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동서남북
[동서남북] 비난받던 자원 외교 성과 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이위재 기자
입력 2022.10.20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dongseonambuk/2022/10/20/Z342CH26JNEDBJB7OBH2FQNXS4/
※ 상기 주소를 클릭하면 조선일보 링크되어 화면을 살짝 올리면 상단 오른쪽에 마이크 표시가 있는데 클릭하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읽어주는 칼럼은 별도 재생기가 있습니다.
적폐 몰렸던 해외 자원 개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재조명
자원 안보가 국가 경쟁력 토대
길게 보고 강단있게 추진해야
우리나라를 가리켜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로 부르는 건 냉정히 따지면 사실이 아니다. 자원 빈국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부터 쓰인 수사(修辭)일 뿐, 1998년 동해 가스전을 발굴해 소량이지만 2004년부터 2021년까지 가스와 초경질유를 뽑아내 썼기 때문이다. 잠시 세계 95번째 산유국이란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로 돌아갔다.
지난 3월 최정우(왼쪽에서 넷째) 포스코그룹 회장이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염수 리튬 1단계 착공식에 참석해 삽으로 흙을 뜨고 있다. 리튬은 이차 전지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로 전기를 생성, 충전하는 역할을 한다./포스코
우리는 세계 제조업 4대 강국 중 하나지만 자원은 거의 수입하고 있다. 광물이건 에너지건 90% 이상 해외에 의존한다. 국제 자원 가격에 따라 산업 토대가 출렁이는 구조다. 자원 안보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자원 외교’는 그런 절박함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사업 속도가 나질 않고 정권 핵심 인사들이 하나둘 손대는 바람에 오해가 쌓이고 구설에 휩싸이자 중단됐다. 왜 거길 했냐, 투자 이익은 언제 거두냐 말도 많았다. 물론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미숙한 측면이 있긴 했지만 오랜 시간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는 자원 개발 여정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 가격은 최근 급등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3배다. 지난주 한덕수 국무총리는 칠레와 리튬을 비롯한 핵심 광물 공동 생산과 연구개발에 합의했다. 칠레는 리튬 보유량 세계 1위, 생산량 2위인 나라다. 남미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는 ‘리튬 트라이앵글’로 통한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 절반 이상이 이 일대에 묻혀 있어서다. 그래서 과거 정부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에 공을 들였다. 리튬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원 외교 전반에 대한 대대적 감사와 수사, 비판 보도가 줄을 이으면서 철수해야 했다. 그나마 포스코가 하지 말라는데도 미련하게 아르헨티나 리튬 사업을 계속 추진, 지난해 수십조 원에 이르는 가치를 확인하면서 반전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보다 매장량이 더 많다고 알려진 볼리비아 리튬 사업도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못내 아쉽다. 해외 자원 개발에 앞장선 광물자원공사가 해체되고 새로 생긴 광해광업공단은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 지난해 매출액 1조3714억원, 당기순이익 2764억원이란 깜짝 실적을 냈다. 10년 넘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해외 광물 프로젝트가 드디어 수익을 거두기 시작한 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럽은 에너지 대란으로 혼미하다. 러시아발(發) 가스 파이프라인이 잠기자 에펠탑 야간 조명은 멈췄고, 프로축구 야간 경기 시간까지 줄이는 처지다. 유럽 각국은 뒤늦게 LNG(액화천연가스) 수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연쇄 작용으로 전량 수입하는 우리 LNG 도입 가격마저 뛰고 있다. 앞으로 안정적인 가스 공급망 확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도 핀란드처럼 목욕 시간을 줄여 달라고 호소해야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한 시민단체가 정부와 국내 기업이 함께 해외에서 진행하는 가스전(田) 사업을 친환경이 아니란 이유로 중단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14억달러를 투자해 20년간 연간 130만t을 생산하겠다는 구상인데 국내 LNG 수입량의 4~5%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일부 정치인도 동조해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다. 친환경인지 아닌지도 더 따져봐야 하는 데다 자원 안보가 일상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시기라 어딘지 한가하게 들린다. 자원 개발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민간·공공 구분도 중요하지 않다. 국민들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편익을 가져다 주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 점만 분명히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