하나가 된다.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와 인사人事가 조응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면, 세상만사를 인간이 모두 주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주재할 수 없는 필연의 영역을 인정함으로써 사람의 할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이른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지혜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와 필연의 문제는 곧 개체와 전체의 두 대립되는 범주에 관한 것으로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다. 인간 비극의 단초가 바로 이 양자 간의 부조화에 있다. 세상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괴로원하는 것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연단의 관정을 통하여 마침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사람이 법을 좇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좇고 물질이 의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물질을 거두어들이는 ‘천부중일’의 이상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삼즉일 의 원리가 인간존재속에 구현되는 것으로, 물질문명의 상흔傷痕 을 치유해 줄 진정한 문명의 개창은 이로부터 시작 될 것이다.
여기 까지만.....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 |
<번역>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되고 다시 ‘하나(一)’로 돌아가지만 끝이 없는 영원한 ‘하나(一)’로다.
(해설)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되고 다시 ‘하나(一)’로 돌아가지만, 우주만물의 근본이 되는 그 ‘하나(一)’는 ‘하나(一)’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부터 이미 사실로 존재해 온 까닭에 시작이 없으며 따라서 ‘하나(一)’로 돌아가지만 끝이 없는 ‘하나(一)’라 하여 ‘일종무종일’이라 한 것이다. 끝이 없다는 것은 곧 시작이 없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무시무종의 영원한 ‘하나(一)’로 천부경은 끝난다. 불생불멸인 ‘하나(一)’는 진여와 생멸, 진제와 속제, 본체와 작용의 이분법이 완전히 폐기된 경계인 까닭에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오고가지도 않은 것이다.
이렇듯 ‘천부중일’의 이상을 구현하는 이법은 우주만물의 근원인 ‘하나(一)’에로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것이다. ‘하나’님天主, 절대자, 창조주, 알라신, 도, 불, 브라흐마등 다양한 이름으로 행해지는 종교적 숭배는 그 무어라 명명하든 모두 우주만물의 근본인 混元一氣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래의 뿌리에로 원시반본 하기 위한 것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가 수기를 뿌리로 돌리듯, 일체의 생명은 본래의 뿌리로 돌아감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만인이 우주적 본성을 회복하여 소아小我의 유위有爲가 아닌 대아大我의 무위無爲를 따르게 되면 동귀일체가 이루어져 천지가 합덕合德하는 후천의 새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상경 ‘천리’에서는 천지인 혼원일기인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나오는 일즉삼(一卽三.執一含三)의 이치를 드러내고, 중경 ‘지전’에서는 음양양극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천지운행이 이루어지고 음양오행이 만물을 낳는 과정을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하나(一)’의 이치와 기운의 조화造化 작용을 나타내며, 하경 ‘인물’에서는 우주만물의 근본인 ‘하나(一)’로 통하는 삼즉일(三卽一.會三歸一)의 이치와 소우주인 인간의 대우주와의 합일을 통해 하늘의 이치가 인간 속에 징험徵驗됨을 보여주고 있다. 상경 ‘천리’가 가능태라면 하경 ‘인물’은 구체적 현실태로 ‘천부중일’의 이상을 명징하게 제시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