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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폐엔 0이 너무 많아서….’
한국은행이 각국 중앙은행 전문가들을 불러 ‘화폐 액면체계 변경’에 대한 토론을 진행해 주목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 논의가 재가동될 가능성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7일 서울 본관에서 ‘국제화폐 컨퍼런스’를 열었다. 달라진 화폐수급 환경에 대응해 중앙은행의 역할을 찾자는 취지였다. 미국 유럽 독일 일본 호주 등 7개국 중앙은행의 발권·금융 담당자들이 초대됐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이 주최한 화폐 관련 국제회의로는 이번이 가장 크고 주제도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이 가운데 ‘화폐 액면체계 변경’의 경험과 경제적 영향이 비공개 토론 주제로 잡혀 눈길을 끌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언급됐던 리디노미네이션 정책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 변동 없이 기존 화폐단위를 일정 비율만큼 낮추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원화를 1000분의 1로 리디노미네이션하면 현재 1000원은 1원이 된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것은 원화가 ‘0’이 많기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액면단위는 그대로다. 기업회계에선 조(兆)원, 금융시장에선 경(京)원까지 심심찮게 나오면서 계산상 비효율이 높다. 원화값이 미국 달러화의 1000분의 1로 여겨지는 등 경제 위상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과거 정부 초기마다 과제로 제시됐지만 실제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새 화폐를 만들고 현금지급기 등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작은 금액단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어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짐바브웨와 베네수엘라, 북한 등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액면단위를 끌어내렸다가 환율과 물가가 급등하는 등 혼란을 겪었다.
그런데도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이번 정부에선 지하경제 양성화의 대안으로 조명받기도 했다. 숨겨놓았던 현금을 새 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 과세 대상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였다. 정부는 일단 유보적이다. 지난해 3월 현오석 부총리는 “경제에 큰 충격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고려할 수 없다”며 논의를 잠재웠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필요성과 유효성, 비용을 분석한 뒤 판단해야 한다”며 다소 여지를 뒀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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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오해 와 진실 - 한국경제 -
지난 7일 한국은행의 비공개 국제회의에서 리디노미네이
션을 포함한 화폐 액면체계 변경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이 또 한 번 이슈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논의를 위해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리디노미네이션은 기존 화폐단위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원화를 1000분의 1로 리디노미네이션한다면 현재의 1000원은 1원이 된다. 단순히 ‘0’들을 떼어낸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표시되는 재화와 서비스 가격의 단위만 바뀔 뿐이다. 재화와 서비스들의 상대가격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소득, 물가, 환율, 수출입 등 경제의 실질변수도 변화가 없다.
그러나 과거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둘러싼 주장들이 분분했다. 2002년 한은이 1000원을 1환으로 바꿔 달러와 1 대 1로 유지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됐고,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잠깐 언급됐다가 사라졌다.
이런 논란에서 잘못된 부분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정치·경제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화폐개혁과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퇴장자금 양성화를 목적으로 예금의 지급정지, 신구화폐 교환의 제한, 보유자산에 대한 과세 등의 조치와 병행될 경우 리디노미네이션은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주게 된다. 이런 화폐개혁은 재산권 행사를 크게 제한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재산 손실을 막기 위해 서둘러 예금을 인출하거나 재산 가치를 유지할 만한 재화를 구입해 놓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예금 인출 및 인플레이션 등이 발생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이유는 단순한 리디노미네이션이 아니라 바로 이런 조치들을 동반한 화폐개혁 때문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화폐개혁과 혼동하는 이유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리디노미네이션을 포함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화교들이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자금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장롱 속 자금이 예상보다 많지 않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오해만 불러일으켰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공약했을 때 지하경제의 잠자는 돈을 끌어내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낳기도 했다.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를 억제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한 화폐액면 조정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지 않는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는 재정개혁을 동반한 리디노미네이션일 경우에만 이것이 가능하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임과 동시에 재정지출을 뒷받침했던 통화팽창을 줄이는 것을 포함한 화폐개혁을 하는 경우다.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사람들이 화폐를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화폐수요가 감소하고 화폐의 유통속도가 빨라진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킨다. 그런 상태에 있는 국가에서 재정개혁을 동반한 화폐개혁을 실시하면 빨라졌던 화폐 유통속도가 감소하고 화폐수요가 증가해 인플레이션이 억제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더라도 재정개혁을 수행하는 국가는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실패한다.
물론 순수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단위 축소에 따른 거래 편의 제고와 회계장부 기장 처리의 간편화라는 편익이 있다. 그러나 컴퓨터 시스템 변경, 현금처리 자동화기기 대체 및 변경에 따른 비용도 따른다. 따라서 우리가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 고려할 점은 비용과 편익이다.비용보다 편익이 크다면 실시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면서 다른 정치·경제적 목적을 병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안재욱 < 경희대 서울부총장 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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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부자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에 왜 예민한가 - 한국 경제 -
한동안 잠잠했던 ‘리
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재연되고 있다. 2000년 이후로만 따진다면 세 번째다. 종전과 다른 것은 테이퍼링(양적완화 규모 축소)을 첫 단추로 앞으로 본격화될 출구전략의 대응책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가치에 변동을 주지 않으면서 거래단위를 낮추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현재 달러당 네 자릿수의 원화 환율을 세 자릿수나 두 자릿수로 변경하는 것이다. 2005년 이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추진했던 리디노미네이션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특정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거래편의 제고 △회계기장처리 간소화 △물가 기대심리 억제 △대외위상 제고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 △부동산 투기 심화 △화폐주조비용 증가 △각종 교환비용 등 단점도 만만치 않다.
