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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1. 1. 30. 토요법회
<안암교당 박여주, 소대용 간사님 출가감상담에 관한 설법>
설 법 :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 유정인, 배성해, 송밀운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사실 설교를 별로 준비를 안해왔어요. 왜 그러냐면, 오늘 두 분 이야기가 아마 제가 볼 때는 경전을 읽은 거 못지 않게 제 설교보다 오히려 더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맞죠?
제가 원불교학과를 다닐 때, 예비교무님들이 1년 동안 한 사람씩 감상담을 해요. 사실은 총부에서 교무님들이 법문하는 거보다 저에게는 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큰 법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진리전에 기도하는 모습이요, 누군가에게 봉사하는 모습이요, 또 사심없이 맑은 마음으로 수행하는 모습이라든가, 자기의 욕심을 놓고 참 자기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살기로 결정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저는 이세상 그 어떤 그림보다도 멋진 그림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칭찬을 안 듣고 커가지고, 제가 칭찬할 줄을 잘 몰라요. 제가 여러분께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제가 엄청 칭찬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그런데 오늘은 내가 칭찬을 좀 해볼라고
소대용 교우는 키도 크고, 공부도 아주 잘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용교우에게 출가하라고 했어요 아무한테나 그말 안해요. 그럴 말을 할 사람은 그게 보여요. 출가할 사람은, 첫째 출가자는 착해야 합니다. 착하지 않고 거짓이 없어야 됩니다. 거짓이 많으면 법회도 불편합니다. 법회가 불편하면, 자기 욕심에 자기가 가려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그리고 우리 대용 교우는 참 착한데 꼼꼼해요 사실 우리 교당이 훈련책자라든가 자료라든가 만드는 거에 대해 대용 교우 많이 시켰어요 그러면 깔끔하게 정리해와요.대용 교우는 교당 방이 좁아서 남자학사에 살았어요. 비가 올 때도 있고 눈이 올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학사에서 혼자 잘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침좌선에 지각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딱 와서 제 방에 신문 3개 정리해서 갖다 놓고 좌선준비하면서 경종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 앞으로 큰 사람 되겠다’ 생각을 제가 했지요.
대용교우는 여성다워요 그래서 저 사람은 사회에 나가면, 사회 중산층 이상으로 살 수 있죠 그러나 저렇게 착하고 도심이 있거든요 전생에 악한일을 많이 한 사람은 이생에 착하지 않아서 종교생활 못해요 그런 사람한테는 착하게 살란 말이 괴롭게 살라는 말로 들려요 그런데 저 사람은 법문을 들으면 좋아하는 거예요. 물밖에서 물고기가 파닥파닥 뛰며 힘들어하다가, 큰 바다를 만나서 맘놓고 수영하게 된 거 같을 거예요.성품에 본래 선악이 어디있겠습니까마는, 착한 사람들은 그와 같습니다. 오히려 욕심이 많은 사람이 보기에 ‘어떻게 새벽에 일어나서 좌선하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까’ 싶은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그렇게 기뻐요.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자고 친구랑 노는 거 따위는 행복이라 부르지 않고 ‘재미’라고 합니다. 인생은 재미로 사는 게 아니에요. ‘행복’이라는 건 가치가 동반돼야 해요. 가치가 동반될 때 자기 스스로 행복을 느껴요. 재미는 가치가 동반되지는 않거든요.제가 교도님들을 위해서 교무님들을 위해서 일할 때, 가치가 동반되기 때문에, 묘한 기쁨이 솟는 게 있어요. 제가 출가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예요. 저는 남들 도와줄 때 좋더라고요. 자기방 청소 안해도 교당 청소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죠? 그런 사람은 출가할 가능성이 많아요. 남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출가합니다.
