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다섯째 이야기
- 아수라장이 된 멧돼지 붕당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
날은 무지무지 더워서 축축 처지게 만드는 날에
이 사나이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남은 땀을 질질 흘리면서 힘들어 하는데
우째 저리 기분이 좋을꼬 했더니만
일단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것다
벼슬아치들 내시 궁녀들 모두 28도로 맞추라고 하고는
지만 21도로 켜놓았으니 삼복더위에도 춥구나 추워
멧돼지 원래 더위를 많이 타긴 하더라만
이건 좀 치사한 경우인데 그래서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니
멧돼지네 붕당에 영수로 있던 젊은 녀석이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단다
새파란 녀석이 까불어대서 쫓아내려고 했는데
성상납이라는 죄를 알아내고도 포도청에서 지지부진
붕당 윤리위에서도 차일피일
그런데 마침 징계가 통과되었단다
기분 좋아서 콧노래 부르며 낮술 한잔 하고 있는데
조금 껄떡지근한 점이 없지는 않았으니
6개월 뒤 이 녀석이 복귀하지 못하게
아예 새 영수를 뽑았으면 했는데
붕당의 선량들을 대표하는 동새가
직무대행 하겠다고 해서 원천봉쇄를 못 했으니
그게 좀 꺼림직한데 다음 수를 생각해 봐야지
일단 한양 포도대장에게 성상납 수사를 독촉하라고 지시했것다
이 자가 누구인가 멧돼지 외할머니가 30년 다니던 절
그 절 승려의 조카란다 멧돼지 인사하는 게 뭐 그렇지
1년 만에 두 계급 초고속 승진해서 한양 포도대장이 된 인간
되자마자 장애인들 시위 잡으러 지구 끝까지 가겠다고
게거품을 물던 인간 이 인간이 포도청에 빨리 수사하라고 하고
그래서 기소가 되고 영수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멧돼지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는 발언만 하면 된다
이런 잔머리 굴리면서 양술을 홀짝 홀짝 하고 있는데
전하 도승지 입시요 하는 내시의 목소리
또 무슨 일일까 요즘 신하들이 보자고 하면 가슴이 철렁
그래 들라 하라 라고 침착하게 응수를 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화급하게 떠드는 도승지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전하가 동새에게 보낸 약식 교지가 그만
뭐가 어쨌다는 건지 차근차근 말해 보거라
선량들 회의에 나간 동새가 그만 전하의 약식 교지를 들켜
기레기들한테 전하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동새한테 격려차 간단한 약식 교지를 보낸 일이 있었것다
내부 칼질이나 하는 영수가 바뀌니 잘 되고 있다고
그런데 그것을 들켰단 말인가 참으로 멍청한 놈이로세
그리고 그것을 속마음이라고 하는 이런 놈이 도승지라니
속마음이 어쩌구 어째 누구 속마음이 들켰다는 거야
내 겉마음이든 속마음이든 영수가 바뀌어서 안타까운 거야
멧돼지의 구겨진 인상을 보고
잘못 말했다 싶은 도승지 연신 머리를 조아리더라
할 수 없다 직무대행을 물러나라고 하고
붕당 지도부들 하나씩 사퇴해서 비상대책위를 만들라고 해라
네 전하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멧돼지 이제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가니가 불쑥 들어서겄다.
오빠 또 낮술 했지. 뭐야. 난 5층에 갇혀서 답답해 죽겠는데
그래 우리 가니 조금만 참아 이제 곧 휴가니까
그리고 오늘 박사 받은 학교에서 논문 문제 없다고 했잖아
축하해 이제 정말 박사님이지
뭐 오빠가 힘 좀 썼다는 거 모르진 않아 고마워
가니가 샐쭉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인사를 하는데
멧돼지 속으로 솔직히 그렇게 통째로 베꼈는데도
무마시킬 수 있으니 참으로 권력이 좋긴 좋구나
근데 가니 아무개 법사가 또 문제를 일으켰나 보데
그리고 이전에 관련된 업체들에게 일 맡기지 않으면 좋겠는데
아니 오빠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오빠가 여기까지 온 거도 다 나와 그 사람들 덕이야
이제 도와준 사람들에게 배은망덕하면 어찌 될 줄 알아?
누가 오빠를 도와줄 것 같애? 정승 판서 선량?
웃기지 말라 그래. 공주 꼴 보면 몰라? 다 배신할 년놈들이야
하긴 가니 말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붕당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멧돼지 괜히 가니 심사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화제를 돌려서 비위를 맞추려고 마음 먹었것다
그래 며칠 뒤면 휴간데 우리 어디로 갈까?
