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제2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은나팔을 두 개 만들게 하셨다.
‘나팔’이라는 원어(카초체라)는 ‘클라리언’(clarion, 나팔)을 가리킨다. 클라리언은 길고 곧고 가느다랗고 끝이 나팔꽃 모양인 금속관 나팔을 가리킨다. 그것은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쇼파르)과 구별된다.
왜 금나팔이 아니고 은나팔을 만들라고 하셨을까?
금은 하나님의 영광과 왕권을 상징하는 색깔이고, 은은 거룩과 순결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시편 12:6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은나팔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명령과 그것을 전하는 자의 순결한 의무를 보이는 것 같다.
은나팔의 용도는 첫째로 회중을 소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나팔을 불면 온 회중을 소집하는 것이요, 한 나팔을 불면 족장들만 소집하는 것이다. 둘째로, 진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로, 전쟁 때에 나아갈 때 불렀고, 넷째로, 절기 때에 불렀다. 전쟁 때나 절기 때의 셋째와 넷째의 경우는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도우시며 구원하시고 은혜 주시기를 구하는 뜻이 있었다.
은나팔을 부는 일은 제사장들에게 맡겨진 직무이었다(8절). 물론 나팔을 불게 지시하는 자는 모세이었을 것이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였지만, 그것을 보고 지도자 모세는 제사장들에게 나팔을 불도록 지시했고 회중들 혹은 족장들은 그 지시대로 모이기도 하고 진행하기도 했을 것이다.
[11-28절] 제2년 2월 20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진행하기를 시작하였는데 수두(首頭)[선두]로 유다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영솔하였고 잇사갈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영솔하였고 스불론 자손 지파의 군대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영솔하였더라. 이에 성막을 걷으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발행[출발]하였으며, 다음으로 르우벤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발행하였으니 르우벤의 군대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영솔하였고 시므온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영솔하였고 갓 자손 지파의 군대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영솔하였더라.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진행하였고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으며, 다음으로 에브라임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에브라임 군대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영솔하였고 므낫세 자손 지파의 군대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영솔하였고 베냐민 자손 지파의 군대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영솔하였더라. 다음으로 단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이 군대는 모든 진의 후진이었더라. 단 군대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영솔하였고 아셀 자손 지파의 군대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영솔하였고 납달리 자손 지파의 군대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영솔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
제2년 2월 20일에 구름이 떠올랐다. 성막을 짓고 유월절을 지키고 인구 조사를 마친 후에 처음 떠오른 때이었다. 그것은 2월 14일 추가적 유월절을 지킨 지 몇 일 후의 일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규례대로 질서 있게 행진하였다.
[29-32절]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모세는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말했다. 후에 그 후손이 유다 땅에 거한 것을 보면(삿 1:16), 호밥은 모세의 청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모세가 그에게 함께 가기를 요청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항상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인다.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은 시내 광야와 바란 광야의 지리나 광야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성적 판단과 경험적 지식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큰 틀에서 인도하시지만, 구체적인 일들에 있어서 그는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과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용하신다.
그것은 사도행전 27:31, 34에서도 증거된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이송되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났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276명의 사람들은 14일 동안 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사공들이 작은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할 때 바울은 그를 지키던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특별한 경우에 주신 일이었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아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플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또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지만, 병원에도 가고 약도 감사히 사용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처럼 이성과 경험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의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33-36절]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3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3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산, 곧 호렙 산(시내 산)에서 떠나 3일 길을 행할 때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3일 길에 앞서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고 임재하셨다. 그는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은나팔은 인도자의 의무를 보인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지만, 모세는 항상 그것을 주시하고 제사장들을 통해 나팔을 불게 함으로써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는 의무가 있었다. 인도자가 가진 의무는 두 가지이었다. 하나는 회중이나 족장들을 소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진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시기와 경우에 맞게 은나팔을 다르게 불도록 해야 하였다.
나팔소리는 신약교회의 교훈과 행정의 일에 적용될 것이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창고에서 충성되이 양식을 내어오는 자로 비유하셨다.
마태복음 13:52,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것은 신약교회의 목사들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교훈해야 할 것을 보인다. 또 마태복음 24:45에서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도 신약교회의 설교자들의 직무를 보인다.
성경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강단을 통해 그의 뜻을 밝히 선포하고 증거하기를 원하신다.
특히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 때에는 더욱 그렇다.
고린도전서 14:8은,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말한다. 죄와 세상의 악의 풍조와 마귀의 시험과의 전쟁에서 성경적 설교는 분명한 나팔소리이다. 그러나 성경적이지 않은 설교는 분명치 못한 나팔소리다. 또 교회의 바른 행정은 바른 교훈의 적용과 실천이다.
둘째로, 은나팔은 회중의 의무도 보인다.
회중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따라야 했다. 그들은 모이라는 나팔소리를 들으면 모여야 했다. 성경은 주의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라고 교훈한다(히 10:25).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 2:46). 우리는 교회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또 회중은 행진하라는 나팔소리를 들으면 행진해야 했다. 교인들의 의무는 성경적 설교와 지도에 순종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3:17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적 설교를 열심히 듣고 배우며 마음에 새기고 그 교훈과 지도에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되 기적주의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이성적, 경험적 분별력과 판단력을 감사히 사용할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지만, 미디안 사람 호밥에게 함께 가기를 요청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섭리를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경적 인도하심을 살피면서 우리의 이성적, 경험적 분별력과 판단력을 감사히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