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난 영섭 등은 온몸이 뻐근하며 여기저기가 결려 움직임도 활발치 못하고 피로감이 없지 않지만, 계획된 천렵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시내로 나갔다.
날씨는 맑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가고 시냇물 속에는 또 다른 하늘이 드리워있다.
첨벙 물을 투기면 파란 하늘이 일렁이고 하얀 구름이 부셔진다.
물속에는 물살에 씻기고 서로 부대끼어 각양각색의 모양을 이룬 돌들이 머리에 물이끼를 덮고 열병하듯 널려있고, 물속에서 자라 나와 그래도 삶에 근원인 물속이 그리운지 물속에 푸른 머리를 쳐 박고 몸을 흔들고 있는 수초들이 물결에 여울지는 파란 하늘과 그리고 흰 구름과 어울려 그림을 만들고 있는데 그 사이로 송사리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반두질을 하며 시냇물을 따라 내려간다.
반두질을 하여 반두를 들 때 물고기가 들어있으면 “야아 고기다.”하고 소리를 지르고 고기가 없으면 “에이! 빈탕이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물에 옷이 젖는 것쯤은 상관이 없다.
어제의 노동으로 지쳤던 몸은 오늘에 천렵으로 활짝 피어나는 것 같다.
점심때가 좀 넘어 물고기가 먹을 만큼 잡히자 집에서 가져온 솥을 걸고 물고기의 배를 따고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양념과 같이 넣고 끓여 고기의 살이 풀어질 때쯤 라면을 넣어 적당히 라면이 익은 후 그릇에 퍼먹으니 그 맛은 일품이었다.
뙤약볕 아래서 라면 국을 먹는 세 사람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누가 더 먹을세라 솥 바닥이 딱딱 소리가 나도록 긁어 퍼먹고도 부족한 듯 입맛을 다신다.
천렵이 끝나고 부른 배를 안고 물장구를 치며 쉬던 영섭이네는 다시 가제와 다슬기 잡기에 나셨다.
다슬기는 많이 있는 곳에서 그냥 주어서 올리면 되지만 가제는 돌을 들추거나 개구리 다리로 꾀어 잡는다.
돌을 들추며 잡을 때는, 가제가 밑에 있을 것 같은 돌을 흙탕물이 안 나게 가만히 들어내고 그 밑에 있는 놈을 손으로 잡아낸다. 이때 기미를 알고 도망가는 놈이 있는데 이럴 때는 손으로 재빠르게 낚아채어야 한다.
개구리로 잡는 것은 개구리 뒷다리를 나무에 묶어 가제가 있을 법한 돌 틈에 넣으면 가제가 먹이를 먹으려고 나와 개구리 다리를 집게 다리로 찝는데 그때 들어 올려 가제를 잡는다.
현수는 다슬기를 잡고 영섭과 현영은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하며 가제를 잡았다.
이들은 모두 농촌에 시내가 있는 곳에서 자란 청년들이라 다슬기 줍기나 가제 잡이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잠깐 사이에 가제와 다슬기를 푸짐하게 잡아 삶아서 간식으로 먹었다.
다슬기는 가늘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구해 파내어 먹고 가제는 와짝 씹어서 먹는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됐어도 한참 젊은 때이고 물에서 노느라 금방 배가 꺼져 이번에도 누가 더 먹을세라 다투며 먹었다.
가제는 가제대로 다슬기는 다슬기대로 독특한 맛이 입안에 번진다.
저녁때가 되자 현수가 희수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며 문병 가자고 하였다.
계획보다 일찍 천렵을 끝내고 장비를 걷고 시냇물에 몸을 씻고 집으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하는 현영은, 응급처치하며 희수의 종아리에 입을 대고 독을 빨던 생각을 하고는 다소 얼굴이 상기된다.
희수를 만나러 가는 영섭의 마음도 난생처음으로 아가씨를 업어 보았다는 생각과 몸끼리 부딪치던 감촉이 다시 느껴지며 가벼운 설레임이 일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원무과에서 일을 보고 계시는 희수 아버지를 만났다.
“아저씨 우리 왔어요.”
“응! 현수구나. 어서와라.”하시다 영섭 등을 보시고
“너희들도 왔구나. 고맙다.” 하신다.
“희수는 어때요?” 하고 묻는 현수의 물음에
“응! 많이 좋아져서 지금 퇴원 수속을 밟고 있다.”
“그래요? 그럼 희수는 어디 있어요?”
“병실에서 퇴원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올라가 봐라.”
“알았습니다. 그럼 저희 먼저 올라갑니다.”
하고 현수가 앞장서 2층에 있는 병실로 올라간다.
현수가 먼저 들어선 병실에서 희수는 어머니와 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희수야 우리 왔다.”
“오빠 왔네!”
현수에게 인사를 하다 뒤이어 들어서는 영섭이네를 보고
“오빠들도 오셨네, 고마워요.”
하고 영섭이네를 보신 어머니도
“학생들 왔구만, 어제는 모내기도 힘든데 희수 때문에 애 많이 썼어. 희수가 이렇게 빨리 퇴원할 수 있는 것이 모두 학생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웠어.” 하신다.
희수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힌다.
독을 빼느라 자기 종아리에 입을 댔던 현영과 자기를 업고 뛰던 영섭을 보자 무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한쪽엔 설레임이 일었다.
“안녕하세요? 별말씀을요.”
현영이 대답을 했고
현수가 희수에게 "그래 몸 상태는 좀 어때?" 하고 물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퇴원을 하지.”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다.”
“거짓말! 걱정한 사람들이 이제 와, 나는 아침에 올 줄 알았는데.”
“네가 우리 문병을 기다렸나 보구나?”
