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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북 의성 등운산 고운사(騰雲山 孤雲寺)를 찾아서 ②
-삼층석탑, 나한전,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그 밖의 당우-
대웅전 맞은편에 있는 이 길은 삼층석탑과 나한전으로 가는 돌계단입니다
대웅전을 물러나와 앞을 보니 숲이 무성하게 우거졌는데 그야말로 선경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삼층석탑과 나한전이 있어 찾아갔습니다.
돌계단을 오르니 삼층석탑이...
이 탑은 대웅전 맞으편 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나한전 앞에 있습니다.
세월의 풍상에 많이 훼손된 모습입니다.
고운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이 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규모가 줄어들었고 옥 개석의 형태 등에서 시대가 조금 내려간 모습이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 측하고 있습니다.
고운사 삼층석탑(孤雲寺 三層石塔) 안내판
전문을 옮겨 봅니다.
「이 탑은 고려시대 3층 석탑으로 높이는 3.33m[10尺]이다. 현재 고운사 경내 동쪽 산기 슭에 서 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올린 형식으로 기단부 석재 일부가 결실되었으며, 아래 기단에 는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 2개와 안기둥 1개 씩을 모각(模刻)했고, 덮개돌은 부연과 괴임 두 단을 각출했다. 탑의 몸돌은 모두 모서리 기둥만을 본떠 새겼고, 지붕돌은 제4지붕돌 에서 4단 받침 제2, 제3지붕돌에서는 3단 받침을 각출하여 위로 올라가면서 간소화 시키고 있다. 제3지붕돌 위에서는 네모난 형의 노반(露盤)을 보존하고 있으며, 아래 기단면석에 창모양의 안상(眼象. 靈氣窓)을 새겼을 뿐 단조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운사 사적비(孤雲寺 事蹟碑)
이 사적비는 삼층석탑 옆에 있습니다
나한전(羅漢殿)
이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원래 현 대웅보전 자리에 있던 대웅전으로 조선 중기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건물을 이전하면서 16나한을 모셨기 때 문에 전각의 이름도 나한전이라 바뀐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과거에 대웅전이 참 소박하게 작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한전의 주련은 과거 대웅전의 주련이 그대로 옮겨졌음 을 알 수 있습니다.
古佛未生前 고불미생전 옛 부처 나기 전 고불미생전 凝然一相圓 응연일상원 두렷이 환히 밝은 한 동그라미 釋迦猶未會 석가유미회 석가도 오히려 모르는 건데 迦葉豈能傳 가섭기능전 가섭이 어찌 알고 능히 전하랴!
나한전(羅漢殿) 편액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긴 말은 짧게 줄여서 쓰고 있지요. 나한전은 부처님의 성문(聲聞) 제자들을 모신 전각이지요. 그런데 이 전각은 나한 전 외에도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영산전(靈山殿), 응진전(應眞殿), 오백전(五百 殿) 등...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이 부처님은 종이를 녹여서 조성한 지불(紙佛)이라고 합니다. 지불은 흔치 않아 귀한 불상 입니다. 청량산의 청량사 유리보전의 약사여래불이 지불로 유명합니다.
불단의 좌측 여덟 분의 아라한 성중님
한 분 한 분 앞에 해바라기꽃을 공양했네요. 참 특이 했습니다. 나한전의 아라한 성자의 배열은 본존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제1, 제3, 제5, 제7, 제9, 제11, 제13, 제15의 존자가 배열되어 있습니다. 또한 오른쪽에는 본존을 중심으로, 제2, 제4, 제6, 제8, 제10, 제12, 제14, 제16의 존자가 배열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적어 봅니다. 제1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 제3 가락가발리타사존자(伽洛伽跋釐墮闍尊者), 제5 낙구라존자(諾矩羅尊者), 제7 가리가존자(迦理迦尊者), 제9 수박가존자(戍博迦尊者), 제11 나호라존자羅怙羅尊者), 제13 인게라존자(因揭羅尊者) 제15 아시다존자(阿氏多尊者)
불단의 우측 여덟 분의 아라한 성중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차례로 제2 가락가벌차존자(伽洛伽伐蹉尊者), 제4 소빈다존자(蘇頻陀尊者), 제6 발다라존자(跋陀羅尊者), 제8 벌사라불다라존자(伐闍羅弗多羅尊者), 제10 반탁가존자(半託迦尊者), 제12 나가서나존자(那伽犀那尊者), 제14 벌나바사존자(伐那婆斯尊者), 제16 주디반탁가존자(周利半託迦尊者).
