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역사고증을 과학적으로 착실히 해도...
그 해석에서 너무 자의적이라면 역시 역사왜곡의 범주에 속한다 걱정됩니다.
존경하옵는 문무선생님 께서 조선의 잃어버린 중국인 경기(기내천리)의 위치를 천산 주변으로 산정해 나가시는 성과에 한없는 존경을 표하고 있는 저로서 몹시 당황스런 문무선생님의 해설에 부딪치게 되는게...
중국과 그 주변 경기(기내천리)는 역사내내 조선의 관경내의 조선의 중심지를 이른단 해석인데...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최초의 역사서란 산해경에도...
조선(朝鮮)은 중국(산해경 당대의 저자가 있던 중심지)기준 동북에 있다 명기됍니다.
물론 그 지류인 숙신(천독)이 서남부 인도에 있단 의문글도 있으나...그걸 고구려가 병합한 동이족의 조선관할지로 보긴 곤란하겠지요...
수 많은...아니 고려&조선 역사 전체에...
중국은 조선의 최 서북단 영토인 요동 서쪽에 존재한 적이 많게 기록됐고...
분명 연행사들의 기록으론 명나라와 청나라(타타르)는 조선관 그 정권과 문화가 차별되던 서역나라로 명기됐습니다.
이런 역사기록들을 다 무시하고...
중국과 그 주변 경기(기내천리)는 무조건 역사이래 구한말까지도 내내 조선의 중심지였다 해석하는건...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대륙조선의 위대한 성과를...민족주의적 환타지 역사메니아들의 별스런 주장정도로 폄하되게 만들 구실을 준다 걱정됍니다.
물론, 문무님께서 찾아내신 중국(천산주변?)은...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의 옛 땅이자...
고려의 서북영토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 조상들의 본관지인 달단동 남쪽 근처인 정황은 저도 인정합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그곳이 주구장창 기자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영토이기만 하다가...그대로 고려 ,이성계조선에 이어 구한말까지 조선의 관경으로 유지됐을 것이란 해석들엔 무리가 아주 많아 보입니다.
한(漢)이 곧, 고구려요...그래 내내 조선관경이란 해석도 무리가 많습니다.
한(漢) 무제 당대의 기록에..분명 부여는 지들 북쪽에...고구려는 지들 동북쪽에 명기됍니다.
물론 한(漢)이 무너지곤...한(漢) 지역은 위나라(우태백제=한성백제?)를 거처 고구려에 병합됀다 저도 봅니다.
그러나 그게 같은 나라라 보긴 어려운 것이고...
고구려가 당나라(탕구트?)에 무너지곤 이곳과 그 동쪽인 요동까지도 잠시 빼앗겼다가
발해의 부흥으로 다시 이곳이 발해영토로...
발해가 서요제국인 카라키타이(거란)에 무너지곤 다시 거란의 영토가 돼었다가...
고려(탕구트?)의 상대적 북동쪽인 내몽골등지에서 서요제국을 친 아골타의 금나라가 이곳을 차지하곤
금나라(신라도 마찬가지) 선조들의 발상지인알타이주변은 금나라가 관리...
중국(천산 남부유역?)은 고려와 금나라의 중간관리지역 비슷해지다가...
발해유민들의 재 부흥국인 대원(大元)국과 문화권이 같은 몽골족(말갈족)들에 의해
이곳의 대리통치자였던 타타르(달단)인들이 도륙날 때...달단족 일부는 고려에 귀화(이성계 집안등)...
서요(카라키타이)잔당과 금나라(동여진)잔당이 모두 동서의 지들 본거지로 물러나고...
고려가 잠시 이 지역의 관할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몽골에 제압당하고...내내 몽골의 관경으로 편입됐다가...
몽골이 서방 사한국..특히 무굴리스탄(명나라?)과 분열돼던 시기...잠시 공백이 됀 이곳의 통치를 고려가 주장하려다가...
친 무굴리스탄(친명)파인 달단족(타타르족)계 이성계(아미르티무르?)에게 고려정권이 인수돼고...
이때 부터 잠시 또 이 곳의 지배권을 조선이 명에게서 회복했다 보이나...
이어진 왕자의난(이방원의 난)으로 조선이 동서로 분열됐다가...세종 때 봉합됐는데...
다시 세조(정통제?)때 안평대군을 제거한 걸 기화로 이징옥이 이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그 땅은 중가르(오일라트)를 거처 누루하치계 여진에게 계승돼어 이 지역은 영원히 조선의 관경내에선 빠져서 구한말까지 권리가 없었던게
한(漢)의 중심지이자 선비족..고구려&발해족들의 중심지였던 중국(주로연경)과 그 주변 경기(천산일대?)의
영토 변천역사라 전 비정해 봅니다.
고로, 중국과 그 주변 경기(기내천리)는...
항상 단군조선에서 근대조선까지 동이족 조선의 황도였던게 아니라...
당대 강대국들인 한,부여,위(백제?),고구려,거란,금나라,고려,몽골,명(무굴?),조선,청(타타르)가 교대로 통치했던 지역이란 겁니다.
