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齒脈: 起于次指與大指上, 出臂上廉, 入?中, 乘?, 穿頰, 入齒中, 夾鼻. 是動則病齒痛, ?腫 , 是齒脈主治. 其所?病: 齒痛, ?腫, 目黃, 口干, ?痛, ?五病. (치맥: 엄지와 검지사이에서 시작되어, 하박의 요골측에서 出하고, 팔꿈치로 들어가 상박을 타고 하악골을 뚫고 齒중으로 들어가서 코를 낀다. 이 맥이 평소와 다르게 움직임이 생길 때면 치통과 광대뼈부위가 부어올라 있다. 이 때 치맥으로 주치한다. 치맥에 문제가 생기면 치통, 광대뼈부위 부어오름, 눈이 노래짐, 입이 마름, 상박통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
“경락학설”의 형성과 변천사를 연구하는 최종의 목표는 경락학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과학적 평가를 낳기 위해서다. “경락학설”의 과학적 내함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동시에 그 속에서 하나의 과학적명제를 뽑아내기만 한다면, 그 기초위에서 이뤄진 “경락문제”에 대한 현대의 실험연구는 비로소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현대의 학자들이 오늘날의 경락연구에 대해 당혹해 하는 점은 두가지다: 하나는 고대 문헌에 기록된 “경맥”의 형태 및 그 체표순행부위가 너무나 분명하다는 점. 둘째는 현대의 최첨단 해부학적 방법으로도 그에 상응하는 구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 다시 말해, 《黃帝?景》에 명확하게 기록된 “경맥”의 기능에 근거해서는 혈맥이외의 또다른 “미지구조”를 찾을 수 없다는 점.
이 난관에 직면해서 현대의 학자들은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아 보지만 실패하게 되는 데, 하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하나, 옛 사람들에게는 초인적인 지혜와 비범한 수단이 있어서 그들이 창조한 “경락학설”이 밝혀낸 인체의 오묘함을 현대인의 지혜와 과학수단으로는 아직 밝힐 수 없다.
둘, “경락학설”이란 것이 옛 사람들이 만들어낸 억축망상의 산물일 뿐 과학적인 근거를 결여 하고 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실험연구의 가치가 없다.
하나의 이론 혹은 학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 학설의 형성과 변천의 역사적 과정을 우선적으로 살펴 들어가야 한다.
고고학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초기의 경락문헌은 대개 《脈書》와 《脈法》같은 류의 전전典籍에 속한다. 이러한 류의 고적古籍은 경맥의 순행과 병후病候 외에도 진맥법診脈法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위진魏晉시대 왕숙화王叔和의 《脈經》까지만 해도 이 두부분의 내용을 주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것은 초기의 경락학설은 단지 두부분의 내용(경맥순행,경맥병후)만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필자의 고증에 의하면, 당시의 경맥병후經脈病候는 직접적으로 맥진병후脈診病候에서 인용되고 있는 데, 이것이 알려주는 바는 경락학설經絡學?의 형성과 脈診實踐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중요한 실마리를 따라 현대인이 “경락학설의 기원”에 대해 갖는 있는 신비주의적인 껍데기를 하나하나 벗겨내고자 한다. 우선 본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경락학설 의 형성과 변천에 대한 윤곽을 알리고자 한다.
[1] “경맥”이란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에 인간은 이미 쉽게 관찰가능한 체표맥상의 변화와 그에 따른 질병의 관계에 대하여 기본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고대의 의가醫家들은 체표에 비교적 굵게 드러난 혈맥의 堅實 陷下 滑 瑟 등의 맥상脈象, 온도, 색택色澤변화가 갖는 임상적 의의에 주의를 기울였고, 또 한편으론 두변경부頭面頸部와 사지완과부四肢腕?部의 맥이 뛰는 부위의 박동변화를 가지고 특정 질병을 진단했다.
끊임없는 실천적 경험의 축적이 이뤄지면서 古人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腕?부위 진맥하는 지점의 맥상변화는 국소병변의 반응일 뿐 아니라, 원거리에 위치하는 병변의 반응이면서 頭面頸 부위의 진맥하는 지점의 맥상변화와도 상응한다. 여기서 腕?부위의 진맥하는 지점-즉 “脈口”는 “本”脈이라 불리워졌고, 頭面頸부위의 서로 대응하는 진맥 지점을 “標”(혹은 “末”)脈이라 불렀다.