세 분만 확대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우로부터 제6 발다라존자(跋陀羅尊者) 제8 벌사라불다라존자(伐闍羅弗多羅尊者) 제10 반탁가존자(半託迦尊者)입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畵)
나한전 옆에 한창 보수 중인 전각은 요사채랍니다.
나한전을 물러나와 약사전으로 향합니다. 대웅전 옆으로 돌면 약사전이 나옵니다.
약사전(藥師殿)
약사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안에는 1963년도에 지정된 보물 제246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우선 주련을 읽어 보았는데 보고 참으로 의아했습니다. ??? 이래도 되는가 싶었습니다.
東方世界名滿月 동방세계명만월 동쪽의 불세계는 만월이라 하옵니다. 那畔神通世所稀 나반신통세소희 나반존자 신통은 세상에 드문 바니 佛號琉璃光皎潔 불호유리광교결 부처님은 유리광불 그 광명은 희고 맑네. 行裝現化任施爲 행장현화임시위 숨으시고 나타남이 임의자재 하시다네.
이 게송을 보면 첫째 행과 셋째 행은 약사여래 찬탄송이고, 둘째 행과 넷째 행은 나반존자 찬탄송입니다. 약사전 주련에 약사여래 찬탄송과 나반존자 찬탄송이 뒤섞여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넷째 행의 행장현화(行裝現化)에서 '장(裝)'은 '장(藏)'의 오자(誤字)입니다. 수십억 공사를 엄청나게 하면서 이와 같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
약사전에 모셔진 석조 여래좌상은 약사불인가? 석가모니불인가?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전각입니다. 약사전에 들어 삼배를 올리고 나 서 부처님을 뵈니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계셨습니다. 항마촉지인을 하신 부처님 을 우리는 석가모니불로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 앉아 성도(成道)하실 때 마군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때 지신(地神)을 불러 이를 증명하셨는데 이때 취하신 수인(手印)이 항마촉지인입니다. 그래서 이 수인은 석가모니불의 대표적인 수 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사전에 이 수인을 하신 부처님을 모셨으니 이 부처님 을 약사여래로 모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느 부처님이든 성불하실 때 항 마를 하지 않으신 부처님이 어디 계시랴 싶었습니다. 어떤 절에서는 항마촉지인을 하신 부처님을 아미타불로 모신 곳도 있으니 말입니다. ^^
《전통사찰 총서》에서 『고운사』편을 보면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봅니다.
보물 제246호인 고운사 석조여래좌상(孤雲寺 石造如來坐像)
안내판을 읽고 있는 비니초님
약사전 앞에 안내판이 있어 옮겨 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사여래불이 아닌 석가모니불 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좌상(孤雲寺 石造 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46호-
소재지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116
「이 불상은 높이 79cm이다. 불상 받침인 대좌(臺座)와 불상 뒤 원광인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다. 크지 않으며 코에 인중이 뚜렷하고 작은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아랫입술 중앙이 오목하게 파이고 턱은 살이 붙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양쪽 귀도 얼굴에 비해서 작은 편이고, 굵고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치켜 올라간 어깨로 인해 목은 더욱 짧아 보이고 가슴은 잘 발달되어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들어 낸 우견편단의 법의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밀집된 같은 간격의 옷주름이 도식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불상은 솟아오른 살에 불분명한 머리, 짧은 두 귀, 네모진 상체에 나란히 흘러내린 옷주름선 등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의 성 군- 」
약사전을 물러나 전각 순례에 나섰습니다. 조금 오르니 <아거각>이 나옵니다. 아거각? 전각의 이름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ㅎㅎㅎ 그런데 이 이름에서 이 전각은 서산 대사(西山大師)와 관계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찍으려니 오늘 일정이 많이 남아 있는데 밧데리 3개로 어찌 감당하랴 싶어 사진을 가급적 자재하며? 촬영했습니 다. ㅎㅎㅎ ^^
아거각(我渠閣)
아거각(我渠閣)은 원래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진영(眞影)을 모시던 영각(影閣)이었으나 현재 는 스님의 숙소로 쓰인다고 합니다.
