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삶의 현장
초록이 초록에게,
초록에서 초록으로 번져 가는 싱그러운 계절이다.
짙푸른 녹색 사이 듬성듬성 아카시아,
등나무 꽃 덩이가 줄 사탕처럼 아름다운 때다.
초록 숲에 앉아 나뭇잎의 오케스트라 들으며
‘삶은 이런 것이다’ 누리고 싶다.
어머니와 함께 숲속에 자리한 식당을 찾았다.
가랑비가 내려 걷지 못함이 아쉬웠다.
손님 많아도 예의를 갖춰 모셨다.
어머니 즐겨 드시는 월남 쌈을 시켰다.
부드러워 식감이 좋은 밑반찬 도토리묵을 하나 더 달랬다.
여러 가지 야채에 소고기를 건져 쌈으로 먹었다.
이마에 땀나게 드셔도 소식한 분이라 국수와 죽을 남겼다.
바깥 의자에 물기를 닦고 앉았다.
잘 가꿔 놓은 꽃과 식당에서 나온 손님들 얼굴이 같았다.
두 아들, 손자, 두 손녀, 며느리가
아버지와 헤어진 장면을 봤다.
‘점심 잘 먹었다. 고맙다.’
지갑을 꺼내 손녀에게 5만 원 주며 둘이 나눠 쓰라 하고
손자에게 5만 원을 들고 머뭇거릴 때
손자가 개구리 파리 낚아채듯 움켜잡아 웃었다.
어머니가‘저 할아버지 10만 원짜리 밥 먹었네.
비싸게 먹은 점심이다.’
자가용 세 대 빠져나간 자리가 바로 찼다.
틀 좋은 분이 왜 부부로 오지 못했는지 괜히 궁금해졌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 나누고
모셔다드리며 작은 용돈을 건넸다.
일본 딸 소식을 항상 기다려 문자를 보냈다.
‘동생! 건강하게 잘 있지.
늘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네.
히로, 요시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어제 예배 마치고
어머니랑 무등산 입구 식당에서 둘이 밥 먹고 왔어..
지난주에도 화순 가서 점심 먹고..
좋아하시고 흡족해하시네.
오늘 어버이날이라 전화 기다리고 계실지 모르겠어.
통화 한번 해 보라고..
익산 성경이 결혼식 연락은 받았어.
가족들 모일 것 같은데..
참석 여부 알고 싶네.
암튼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다 만나자고..’
‘네, 오빠! 덕분에 요시, 히로와 유즈기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항상 엄마의 모든 일 돌보시느라 고생 많으세요.
일하는데서 며칠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엄마하고 통화하고 싶어도 연결이 안 돼서 못해요.
핸드폰 소리가 안 난 돼요.
히로 식구랑 한번 찾아뵐게요. 항상 건강하세요..’
어버이날,
내 삶을 푸르게 만든 분들 기억하고
기도하며 안부 전화를 드렸다.
용돈이나 선물을 겸하면 좋으련만
그럴 형편이 못 되어 송구스러웠다.
목소리 하나로 반갑게 맞이하여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 어렵던 시절,
그분들 손길 생각에 울컥하는 뜨거움이 차올랐다.
‘이 목사, 지금까지 지켜볼 때 심성이 착해
성실하게 목회 한 자체가 기적이고,
그 삶의 열매가 자녀들에게 복으로 나타날 때가 올 것이다.’
이런 응원을 보태주신 덕분에 이 자리 지킴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다음 날,
장로님 건강 진료를 위해 아침 일찍 병원으로 모셨다.
검사하고 기다리는데 환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입원할 요량으로 나섰지만 결과는
1주일 후 나오기에 지켜볼 일이다.
수정 식당 예약 후 이른 저녁을 먹었다.
30년간 식자재를 댄 장로님을 환대하며 맞아들였다.
생고기 특 비빔밥에 생고기 한 사라를 시켰다.
양이 많다 해도 소용없었다.
주방장이 서비스로 누룽지까지 끓여 내셨다.
결국 다 못 먹고 포장시켰다.
아내 저녁밥까지 챙겨 그 큰 손은 막을 재간이 없었다.
시장 택배 일 중단하고 건강 회복 중이라
사실 돈벌이가 없다.
난 살림이 걱정되기에 하는 소리지만 먹히질 않았다.
음식값은 아들 카드로 치르기에
아들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현호야! 잘 있지.
오늘 아빠 병원 검진받고 함께 저녁 대접 잘 받았다.
덕분에 그 비싼 생고기로 포식하고 들어왔다.
고맙다야..’
‘아닙니다. 목사님!
서울 이사 준비 때문에 예배 참석 못해 죄송합니다.
어버이날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목사님!’
‘고맙다. 살아보니 결국 믿음 안에 누린 삶만 남더라.
어딜 가든 예배 참석하면 좋겠다.
서울! 만만치 않다.
좋은 경험 쌓고 빨리 내려오길 바랄게..’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대신 접대한 손이 고마웠다.
이튿날 오후,
또 복부 시티 촬영 위해 장로님을 병원으로 모셨다.
기다림은 여전하나 순조롭게 마쳤다.
근처 식당이 블랙 타임이라
아침 금식한 장로님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
이번 주일 예배 후 야외 모임 나갈
화순 만연 저수지 답사를 갔다.
호수 공원으로 지정되어 취사가 불가능했다.
과거 장로님 거래처인 ‘정량 가든’
이용해 보려 찾아갔는데 다른 집이었다.
장성 ‘학교 가자’가 생각나
옛 시골 학교를 어렵게 찾아갔다.
코로나로 직원 월급을 줄 수 없어 폭망하고
물류센터 건축 철골을 올리는 중이었다.
동네 주민이 코로나 끝나고 찾아온 사람 많은데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할 수 없이 장성 댐 아래로 갔다.
넓은 잔디밭이 주차장으로 변하고
드론 날리던 운동장도 수로 공사로 파헤쳤다.
장성댐 수변 공원 찾는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정비되었고 화장실 건물도 하나 더 보였다.
취사는 가능하고 수돗물도 잘 나왔다.
큰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펴고
삼겹살 구워 먹는 데는 어려울 것 없었다.
쫄쫄이 굶은 장로님 위해 늦은 시간
호산 식당에 들러 메기탕을 사 드렸다.
‘목사님, 대부분 식당은 수입산 쓰는데
여기는 진짜네요. 맛있네요.
다시 한번 오고 싶어요.
밑반찬도 즉시 만들어 좋네요.’
친구 부친 소천 전화받고 문상 위해 일어섰다.
2남 6녀의 아버지,
장손이지만 큰 딸의 전도에 시제를 끊어내고
믿음의 대장부로 사셨다.
푸르른 명문 가문 세워 버팀목 되신 어르신을
어버이날 잃은 상실감은 누구보다 컸으리라 여겼다.
2023. 5. 13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