[2] 腕?부근의 “脈口” 지점의 맥진병후脈診病候에 대한 치료. 漢이전 상당한 오랜 시간동안 古人들은 이 “脈口”지점에 직접 침을 놓든가 혹은 뜸을 뜨든가 했다. 이러한 행위가 오래 거듭되면서 脈口 부위는 고정적인 치료부위, 즉 ?穴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초창기에 이러한 ?穴은 따로 고유한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었고, 상응하는 “脈口” 、經脈의 명칭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래서 필자는 腕?부근에 위치하면서 상응하는 경맥과 완전히 동일한 명칭의 수혈?穴, 즉 그 경맥의 첫번째 혈穴을 “경맥혈經脈穴”이라 부르고자 한다.
[3] 옛사람들이 인체 상하의 특정한 부위간에 존재한는 내재적 관계의 현상을 발견한 바에야, 그들은 필연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무엇을 통해 연계되는 지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계가 최초에는 바로 맥진脈診을 통해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러한 상하간의 연계가 혈맥血脈을 통해 직접 연결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아래부위의 “本”脈과 윗부분의 “標”脈을 직 접 연결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 경맥의 체표순행선體表循行?이 형성된다. 당시의 경맥의 체표순행부위에 대한 설명은 지극히 간단해서 일반적으로 시작점(起點)과 끝점(止點)만으로 이뤄진 가장 간단한 형식이었고, 그 순행방향 또한 반드시 四肢腕?부위에서 頭面軀幹부위로 향하는, 즉 “本”에서 시작해서 “末”에 다다르는 방식을 취했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경맥순행선은 실선이 아닌 허선虛?이었다. 후대에 오면서 이 두 점간을 잇는 경맥선위에서 점점 더 많은 맥동脈動부위와 진맥診脈부위를 발견하게 되고, 이러한 부분들을 맥이 체표로 나오는(出) 표지標誌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 표지에 해당하는 지점들을 연결하니, 체표의 경맥순행선을 기술하는 문자는 점점 구체적이고 명확해지게 된다.
[4] 위에 서술한 방법으로 인체 상하간을 연계짓는 “경맥”개념이 형성되고 나서, 腕?부위 맥구脈口(本脈)의 맥진병후脈診病候는 자연스럽게 상응하는 경맥의 병후(經脈病候)가 되니, 소위 말하는 “是動”병이 이를 말함이다. 그 기초위에서, 어떤 醫家들이 당시 흔히 보이는 체표병증體表病症과 일련의 내장병증?臟病症을 경맥에 따라 분류하는 데, 이것이 소위말하는 “所生病”이 된다. 이 所生病은 또한 원래 먼저 있던 “是動”병 아래에 부가되는 데, 둘이 모두 경맥병후가 된다.
[5] 서로다른 시대의 醫家 혹은 동시대의 다른 유파의 醫家, 이들의 실천적인 치료경험속에서 관찰했거나 체득한 인체 상하관계를 연계짓는 현상이 항상 완전히 일치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적인 특징이 초창기의 경맥학설 중에 반영돼 있다. 후대에 오면서 이러한 다른 시기의 다른 醫家들의 치료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경맥순행선은 가지를 치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론 脈口 지점에서의 진료병후(즉 “經脈穴”의 주치병증)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면서 경맥의 끝점(止點) 또한 부단히 변화하게 되니, 진료병증부위에서 가장 멀리 위치하는 지점을 이 경맥의 종점으로 삼게 된다. 하지만 경맥의 시작점(腕?脈口부위)은 오랜시간에 걸쳐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다.
후대에 음양학설陰陽學?의 영향을 받아, 상지의 양경陽經과 하지의 음경陰經의 시작점이 사지말단으로 확대되고, 최후에는 경맥의 순행유주循行流注를 구성하기 위해서 모든 경맥의 시작점이 모두 사지말단으로 옮겨가게 된다.
[6] 초창기에 사지四肢의 외측면을 따라 순행하는 경맥(나중에 “양경陽經”이라 부름)은 頭面、頸項부위까지 이르는 추세를 따르게 되고, 사지의 내측면을 따라 순행하는 경맥(나중에 “陰經”이라 부름)은 사지四肢의 近心端부위까지 이르게 된다. 후대에 오면서 음경陰經은 가슴(胸)、腹內까지 순행하는 추세를 따르게 되고 이는 내장과의 연계 가능성을 갖게 만드는 데, 그리하여 경맥학설은 중대한 변혁기, 즉 원래 먼저 있었던 상하의 연계성이 상하내외上下?外의 연계성으로 변천하게 되는 시기로 접어 든다. 경맥과 내장과의 연계성을 확립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과 복잡한 변천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육부六腑와의 직접적인 연계성은 없고 단지 오장五臟과의 연계성만이 있을 뿐이다.