그 말에 얼굴을 빨개진 희수가
“누가 기다렸데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한다.
“그래! 미안하다. 우리 오늘 천렵하느라고 늦었어.”
“그래요? 고기는 많이 잡았어?”
“많이 잡았지. 라면을 넣고 끓였는데 영섭이랑 현영이는 세 그릇씩이나 먹더라.”
“그 말 들으면 희수는 현영이랑 내가 돼진 줄 알겠다. 우리 모두가 대접으로 세 그릇씩 먹었지만.”
영섭이 그 말에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현영이 현수를 보고 말했다
“희수가 뱀 때문에 고생했고 병원에서 잘 먹지도 못했으니 우리가 맛있는 것 좀 사주면 안 될까?”
“그걸 왜 나 보고 얘기하니 아저씨나 아주머니에게 말씀드려봐라.”
현수에 그 말에 현영이 원무과 일을 끝내고 올라오신 희수 아버지를 보고
“아저씨 우리 희수와 같이 외식하고 들어가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다.
“안 될 거야 없지만 집에 가서 저녁 먹어도 돼.”
“아저씨 그렇게 하게 허락해 주세요.”
현수가 거들고 영섭이도 부탁하여 아저씨의 허락을 받은 네 사람은 희수가 좋아한다고 하여 중국 음식을 먹으러 갔다.
중국집에서 희수가 좋아한다는 탕수육이랑 깐풍기 등 음식을 먹으며 네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희수는 참으로 중국 음식을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다.
남자 형제만 있어 항상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었으면 하던 영섭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희수를 보며 예쁜 여동생이 생겨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깐풍기를 하나 집어 희수의 찬 그릇에 놓아주며
“희수야 우리 앞으로 친 오누이처럼 잘 지내자 ”
했고 이것을 본 현영이
“나하고도” 하며 다시 한 조각 깐풍기를 희수 찬그릇에 놓아주자
“이것들이 내 허락도 없이 남의 동생을 빼서 갈려고 하네.”
하고 현수가 맞장구를 쳐서 모두는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희수는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어제 논에서 아주머니 말씀대로 잘생기고 믿음직한 오빠가 둘이나 생겼으니 즐거웠고 그 중에도 영섭의 침착하고 정감 있고 선해 보이는 눈동자가 희수의 마음을 많이 붙잡았다.
식사 후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에 닦아선 현영은 계산이 끝나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아니 누가 계산을 했어요?”
“내가 먼저 계산했어.”
현수가 신을 신으며 말했다.
“너 아까 화장실에 간다더니 그때 계산했구나. 오늘은 내가 사기로 했잖아?”
“그래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희수 아버님이 어제 너희가 모내느라고 수고했고 희수 때문에도 애를 많이 써서 그렇지 않아도 희수 퇴원시켜 놓고 음식을 만들어 너희를 초대하려고 하셨다며 반강제로 돈을 주셔서 할 수 없이 받아 왔어.”
“그래! 그래도 이것은 약속위반인데.”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알았어!”
하고는 뒤 따라 나오는 희수를 보고는
“희수야! 부모님께 저녁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말씀드려 그리고 다음에는 꼭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네! 기대할 께요.”
“그때 나도 빼놓지 말아.”
하고 영섭이 끼어들었다.
“현영이 오빠가 밥 산다고 연락하면 현수오빠는 몰라도 내가 오빠한테 연락해서 오빠도 꼭 끼어 드릴게요.”
“새 오빠들이 생겼으니 헌 오빠인 나는 괄시가 심하구나.”
현수의 말에 일행은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일행이 모두 밖에 나오자
“이제 우리는 적성 집에 가서 준비하여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니까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 현수야 고마웠고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리고 희수는 집에 가면 부모님께 저녁 맛있게 잘 먹었다고 우리가 인사드린다고 꼭 전해줘. 너도 잘 있고 시간 나는 데로 또 보자.”
영섭의 말에 그때까지 희수로 들떠 있던 현영도
“그래 참 우리는 지금 가야 서울까지 올라갈 수 있겠다. 내일 강의가 없으면 좋겠는데. 아침 첫 시간 강의가 있으니 오늘 올라가야겠지. 현수야! 재미있었다. 희수도 잘 있어.”
“인사치레는 그만해라. 나도 희수 데려다주고 집에 들러 바로 올라가야 될 것 같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오빠들 잘 가세요, 현영 오빠는 약속 잊지 마세요.”
현영이 그래하며 손을 흔들었고 영섭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때 희수는 남자의 미소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신산리를 다녀온 후 현영은 희수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뱀에 물린 희수의 하얀 종아리를 빨아주던 기억, 중국집에서 밥을 먹으며 환하게 웃던 희수의 얼굴, 헤어질 때 손을 흔들던 희수의 모습이 고등학생이 아니라 여인으로서 현영에게 다가온다.
숙영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이 여자가 숙영이 아니고 희수였으면 하는 생각이 종종 들 정도였다.
숙영은 많이 야위었다.
이제는 병색이 완연하다.
현영을 만나러 나와서도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럴수록 숙영은 현영을 더 자주 만나려고 한다.
그런 숙영을 보고 몸 상태를 생각지 않고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현영의 말에 내 병은 내가 잘 알고 현영씨가 나에게는 약이라고 대답하는 숙영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숙영을 만난는 자리에서는 되도록이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희수에 대한 생각은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특히 희수 또래의 여자를 대하면 희수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하다.
아직은 고등학생인 희수를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이성의 소리와는 달리 감정은 희수를 여자로 보게 한다.
보람과의 사건으로 막혀 버렸던 보영을 향했던 마음이 희수라는 새로운 대상을 향하여 불타오르는 것 같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구리 천리향님!
무혈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