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지하철2호선 양산행이 첫 차가 05시 25분에 있음을
어제 저녁때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서 확인해 두었다.
젊은 애들 같았으면 핸드폰으로 몇 번 깔짝깔짝하면 될 터인데
일부러 역까지 가서 확인했던 것은 인터넷을 찾기가 귀찮아서라기 보다는
산보도 할겸 나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대전에 있는 모처에서 평가가 있어서 09시 반까지
도착하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전 모처에 9시 반까지 도착하려면 부산역에서는 6시반쯤 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KTX 시간표를 보니 6시반차가 없었다. 할 수없이 6시50분차표를 샀다.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니 3시20분이었다. 조금 더 누워 있다가 4시 반에 일어났다.
출장준비물을 챙기고 준비를 하다보니 5시10분이었다. 첫 차를 타려면 미리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미리 나가서 기다렸다가 첫차를 타고 서면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부산역에 도착하니 6시 20분이었다
한참 기다렸다가 수서행SRT를 타고 대전으로 향하였다.
대전에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약속장소로 갔다. 9시반부터 11시까지 평가를 마치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같은 평가위원으로 나왔던 한밭대 이교수가 차를 갖고 왔다면서 나를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태워다 드리겠다고 하였다.
괜찮다고 사양하였으나 나가는 길이니까 같이 타고 나가자고 하여 못 이기는 체 하고 차에 올랐다.
오후2시에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그는 함께 짜장면을 먹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 식사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짜장면을 먹어러 유성으로 차를 몰았다. 월드컵경기장부근으로 들어가려다 무슨 행사가 있다고 진행요원으로부터 제지를 당해
후진하다가 마침 좌회전하는 차와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함께 탔던 나 때문에 그런 사고를 낸 것 같아서 속으로 미안했다.
이런 심정으로 함께 식사를 한다해도 별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시간이 바쁘다고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는 보험처릴 하겠다고 연락중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대전역으로 오는 도중에 그는 미안하다면서 일부러 전화까지 하는 것이었다.
대전역에 도착하여 창구에서 부산행 티켙을 달라고 하니 1시3분짜리가 있었다. 출발시간까지는 30분이상이 남아 역구내에 있는 가락국수집으로 가서 점심을 때웠다. 부산에 도착하니 2시48분, 예상시간보다 6분이나 늦었다.
6분이나 늦었는데도 열차에서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10분이내라면 그런대로 맞춰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현재의 시스템정도라면 1~2분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6분이면 큰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전에 아프리카 수단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기차가 하루 안에 제대로 목적지에 들어가면 다행으로 여겼다.
그곳에 타이어 공장을 짓고 가동하고 있던 대우타이어공장 현지직원을 우리나라에 초청하여 산업시찰을 시킨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태워 이동하면서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부산도착예정시간을 알려주었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도무지 믿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들은 시간에 맞춰 운행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진국이 왜 선진국이냐 하면 기술이 앞서서 선진국이 아니라
상식이 통하고 모든 시스템이 예상대로 진행되기 때문인 것이다.
열차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 시계가 없었을 때는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대충 시간을 알았다.
부산역에 도착한 김에 평소 사무실에 나가지 못했던 문학단체 사무실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새로 나온 책도 몇권 얻어 오고자 했고 혹시 새로운 소식이 없나 사무국장에게 물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사무실에 들렀더니 예전에 배를 탔던 노인 네 명이 마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책만 6권 얻어 잠시 분위기만 물어보고 나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서 잠시 쉬었다가 차를 몰고 부산항대교를 건너 영도로 갔다.
보강을 하기 위해서였다. 7시부터 두 시간 수업을 하고 귀가하니 밤 열시가 다 됐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오늘은 제법 바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