[7] “경맥” 개념의 형성과 진맥診脈 실천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계속해서 혈맥의 형태와 기능을 “경맥”의 형태와 기능으로 동일시 했다. 혈맥 血脈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관찰에 근거하여 그것을 크게 두 종류로 분류했다:
하나, 체표에 드러나진 않으나 어떤 특정한 부위에선 박동하는 맥.
둘, 체표에 드러나 관찰가능하나 박동하지 않는 맥.
이 두가지 종류의 맥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데, 박동하는 맥을 “경맥”이라 칭하고, 체표로 종횡교착하면서 드러나는 그러나 박동이 없는 맥을 “낙맥絡脈”이라 칭한다. 하지만 “經”과 “絡”에 대한 《黃帝?經》의 구분은 상대적이고 다층면적이어서 다른 층면에선 다른 규정이 존재한다. 그 중 십이경맥十二經脈과 대응하는 십이낙맥十二絡脈의 순행과 병후의 형성과정은 경맥의 그것과 완전하게 일치하고, 뿐만아니라 낙맥학설의 변천과정은 비교적 간단해서 초창기 당시의 면목을 훨씬 더 많은 보류하고 있어, 경맥학설의 변천과정을 연구함에 하나의 “화석”역할을 가능케 한다. 《黃帝?經》속에서 아직도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 낙맥絡脈의 시작점은 정확히 이 낙맥의 진맥診脈 지점과 일치한다.
둘, 이 낙맥의 진맥 지점에서 진찰한 병후가 곧 상응 하는 낙맥의 병후이다.
셋, 이 진맥 지점이 침구치료 부위(낙맥의 “絡穴”)로 발전한다.
넷, 낙맥의 체표순행 노선 역시 해부학적인 산물은 아니다.
[8] 《영추-경맥》편은 《黃帝?經》에서 가장 늦게 쓰인 작품 중 하나이며, 《영추》에서도 가장 많은 문자수를 차지하는 한 편이다. 《영추-경맥》편은 당시 유행하던 각종의 다른 경락학설을 총괄하고 있다. 이 편의 편자編者는 통일적이고 이상적인 모델을 가지고 다른시기、다른학파의 경락학설의 내용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다 보니, 여러 곳에 너무 꾸며댄 흔적이 보이고,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한 편으론, 이러한 통일적이지 못한 내용은 우리에게 경락학설의 변천과정에 나타나는 중요한 정보를 드러내고 있다.
"경맥” 개념의 형성과 경락학설의 건립에 대한 문제는 한의학계 내에서도 논쟁이 분분한 문제이고,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1] 첫번째는 인간의 인식이 처음엔 언제나 간 단한 관점에서 부터 복잡한 관점으로 그리고 부단히 완전한 관점으로 진행되면서 추측하게 된다는 점에 근거해서 나온 설이다.
즉, 고대인들은 먼저 혈자리穴位를 발견했고, 그 혈자리가 일정한 수량에 다다르고 나서 인체상하의 치료작용이 같거나 비슷한 혈자리들을 서로 연결하여 초기의 경맥순행선이 형성됐다.
하지만 하나의 경맥선 위에 놓인 수혈?穴의 주치작용이 사실상 다를 뿐 아니라, 오히려 같은 구역내의, 특히 몸통과 얼굴머리부위의 서로 다른 경맥선 위에 놓인 수혈의 주치작용은 고도의 통일성을 보이고 있어 ’먼저 혈이 있고 경맥선이 형성됐다’는 설은 성립되기 어렵다.
[2] 70년대 馬王堆漢墓에서 출토된 의서중에는 두 종의 경맥에 관한 전문서가 존재하는 데, 거기에 실린 열한 가닥의 경맥의(十一條經脈) 순행과 병후의 내용에 수혈을 가르키는 말이 없자 ’경맥을 먼저 발견하고 수혈을 발견했다’는 설이 주장됐다. 이 관점은 고대 경락학설을 세우는 주요한 근거가 ’자침감전針刺感傳’이라 생각하고 ’마황퇴백서의 십일맥은 바로 감전선의 기록이다’라고 단정하는 데로 진일보 한다. 나중에 마왕퇴 백서帛서書의 경맥중엔 灸法에 대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자침법針刺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는 사실을 알고는 ’灸法感傳’을 주장하는 데로 선회한다.