아거(我渠)가 무슨 뜻일까요? '아(我)'는 '나 아'임을 다 알지만 '거(渠)'는 약간 어렵지요? 거(渠)는 '도랑 거'자입니다. 여기서는 '도랑'의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닙니다. 거(渠)자는 여러 훈(訓)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그 거, 그 사람 거'자입니다.
서산대사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서산대사께서는 만년인 선조 37년(1604) 1월 묘향 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시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 뒷면에 다음과 같은 시를 적으셨습니다.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전거시아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후아시거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그리고 다시 종이를 가져오라 이르고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기셨습니다.
千計萬思量 천계만사량 천 가지 꾀 만 가지 사량분별은 紅爐一點雪 홍로일점설 활활 타는 화로의 한 점 눈일세. 泥牛水上行 니우수상행 진흙소가 물 위로 걸어가노니 大地虛空裂 대지허공열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노라.
그리고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입멸하시니, 그때의 세납은 85세요, 법납이 67세였습니다.
아거각(我渠閣)은 그래서 이름한 전각입니다. ^^
적묵당(寂默堂)
아거각과 이웃한 건물로 1990년에 세워진 건물로 객승이 머물다 가는 객실(客室)이라고 합니다.
명부전(冥府殿)
이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약 300년 전에 세워진 법당이라고 합 니다. 그러니까 조선 현종(顯宗) 11년인 1670년에 숭해(崇海)ㆍ묘선(妙善)ㆍ성준(性峻)ㆍ 인준(印峻)ㆍ숭흘(崇屹)ㆍ숭학(崇學)ㆍ희열(熙悅) 스님 등이 명부전을 세우고 시왕상(十王 像)등을 조성하여 봉안했다고 합니다.
우보처 무독귀왕 본존 지장보살 좌보처 도명존자
고운사는 지장도량으로 유명합니다. 지장도량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철원의 보개산 심원 사, 고창의 도솔산 도솔암, 서산의 상왕산 개심사, 완주 종남산 송광사를 4대 지장도량으 로 꼽습니다. 그러나 고운사도 이에 못지 않게 유명하여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 지장보살님을 뵈었느냐?" 하고 묻는다고 합니다.
안동에 사는 한 보살의 이야깁니다.
「일찍이 할머니를 따라 고운사에 자주 들렸는데, 지장보살님께 장애인을 위한 교사가 되 겠다고 서원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어려서부터 영특한 딸이 교사, 그것도 팔다리가 부 자유하고 지능이 낮은 장애아와 평생을 같이 하겠다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모의 마음을 모른채 할 수도, 지장보살님에게 한 서원 또한 버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그녀도 한쪽 다리를 목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되었다.
딸은 부모에게 지장보살님의 뜻에 맡기자며 7일 기도를 하자고 제안했다. 부모도 마지못 해 딸을 따라 고운사 명부전을 찾아 기도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이었다. 밤도 깊어 졸음 이 쏟아질 무렵, 문득 어디선가 우지끈 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시던 지장보살님이 한쪽 다리를 쭈욱 펴는 게 아닌가. 깜박 잠이 들었던 어머니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투신 것이다. 지장기도 회향 이후 딸의 다리는 기적적으로 정상으 로 돌아왔다. 이윽고 부모는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라는 명으로 받아들였다.
딸은 이후 장애인학교의 선생님이 되었고, 그 부모도 장애인을 돕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불교 기도성지 중에서-
불단 좌측의 시왕들
불단의 좌측에는 불단을 중심으로 1ㆍ3ㆍ5ㆍ7ㆍ9의 홀수 대왕이 앉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1 진광대왕 (秦廣大王), 제3 송제대왕 (宋帝大王), 제5 염라대왕 (閻羅大王), 제7 태산대왕 (泰山大王), 제9 도시대왕 (都市大王)입니다.