각 민족과 정권이 거의 유일하게 세계의 지배자(천자)의 황도로 애용했던게 중국(천산유역?)였던 것이고...
그러니 중국(中國)이란...어느 특정 민족이나 문명권의 독점지역이 아니요...
시대마다 세계를 지배한 자들이 차지해 황도로 애용했던 신장성 천산유역이지...
역사내내 주구장창 조선의 중심이 중국이란 해석은...
고구려나 부여 발해와 이성계 조선 초기에 다르렸던 어느 특정 시절만의 기록으로...
역사내내 고려와 조선의 관경였다 해석하는 착시현상이라 전 봅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가능하다 봅니다.
동선비인 조선(朝鮮)도 광의적으론 서선비인 선비족과 한가지니...모두 단군조선족...
중원의 고대 지배왕조는 상당수가 선비족였으니...고구려 이전 중국도 모두 단군조선의 관경...
명(무굴?)도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체인 발해...그를 부흥시킨 대원(몽골)의 서남단 정권이니...
명나라(무굴?)도 단군조선...
신라계 고려족 아골타의 금나라도 고려계니 단군조선족...
그를 이었단 후금이자 단단(타타르)족 출신 건주여진 누루하치의 청나라도...어짜피 조선의 서북도 출신이니...
당연히 단군조선족...
그럼 이 역대 중국(천산유역?)을 차지했었던 모든 종족의 황가들은...
광의적 개념으론 단군조선족들이니...중국의 경기지역 (천산유역?)은 내내 단군조선족의 중심지를 이른다란 해석은 가능합니다.
허나... 동선비(東鮮卑)이자 동이(東夷)인 조선(朝鮮)은...
이 중국(천산유역?)에서 상대적 동북쪽였을 때가 많았던 역사가 허다하게 나오니...
역사가 기자국이자 조선(朝鮮)이라한 동이족의 나라가...우리가 말하는 대륙조선이라면...
내내 중국(천산유역?)을 근세까지 차지했었던 나라가 아니라...
그 지역을 뺏고 빼앗끼다가...점점 섬서성 서안중심으로...구한말기엔 중원 동부 (산동과 북경중심)로 쫒겨났다 가...
현재는 상당수가 동북삼성과 한반도로 내밀려진...
그 대륙조선이라고 전 정의내려 봅니다.
더군다나...
문무님도 난감해 하시는 지중해 조선설 ...우랄=백두산성의 서역조선설여...?
물론 서선비계로 보이는 스키타이(힛타이트)가 숙신의 지파요,키당(키타이)의 지파라 보이고...
훈(훈루)족이 또 그들을 제압...그들이 서역을 이름만 달리 모두 지배했던게 서양역사의 전부니...
서역도 어찌 보면 단군조선의 방계자손들 역사는 맞겠으나...
스키타이,바이킹,서선비나 당나라가... 조선과 별개의 이민족문화라고 본다면...
동이조선의 중심인 중국은...천산 서쪽 파미르 이서엔 없었다 보는게 상식일지 싶습니다.
첫댓글 궐한님!
뭔가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륙조선사를 주장한 지 이십년이 되어가는데, 여지 것 어떤 글에도 "중국"지방은 중원지방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천산이나 그 북쪽, 또는 서쪽지방은 조선의 서변 내지 서북변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산 지역 중국"이란 말에 화들짝 놀랬습니다. 크게 오해가 있는 듯 합니다. 주된 주장에서, 조선의 시원은 서북변과 서변에서 차츰 동쪽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주변의 여러 나라와 종족들을 굴복시키고 중원을 차지했다는 밑 그림입니다.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한 말씀 더 드려야 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조선"이란 한훙천황이래 단군조선과 삼한 삼국 고려 근대조선을 모두 총칭한 뜻입니다. 그 과정의 여러나라 예를 들면, 고조선, 기자조선, 부여, 예, 고구려. 등등의 여러나라 관경은 확장과 축소의 여러 형태가 있을 것이나, 전체적인 조선의 대략적인 강역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근대조선까지도 옛 땅을 차지하고 있던 곳들을 찾아 옛 고서들과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제 글에서 "조선"이란 말은 조선국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누누히 설명했기 때문에 때로는 생략되어 설명하고 있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내란 말은 주나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며, 주나라는 조선의 연장국가로 보는 것입니다. 기내란 곧 서울지방 또는 경기도지방을 일컫는 말로 수천년 그곳이 한 곳일 수는 없습니다. 에를 들어 고구려의 초 평양은 "平襄"도 될 수 있을 것이며, 후대엔 "平壤"이 될 수도 있으며, 한양(漢陽)" 역시 처음엔 '천수'도, 그 다음엔 '서안'도, 그 다음엔 '무한'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이동은 나라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요. 신라의 계림은 감숙성 금성도 될 수 있으며, 후대엔 낙양도 될 수 있습니다. 백제 역시 여러 곳을 기내로 했습니다. 조선사는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