[3] 모두 실패로 끝나자 이번엔 또다시 “불가지론”의 옛길로 돌아간다.
즉, 경맥순행은 기공가氣功家가 ”반관내시返觀?視”해서 밝혀내 산물이거나 혹은 고대의 양생가養生家가 “以意行氣”(기공학에 나오는 말로 의념으로기운을 움직인다는 의미-필자)를 통해 기록한 것이다. 도인행기導引行氣에 관해선, 초기의 문헌으로 張?山에서 출토된 《引書》가 있고, 후세의 《제병원후론》에도 다량 존재하지만, 이 두편에서 도인행기가 경맥순행의 기원과 관계된다는 문헌적 기록을 한가닥이라도 찾아낸 이는 아직까지 없다.
기공의 영향에 관해선 명말의 이시진李時珍의 저작 《기경팔맥고奇經八脈考》에서 다음과 같은 한가닥 문헌적 근거를 찾아냈다: “?景隊道惟返觀者能照察之” (번역생략)
여기서 “返觀”은 “內視” 혹은 “內觀”과 같은 말로 양생수련법의 일종으로 “입정入靜”을 훈련할 때, 의념意念으로 상상想象하여 체내의 장부모양臟腑景象을 관찰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명말의 한가닥 문헌기록이 2천년전에 성립한 경락학설의 기원을 설명하는 문헌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지를 떠나서 이시진의 본래적 의미와 오늘날의 해석은 거리가 멀어, 이 설은 또한 성립되기 어렵다.
만약 이시진이 정말로 경맥순행노선을 양생가의 명상에 기초해서 확정지었다면, 왜 그는 ’기경팔맥고’를 고증할 당시에 《내경》과《난경》에 명확하게 기재되지 않은 “음유陰維”맥과 “陽維”맥의 순행에 대해선, 그 같은 방법으로 직접 알아내지 않고 수혈문헌속에 나오는 교회혈交會穴의 부위를 가지고 설명했을 까.
-P.S. -
하나, 《中國針灸學朮史大綱》은 黃龍祥의 저작(2001년)으로 2002년에 처음 접하고 침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중국에선 5년이 흐른 지금 점점 침구학설에 대한 현대연구에서 그의 방법론을 상당히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몇 편의 관련된 논문 외에 아직 광범위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한의대생들의 중국어 실력이면 중국에서 출판되는 한의학서적을 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철학사’나 ’중국문화사’가 번역되 듯이 ’침구학술사’도 번역되어 우리말로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하루빨리 제대로된 번역본을 기대해 봅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침구학 전통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으나, 고대의 침구학설은 그 맥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의 형성과정과 그 변천과정에 대한 공부는 우리나라의 침구학 전통을 정립하고 세계화하는 데도 필요한 과정이라 봅니다
둘, ’內觀’은 우리 말의 ’명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필자는 위빠사나 명상 을 통해서 옛날 기공가나 양생가들이 말하는 “返觀?視”하는 수련을 한 적이 있는 데요, 일종의 '이미 알고 있는 몸 내부 조직에 대해서 상상하면서 의식을 집중하여 관찰하는’ 훈련이죠. 모르는 있는 것을 상상으로 그려낼 수는 없습니다. 한형조교수는 그의 금강경 강의 에서 ’위빠사나는 8정도 정념正念이 발전한 관법觀法’이라 합니다.
********
요즘은 세계적으로 자연의학[한의학, 대체의학]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미래의 블루오션, '자연의학' '한의학'을 공부하여 성공하고 싶은 분들이 엄청 늘어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의대 유학을 꿈꾸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외국대학에서 자연의학, 한의학을 공부하고자 할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비정규대학교인지, 정규대학교인지 먼저 확인하십시오.
미국 한의대는 대부분 비정규 대학교입니다.
정규대학교 한의대(경희대, 중국 남양중의대, 센추럴대학교 등 )은 모두, 미국 의과대학 면허자격사이트(www.ecfmg.org)에 등재되어 보입니다. 이 리스트에 등재되지 않는 미국 한의대는 비정규학교라 보면 정확합니다.
정규대학교에서 한의학을 공부하고 미주 한의사로 활동할 경우 ,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유럽 각 국에서 어렵지 않게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정보와 입학상담 신청은 www.cuckorea.com (010-6834-6253)으로 방문하면 해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