테이퍼링 추진 이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재연되는 것은 우리 경제 위상에 맞지 않는 원화 거래 단위로 충격을 더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하드웨어 면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세계 270개국 가운데 소득규모(GDP)로는 14위, 무역액으로는 8위, 수출액과 시가총액은 각각 7위다.
하지만 부패도지수(CPI), 지하경제 규모, 조세피난처에 숨겨 놓은 검은돈 등으로 평가되는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부패도지수를 보면 지난해 조사대상 177개국 중 46위를 차지해 현 정부 들어 오히려 한 단계 뒷걸음질쳤다.
투자국 지위도 파이낸셜타임스지수(FTSE)로 선진국, 모건스탠리(MSCI)지수론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준선진국인 셈이다. 그러나 화폐 단위로 본다면 1달러에 네 자릿수 환율을 유지하고 있어 한국보다 경제발전 단계나 국제위상이 훨씬 떨어지는 국가에 비해 많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같이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자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최근처럼 대전환기에는 쏠림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좋을 때는 선진국 대우를 받아 외국자금이 대거 유입되다가 나쁠 때는 신흥국으로 전락해 들어왔던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이른바 ‘샌드위치 쏠림현상’이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재연되는 것도 외형상 선진국 지위에 맞게 부패를 척결하고 화폐거래 단위를 변경해 쏠림현상을 줄이자는 목적에서다. 같은 목적으로 2000년 이후 각국은 신권을 발생했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를 새롭게 도안했고, 일본은 20년 만에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발행했다. 신흥국도 앞다퉈 신권을 내놓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신권을 발행해 목적을 달성한 국가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이 해당한다.
하지만 신흥국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그후 이 국가들이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위상 증가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가 앙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거세게 불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그랬고 2009년에 단행했던 북한도 실패했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법화(法貨·legal tender) 시대에 신권을 발행하는 것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에는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높은 부자들과 대기업의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신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 단행의 목적을 거둘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 전제조건의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들은 위조지폐가 발견되거나 부패가 심하고 최근처럼 대규모 자금이탈이 심한 긴박한 상황에서 그것도 급진적인 리디노미네이션까지 병행했다.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논리에 밀려 논의되고 추진됐다는 의미다. 바로 이 점이 결과의 차이다.
우리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것은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액면 단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기업회계에선 조(兆)원, 금융시장에선 경(京)원까지 심심찮게 나온다. 원화거래 단위도 달러화의 1000분의 1로 여겨지는 등 경제 위상과도 맞지 않다.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고 테이퍼링 추진에 따른 금융불안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화폐개혁에 해당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거나 논의하는 그 자체도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성숙될 때 논의되고 추진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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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디노미네이션 지금이 적기다 - 시사저널 - 2013.03.21 (목) 오후 6:28
최근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 화폐 단위의 액면 절하)이 거론되고 있다. 국내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양적 완화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은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는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다.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리디노미네이션은 더욱 어려워진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고려할 때 만약 리디노미네이션을 생각한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볼 수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에는 원화의 국제적 위상 제고, 불필요하게 큰 회계 단위를 쓰지 않는 데서 오는 편리함, 지하경제 양성화 등 유익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리디노미네이션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한다. 직접 비용인 신규 화폐 발행 비용, 금융권 전산 시스템 변경뿐 아니라 실물 투기 및 자금 유출, 물가 상승 압력, 경제적 혼란 등 간접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리디노미네이션을 한다면 편익과 비용의 차이, 즉 순편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일단 비용 측면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 편익 측면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가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런 만큼 물가 상승 우려를 진정시키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리디노미네이션의 선결 요건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본질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추길 소지가 다분하다. 이는 작은 금액 단위를 반영할 수 있는 화폐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괄적인 리디노미네이션 대신 이원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 1000원 미만 단위는 계속 원을 사용하고 1000원 이상은 새로운 단위를 도입하는 것이다. 미국이 화폐를 달러와 센트로 이분화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럴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동전 주화를 계속 쓸 수 있고 1000원 이상 지폐만 교환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규 발행 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측면을 보자.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지하경제에 숨어 있어 과세 대상이 되지 않았던 거액의 현금이 신권으로 교환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권 교환한도를 설정해 초과하는 금액은 일단 은행에 예치한 후 추가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규제를 한다면 조세 기반을 넓힐 수 있다. 즉, 세원의 투명성이 제고돼 조세 수입 증대 및 조세 정의 구현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지 여부는 정책 당국이 지하경제에 참여하는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얼마나 잘 파악해 미세 조정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53년과 1962년 두 차례에 걸쳐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 경험은 화폐 개혁이 경제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경제적 혼란은 리디노미네이션의 비용과 편익의 발생 시점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심화된다. 비용은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데 반해 편익은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충분한 논의 과정을 통해 리디노미네이션 실시 이후에 발생할 경제적 혼란을 줄이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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