불단 좌측의 금강역사
불단 우측의 시왕들
불단의 우측에는 불단을 중심으로 2ㆍ4ㆍ6ㆍ8ㆍ10의 짝수 대왕이 앉아 있습니다.
이를 테면, 제2 초강대왕 (初江大王), 제4 오관대왕 (五官大王), 제6 변성대왕 (變成大王) 제8 평등대왕 (平等大王), 제10의 오도전륜대왕 (五道轉輪大王)입니다.
불단 우측의 금강역사
명부전 참배를 하고 나와 내려오면 삼성각이 있습니다. 삼성각을 찾을 차례입니다.
삼성각 모습입니다.
삼성각 모습입니다.
삼성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고운사에 삼성각은 따로 없었는데 1998년도에 새로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만큼 전각의 칠성탱ㆍ산신탱ㆍ독성탱은 최근에 조성하여 봉안한 불화입니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그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받아 威振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엄 떨쳐 중생을 제도하고 萬里白雲靑嶂裡 만리백운청장리 만리 뻗은 흰 구름 푸른 산 봉우리를 雲車鶴駕任閑情 운거학가임한정 구름수레 학을 타고 한가로이 노니시네.
칠성탱화(七星幀畵)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ㆍ월광보살이 시립해 있고, 상단엔 칠불(七佛)이 합장 한 모습이며, 하단엔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시립해 있습니다. 칠원성군은 도교적인 이름 이며, 칠원성군이 불교적으로 여래로 화현한 분이 칠불입니다. 일광보살 옆에 머리가 뾰 죽하고 수염이 흰 분은 수성노인(壽星老人)입니다. 이 분은 대개 상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데 중간에 서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수성노인은 장수(長壽)를 관장한다고 합니다.
산신탱화(山神幀畵)
기암괴석을 병풍 삼아 낙락장송 밑에 호랑이를 데리고 앉은 산신은 양손으로 불자(拂子)를 잡고 지긋이 앞을 바라보는 모습이며, 동녀는 호리병을 단 지팡이를 들고 옆을 바라보는 모습이고 동자는 선과를 소반에 받쳐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
독성탱화(獨聖幀畵)
독성 나반존자의 모습도 산신과 비슷한 배경으로 앉아 있는데, 저만치에서 폭포수가 흐르 고 있습니다. 오른손엔 염주를 들고 왼손엔 주장자를 잡고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두 동남동녀가 존자께 공양할 공양물을 받쳐 들었는데 사슴이 다가와 호기심을 보이고 있 는 모습이 정답게 보입니다.
연지암(蓮池庵)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원래 있던 연지암을 헐고 1997년에 확장하여 지은 건물로 그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는데 연못이 없습니다. 여기는 소임을 보는 스님 들의 숙소와 차실이 있다고 합니다.
고운사에는 아기자기한 건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당우가 있는데 다음 3편에 소개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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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운그림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_()_
사찰 순례를 하다 보면 건물 둘레에 있는 담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세히 보면 사람이 머무는 곳에만 작은 담을 세워 두었습니다.
작고 소박한 담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지암 앞에 있는 작은 담은 지붕공사를 하면서 나오는 기와로 쌓은 것이었습니다. _()_
예, 그렇지요. 스님들의 주석처나 수행처에는 담이 있는 경우가 많지요.음을 얻습니다. ^^ _()_
일반인 출입금지지요. 사람이 머무는 곳이란 작은 깨
연지암 앞의 기와는 기와를 재활용하여 상징적인 담을 형상화했지요.
그 담이 멋있다고 했는데... 클로즈 업을 했어야 했는데...
아라한성중님께 해바라기 공양한것이 특이하네요. _()_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라한 성중들을 다 담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밧데리가 걱정되어 생략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_()_
불교미술에서 아라한 성중들의 표현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고운사 순례기를 보면서 일반인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바로잡아 주고, 깊이 있는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_()_
순례를 하다 보면 사찰마다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사찰에서도 분명 알 텐데도 고치지 않는 이유를 _()_
잘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어떻게 감사함을 드려야 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