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라고 부르기엔, 너에 대해 이야기 하기엔, 네 말대로 나는 너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음으로 적는 글들은 결국 너에 대한 내 생각의 기록이다.
오인의 가능성을 묻어두고, 그래도 감히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은 어느 쪽이든 결과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오해에 기반하더라도 그걸 정정할 네가 세상에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 기대 이제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건네보는 무심한 팬이라서 그렇다.
2. 너는 나에게 신기한 사람이었다.
너를 처음 알았던 게 7년 전이다. 대학 초입, 많아진 시간을 주체 못하던 잉여로운 때였다. 시험기간이랍시고 책은 펴놓고 하릴없이 넷서핑만 하고 있다가 네가 라디오에서 라이브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신기했다. 거기서 노래하는 게 나보다 어린 사람이란게. 그렇게 잘 부르는 게. 자신있는 모습이. 너의 재능이.
그보다 더욱 신기한 건 너의 성격이었다.
감성적인 부분이 덜 발달한 나는 네가 하는 말들이 꼭 외국어 같았다.
네가 팬들에게 하는 사랑한다는 말
항상 고맙다는 말
가족들에 대한 구구절절한 애정까지.
정말 신기했다. 나에겐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중고등학교 모두 이름 석자 외우는 연예인이 드물게 살았는데 느닷없이 깊은 인상을 남긴 너는 머지않아 내 일상의 큰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일상의 큰 부분이 은밀한 보물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3.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팬들의 사랑에 생활을 거는 너와는 달리 나에겐 언제나 다른 의무가 있었다.
비대칭의 관계 속에서 나는 내가 필요한 방식대로 너를 사랑했다.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며 원래도 매말랐던 나의 정서가 가문 강바닥처럼 갈라질 때
그게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 때
높은 곳을 지나가며 여기서 뛰어내리면 편해질까, 따위의 생각이나 하는 절망 속에서
네가 주는 말들이 유일한 수분이었다.
네가 세상을 표현하는 말들이 나를 지탱하게 했다.
네가 부르는 노래에 나왔던 구절, 라디오에서 했던 묘사들
날씨는 네가 서술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보여졌고 풍경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너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고결했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던 벙어리 장갑이 귀엽게 보이고
우산 챙기는 게 귀찮아서 싫어했던 비오는 날들이 운치있게 느껴졌다.
그런 게 셀 수가 없다.
너의 감성으로 나를 채웠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어.
4. 솔직해질게. 너는 안티가 많았다.
트위터에 여성운동한다는 그들만 요즘 회자되는 모양이지만
원래 정치적으로 극보수 성향인 사람들도 너에게 적대적이었고
연애설 이후에는 원초적인 합성 사진과 조롱하는 글들이 많았고
불후의 명곡 짤은 오래도록 조리돌림 당했다.
너는 대중에게 자연스러운 호감을 주는 타입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런지 비호감이라고도 종종 회자되던 것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티비에서 강하게 말하는 모습
크게 말하는 모습
그런 것들만 봐서 그런지 너에 대한 막말을 쏟아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네가 라디오를 시작하고 아이돌 DJ라는 이유로 어떤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으로 욕을 먹을 때,
나도 거기에 참전했었다. 너를 옹호하고 팬들도 엄연한 청취자임을 호소했다.
그런데 그 날 방송에서도 그런 뉘앙스의 이야기가 나왔지.
너는 그렇게 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네가 생각보다 많이, 너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두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충격적이었고 좀 서늘했다. 네 별명이 왜 쫑티즌인지도 그 때 실감했다.
연예인도 정말 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너를 다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와 대단하다, 나같으면 못 버틸텐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었는데
너도 사람이었는데
그 땐 그걸 몰랐다
나이는 어려도 먼저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며,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너를 감정적으로 이용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기부여를 위해 이상에 너를 투영했을 뿐이다.
너는 사람이었는데.
치열함 뒤에는 고통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해.
5. 그게 조금 깨진 건 너의 2집 팬싸인회였던 것 같다. 생전 처음으로 가는 팬 싸인회에 가슴 설레었던 것도 잠깐.
가까이서 본 네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너는 생각하던 것보다 너무 마르고, 너무 피곤해 보였다.
그래, 힘들어 보였다. 지쳐보였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았다.
눈을 의심했다. 어제까지도 매일매일 올라오던 너의 직찍들 그건 모두 예뻤으니까 웃는 모습들이었으니까.
보이는 것과 내가 가진 인식의 괴리에 난 오래 혼란스러워 했다.
정신이 들자 화가 났다. 뭐에 화가 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답답했던 것 같다.
솔직히 살 좀 찌우라고 잔소리하고 싶었고 좀 쉬라고 강요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지,
오지랖이었으니까, 네가 스스로 판단한 길에 나는 따라가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다가 네가 무언갈 해먹는다는 걸 트위터에 올릴 때마다 네가 어디가서 뭘 먹는다고 올릴 때마다 기뻐하는 팬들을 보면서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종현아
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너에겐 닿지 않았을지도 아니면 그조차 짐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6. 네가 세상에 없다는 말은 큰 충격이었다.
