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 그 배경이되는 간판들의 이름 속에는 삶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져 있다. 어쩌면 그렇게 간판들의 이름도 잘 지었는지, 거리를 지나면서 바라보는 간판을 통해 삶이 깃들고 땀이 밴 삶의 현장 속에서 문학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옥수사의 간판을 보고 골목으로 접어들었던 날에 비로소 그 느낌이 절실해졌다. 무엇 때문일까. 근대화가 바꿔놓은 건 지붕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 또한 바꿔놓았다. 농경사회적 공동체가 도시산업사회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익명의 공간에 모여 살게 되었지만 초창기 근대화는 아직 공동체적 요소가 남아 있었다.그것이 전통 고을과 다른 동네라고 하는 것이다. 동네엔 근대화의 뒷골목, 그 훈훈한 인정이 아직 남아 있다. 그건 마치 재래시장의 흥정에서 아직 떠나지 않은 인정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모란 시장의 각설이 들이 늘어놓는 만담이나, 북을 두들기면서 흥부바지처럼 꼬맨 바지로 하늘을 뛰어오르는 춤을 추는 흥겨운 정 또한 장터에서 맛볼 수 있는 국밥 같은 맛이다.
옥수사, 행복한 쌀집-쌀맛나는 세상, 제비표 페인트, 한일함석, 남산제재소, 삼천리 자전거점, 대지다방, 종로보석, 국민불교사, 최치과, 금성철물, 설화단란주점, 한약 제분소, 동해수산, 총각떡집, 영생상여, 해남수산, 쉬어가는 고을-책방 책세계 등등 이름을 되뇌이는 것만으로도 훈훈한 동네의 정이 와락 달려다는 것만 같다. 그건 아파트로 상징되는 삐까번쩍 현대의 건물들 속에서 느끼는 디지털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다.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그저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그곳을 보존하지는 않는다. 재개발을 통해 더 파이를 키우는 자본주의적 논리로 이전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엔 반듯반듯 신도시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시설들이 들어선다.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쇼핑몰, 대형 사우나, 안마시술소, 모텔, 유흥주점, 쭉 늘어선 잘 차려진 건축소재의 음식점들, 도시는 깨끗하고 대형주차장이 딸려 있다.
극명한 대비, 근대성과 현대성이라고 하는 도시 분위기처럼이나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서울도 강남이 주목받는 이유가 기존의 구도시와 다른 개발의 프리미엄이 넘치는 새로운 현대성으로 모든 생산양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수나 군산, 전주나 제주,천안을 비롯해 우리나라 거의 모든 도시들이 기존의 구도시와 새로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지는 신도시로 나뉜다. 그건 그저 도시의 가로망이나 주거 환경이 바뀌는 것을 넘어서 삶의 방식과 환경 그리고 문화가 바뀌는 걸 의미한다.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흥이나 정겨움을 느끼던 세대에서 근대적인 성장논리에 따른 문화적 변화를 넘어 이제는 반듯하게 지어진 아파트와 복합상가, 그리고 첨단화된 공장과 산업시설, 거기에 대형게임방과 유흥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다 이전의 기준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다.
물론 도시는 한꺼번에 다 바뀌진 않는다. 공존한다. 근대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있다. 마치 나이든 노인과 또 젊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는 보고 들은 것과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다르기에 더욱 더 변화된 세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거리를 지나면서 보게 되는 간판의 모습이다. 간판은 시대를 반영하는 이름표다. 결국 작품 속에는 시대의 교차와 공존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세태가 담겨지기 마련이다. 그 모순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극명하게 서로의 사는 모습을 다르게 만드는지를 안다. 서서히 퇴락해가는 집들과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공존하는 도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태어나는 신 세대와 이제 세상을 떠나는 구세대가 바통 터치를 하듯 말이다.
철길을 따라 동쪽엔 구시가지 있고 서쪽엔 신 시가지가 있는 도시의 모습 또한 독특하다. 신구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새로운 도시가 들어선 말샘의 개발지는 그야말로 개벽천지다. 오늘 그 천국의 화단을 만드는 일을 했다. 곳곳에 보이는 모텔과 유흥주점의 이름이 구층 옥상 위로 보였다. 제우스, 오페라, 피아노, 드라마, 시마, 양귀비, 그리고 롯데마트와 조이랜드, 스파벨리... 낯선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옥상에서 리어커를 끌고 흙을 퍼다 화단을 만들었다. 조경을 위해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용도로 변화될 지도 모를 화단이었지만, 그곳에 심어질 단풍나무 몇 그루가 타워 크레인에 들려 하늘로 솟아올랐다. 세상의 유흥주점과 러브모텔들이 다 모여진 곳처럼 변해버린 말샘이었다.