이번 휴가는 그냥 방콕해 연극이나 한번 보자
내가 그래도 임금인데 휴가 때 남의 나라에 나가도 되나?
어이구 멍충아 방에 콕 박혀 있는다는 옛날 말도 몰라?
아니 언제는 공주섬에 가자고 하더니 싫어졌어?
싫어진 게 아니라 법사님께서 한양 뜨지 말래
멧돼지 속으로 좀 거시기했지만 누구 명이라고 거역할까
그래서 이번 휴가는 방콕하다가 시내나 몇 번 나가기로 했는데
도승지가 교지를 전하여 동새가 착착 일을 진행했건만
젊은 영수 이 놈의 반발이 심상치 않네
지금까지와는 달리 멧돼지를 직접 공격하고
송사를 하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더라
지금이 무슨 비상 상황이라고 비대위를 꾸리느냐
설사 비대위를 꾸려도 동새는 물러나야 한다 아니다
지들끼리 티격태격 도대체가 제대로 하는 놈이 없구나
마침 고민스러운데 스승께서 방침을 보내셨다
이럴 때 영수 위에 대영수라는 걸 만들어서
멧돼지가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이렷다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시나 됐다 결심을 굳힌 멧돼지
붕당의 선량들, 열성 당원들 모두 모이라고 해라
단합대회하고 내가 특강도 하고 붕당의 재출발을 선언하리라
낡은 붕당 부수고 명실공히 멧돼지 붕당을 만들어서
대영수가 되어 너희들을 이끌고 가리라
도승지에게 알리고 동새 통해서 추진하라 했는데
단합대회 장소에 구름떼같이 모여드는 사람들
아 내가 아직 인기가 있구나 생각한 멧돼지
손을 흔들며 기고만장 파란만장 뭐 아무튼 신이 났더라
그런데 이상하게 선량들은 안 보이고 사람들은 뭔가 들고 있네
여봐라 선량들은 다 어디로 갔는고
내시에게 물으니 내시 바들바들 떨며 어쩔 줄 모르다가
늘 하듯이 아뢰옵기 황공하오나만 연발을 하더니
누구 누구는 역병에 걸리고 누구 누구는 교통사고가 나고
누구 누구는 휴가를 떠났고 누구 누구는 세미나를 한다나
이런 괘씸한 것들이 있나 역병에 걸린 년놈만 절반이 넘네
왜 이럴 때 하필 역병에 걸린다는 말이더냐
그리고 휴가? 세미나? 이것들이 정녕 죽기로 작정한 것이냐
죽기로 작정한 것인지 살려고 몸사리는 것인지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일이겠고
그럼 저 사람들이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거기 뭐라고 써 있는데 한번 읽어 보아라
전하 죽여 주시옵소서 저것만은 못 읽겠사옵니다
멧돼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는데
무언가를 든 사람들이 앞으로 한발 한발 다가오는구나
그리고는 들고 있는 것을 외치는데 군사연습하는 듯하네
멧돼지 파면 가니 구속 멧돼지 파면 가니 구속...
저런 저런 괘씸한 것들이 있나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당장 저놈들을 싸그리 잡아들여라
포도청장이 달려오더니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거수 경례까지 하고 달려가는데 믿음직하구나
그런데 사람들이 바로 코 앞에 오고
글자까지 멧돼지한테 선명하게 보이는데도
포도청장이 아무런 조치가 없는지라
내시에게 불러오라 이르니 한참 뒤에 달려왔는데
한다는 말이 일선 포도대장들이 움직이지를 않는다는구나
지금은 백성이 주인인 세상이라서
백성들도 저런 말을 할 자유가 있다는 거라
이런 바보 같은 놈들 백성이 주인인 척하는 세상이지
뭐가 백성이 주인인 세상이냐 그래 어찌하겠느냐 물으니
전하 일단 피하십시오. 무뢰배들로부터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그래 그런 것 같구나 너도 빨리 피하자
아닙니다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포도청장의 엄숙한 표정이 믿음직했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포도대장과 군중들에게 이건 제 뜻이 아니고
전하의 뜻이라고 저는 할 수 없이 한다고 분명히 했습니다요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도 빠져나갈 생각만 하는구나
멧돼지 갑자기 어지러워지는데 군중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 돼지, 촛불 든 개 돼지가 되었더라
자기가 손 흔들면 환호하던 사람들이 진짜더냐
멧돼지 파면, 가니 구속을 외치는 촛불 든 개 돼지가 진짜더냐
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다섯째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