직후에 느낀 감정은 분노와 서운함이었지만
네가 탓하지 말아달라 했으니 그러지 않으려 한다.
7. 네가 남겼던 수많은 약속이 생각이 난다.
인기의 파도가 지나가도 함께 하자는 거, 그 때는 소극장에서 만나자는 약속
환갑잔치에 디너쇼 하면 올 거냐고 시시덕거렸던 농담.
5월 25일이던 샤이니의 데뷔일을 딴 '오늘처럼 이렇게 오래보자'는 문구.
목소리가 안 나올 때 까지 노래해주겠다던 약속.
그래서 아직 미련이 있나보다.
어제 오늘 간헐적으로 심장이 아프고 사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한 감각이 있다.
한 번도 개인적인 대화도 나눠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아픈 건 네가 나의 일부라서 그런가보다.
7년동안 지켜본 네가 이제는 나의 일부라서
딱딱하게 굳어만 가던 나를 지켜준 내 감정이었어서 내 서정이었어서 내 감성이었어서
이렇게 아픈가보다
8. 사람이란게 참 그렇지.
잃고 나서야 이런 글을 쓴다.
사람들도 야속하지.
네가 없다니까 너의 노래를 듣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하지만 일시적일 것이다.
세상은 약한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약한 것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건 거기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경우 뿐이다.
네가 말한 대로 살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너보다 강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슬픔은 오래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밝았던 모습, 풍부한 너의 감성. 따뜻했던 너의 시선.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9. 산 사람들의 시간은 멈추지않고 흘러간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 나는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네가 없는 하루, 이틀을 버텼는데 내일이 그보다 힘들까 싶다.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보내는 일은 점차 쉬워질 것이다.
너의 죽음을 잊어가는 것을 이기적이라고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원래 이기적이다.
내가 내 삶에 치여 너에게 소홀해졌듯
아무리 사랑한다고 외쳐도 결국은 자기가 우선이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다른 사람은 너에게 향하는 사랑마저 자신의 것으로 하고 살았는데
너는 왜 온전히 너의 전부를 세상에게만 맡겼을까.
답답하고 안타깝다.
10. 다른 맴버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길을 응원하려 한다.
지금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그들이니
다만 앞으로 너를 보던 것처럼 누군가를 보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소비하는 그 반짝거림에 고통이 스며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너는 원망했을지도 모르는 너의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너의 가족, 들숨과 날숨
너의 동료들, 그리고 너에게 사랑한다고 무수히 많이 말해주었을 다른 팬들,
네 의사에게마저도.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네가 여기까지나마 버틴게 아닌가 싶어서.
네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까지, 더 버텨주었었으면, 하는 것은 내 미련이겠지.
11. 그 욕심을 버리고 너를 보내려 한다.
그동안 네가 지켜준 나의 감정
너의 표현으로 보았던 세상
너의 말, 노래
그걸 이제는 나의 감성으로 키워가려한다.
하지만 종현아
아주 나중에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너의 소품집 앨범 이름처럼.
네가 보여주지 않았던 너와 우리가 보려주지 않았던 우리가 만나
정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허락한다면.
허무한 소원이지.
그래도 그 희망에 마지막을 비워두려 한다.
따뜻한 말 직접적으로 해주지 못했던 게 계속 마음에 남는다.
네가 해 준 고맙다는 말 만큼 돌려주지 못한 게 속상하고 속상하다.
그래도 잘 가. 고마운 사람. 정말 고마웠어. 네 덕분에 함께한 시간들이 따뜻했어. 안녕.
첫댓글 ㅠ...수고했어...글쓴분이 얼마나 종현님을 좋아했었는지 느껴지네요...
처음 좋아한 아이돌이었고 내성도 없었고.. 푹 빠져 있었죠ㅎ..
누군가를 위로해줄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본인은 위로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네요.....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고 본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 둔감했으면 좋지 않았나 싶네요 샤이니는 처음부터 호감이었어서 그런지 이번에 참 충격이 큰기도 하고 거기서는 행복했으면 하네요
감정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죠. 거기에 비해 잡고있던 끈이 너무 약했던 거 같고.. 말씀대로 잘 지내길 바랍니다.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후에 생각하면 아쉬운건 당연하지만 더 아쉽게 느껴지네요.
글에서 사랑이 느껴졌어요. 감사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기
너무 힘듭니다ㅠㅠ 그만 생각하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ㅠ 미안하고ㅠ 생각할수록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던 사람이라서 더욱 그래요ㅠ 조금만 덜 좋은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ㅠ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ㅠ 부디ㆍ 행복했으면 영원히 ...
괜찮아질거에요.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