개미, 하루, 현찰... 독특한 인력사무소 이름들에서 보내져 온 사람들이 아파트와 현장으로 줄줄이 달려갔다. 여자개미, 남자개미,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 현찰 박치기로 주머니에 돈 있기 바쁜 사람들이 달려들어 하루하루를 연명해간다. 말샘의 하늘에 단풍나무 귀두를 감싼 묘목처럼 하늘로 올라가고, 기이한 동네의 대형네온간판들이 즐비한 곳에서 화단 밑에 뿌릴 가볍고 흰 콩고물 같은 인공토를 옥상에 뿌렸다. 비가 온다고 하던 날이었지만 비 대신 먹구름이 급하게 비도 뿌리지 않은 채 지나갔다. 그 인공토에 물을 뿌리고 흙을 실어 날라다가 그 위에 덮었다.
새로 지어진 도시, 말샘의 토순이는 바쁘다. 점심에 이어 새참까지 날라야 한다. 막국수 여덟개에 써비스 돼지 귀떼기를 한 접시 추가해 옥상으로 음식을 이고 온다. 천국의 화단 위로 흰 인공토양이 날리고 하늘엔 구름 사이로 땡볕이 드러난다. 수집벽은 오늘 따라 심기가 불편하다. 일을 하는 것 같이 하지 않아 욕을 얻어먹는 것 같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다. 개미로 사무실을 옮겨온 둘 째 날이다. 리어커에 흙을 실어 하늘 길을 달려 발판으로 만들어놓은 경사진 벽면을 타고 벼랑으로 뛰어내릴 듯 화단을 향해 흙을 쏟아붓는다. 불가마, 안마시술소 너머로 담배인삼 공사가 보인다. 저녁 무렵 어디서 밥 짓는 냄새가 난다고 코를 벌름거리던 녀석의 냄새는 다름이 아닌 인삼 찌는 냄새였다. 홍삼 만드는 냄새가 시장기를 재촉하던 저녁이었다. 진흙구덩이에 빠진 트럭의 바퀴를 빼내던 날이었다.
아직 아무 것도 들어서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 내부를 보면서 그 안에 들어설 수 많은 모텔의 방들과 유흥주점을 떠올린다. 환락의 말샘이다. 밤이면 곳곳은 신천지로 변한다. 돈으로 모든 것들이 거래되는 곳, 대낮부터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안마 시술소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급하게 사라진다. 십여층 되는 건물들이 아파트 숲 속에서 새로운 유흥단지를 만들어놓았다. 그 사이로 보이는 공장들, 그 사이로 보이는 도시를 본다. 산은 도시의 외곽으로 푸르게 흐른다. 어깨를 걸고 있는 성거산, 유흥의 건물들과 푸른 산이 대비된다.
현장에 가면 삶의 모습들이 또렷해진다. 노동을 한 후에 더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흙빛 피부를 가진 길림성 장춘의 목수는 하루 일을 해 수표 한 장과 만원짜리 한 장을 벌기 위해 닳아질대로 닳아진 금이빨 사이로 수없이 담배를 배어문다. 한 달에 백 오십 직영 일을 하기 위해 도로공사를 하다 나왔다는 푸순 출신의 교포는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 하지만 아직 힘은 쓸만하다. 도시의 변두리 끝, 변전소를 향해 지하로 흐르는 관을 짜는 일을 위해 구간구간마다 수없이 많은 인력들이 동원된다. 태양은 뜨겁고 어깨에 목재를 짊어진 사내들이 비칠비칠 걸어다닌다. 지하에서 일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간이 방독면이 보이고, 땀에 절고 흙빛이 된 사내들이 더 흙에 가까워지도록 흙 속으로 들어간다.
쌀맛 나는 세상,행복쌀집이 있는 골목처럼 공사장 곳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들의 사연들이 차고 넘친다. 하루 십 오만원 짜리 방을 얻어놓고 고향을 떠나와 삼년 만에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장춘의 사내는, 무주촌이며 토먼, 혹은 지린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중국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더우기 그는 다음 날 일을 위해 주몽이나 연개소문을 보지도 않는다. 동북공정은 알지만, 고구려의 이야기를 다룬 연속극을 볼 수 없는 장춘의 사나이를 통해 대륙의 너른 들판을 본다. 그의 살갗 또한 그 흙빛을 닮았다.
겹칩의 세계처럼, 흔들리는 대지 위로 걸어가는 사람들, 옥상 위로 흙을 실고 리어커를 몰아 달려가는 사내들, 진흙구덩이에 빠진 트럭 바퀴를 향해 삽질을 하며 헛도는 바퀴 밑에 벽돌과 돌을 괴기도 하고, 또 출렁거리는 연장도구를 달고 이리저리 폼을 가져다 맞추면서 눈부신 빛을 향해 눈을 찡그린다. 토목공사를 해 깎아낸 언덕길 너머 승합차 한 대가 석양을 따라 달려왔다 사라진다. 해를 따라 사람들은 공사장을 빠져나간다. 옛 고을이 있던 마을을 지나, 말샘을 지나, 사람들은 끝없이 땀냄새를 날리며 도시로 돌아가고 있다. 곳곳에서 그들의 집을 떠나와 객지잠을 자는 사람들의 도시, 그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