이 길은 헌신의 길이요, 봉사의 길이요, 하심의 길입니다. 이 길은 ‘이 길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선택하는 길이예요. ‘몸뚱아리 아껴서 뭐하나요 썩어 문드러질건데,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가치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출가다 -
모르는 사람은 대용 교우 출가에 대해서, ‘아니, 그냥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을 청소시키고 작업복같이 입혀서 일만 시키냐’ 말할 거예요. 좌산상사님도 간사 때에는 일꾼이에요. 간사생활하는 좌산님 모습 보고 당시 어느 사람이 “젊은 사람이 아깝다”며 다들 아까워했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원불교 입교해서 보까 좌산 상사님이 수위단원이고, 종로교구 교구장이 된 것입니다. “아니 그 일꾼이 교구장님이 되셨네” 말했다고 합니다.사자새끼, 임금 아들, 갓 출가한 사람은 다 어리고 연약하지만, 절대 함부로 할 대상이 아니예요. 임금 아들이 왕이 되고, 사자 새끼가 동물의 왕이 됩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했던 그 간사가 사자후를 토하는 법의 왕이 되는 겁니다.
1년간 간사하면서 실질적인 공부를 많이 했을거라 생각해요 그 동안에 받아왔던 대우,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이, 전부 반대로 바뀝니다. 줘야 하고, 내 입장보다는 타의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거 생각으로만 되지 않아요. 반복하지 않으면 잘 안돼요. 훈련은 반복이라 합니다. 알기 위한 것은 훈련이 아니예요. 그 아는 것을 내 몸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훈련이에요. ‘알면 뭣해? 실천이 안되는데’하면서 여주 교우가 중간에 교당 안나왔다잖아요. 그건 뭐냐면 상시훈련을 안했다는 거예요. 집에서 직장에서 경계 속에서 법을 쓰지 못하면 ‘똑같은 소리 하고 있네’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중근병에 들거든요. 그러나 훈련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계속 공부인으로 만들어가고 참회하게 만들고, 새롭게 만들고, 더 알수록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훈련으로서 다가갈 때 그렇게 돼요
자유라는 게 두 가지가 있죠 방종같은 자유와 고난 같지만 참자유가 있어요 대용 교우님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출가하면 ‘왜 내가 그렇게 힘들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욕심을 부여잡고 있어서 힘든 거예요. 욕심을 부여잡고 있으니 번뇌가 생기고 머리가 아픈 거예요. 그걸 탁 던져버리고 나면, 그렇게 시원해요 그렇게 편안해요 그렇게 가벼워요. 그러나 그거 놓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수양이라고 하는 것은 욕심을 놔버린달까, 비워버린달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수양입니다. 앉아서 폼 잡고 있는 게 수양이 아니예요. 여러분 경계에 딱 마주쳐보세요. 자기라는 욕심이 나오잖아요. 그때 자기라는 욕심을 놓아보세요. 얼마나 자신이 예쁜지요. 자기라는 욕심이 있으면, 좋은 것 같고 편한 것 같지만, 자기가 밉습니다. 자기라는 욕심을 버리면 자기가 이뻐요. 여러분, 웃고 살면서도 속으로 자기를 미워하는 삶을 살 것입니까, 아니면 좀 고생스럽더라도 내 스스로 ‘나 잘했다’ 싶어하는 삶을 살 것입니까?
수양의 진경?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나를 놨을 때 느끼는 마음이 진경 자리입니다. 내가 나를 놔버리면 맑아집니다. 그러나 내가 내 욕심을 콱 부여잡고 있으면 이상하게 수양도 안돼요. 번뇌는 그대로고요. 욕심은 많을수록 번뇌는 비례하게 되어 있어요. 욕심이 많을 수록 번뇌도 많아집니다. 살다가 관속에 금방 들어갈 거 그렇게 살거 뭐 있어요.
(칠판에 자전거 그림)
젊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는데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서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죠 ‘나 지금 열심히 하고 있어’. 근데 중요한 건 뭐냐 핸들이 반듯하지 않고 틀어져 있다고 쳐요. 자전거가 계속 돌게 되지요. 부처님이 이것을 ‘윤회’라고 했습니다. 우물 두레밖이 오르내리듯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중생은 돌고 돕니다.방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방향과 목표를 잡고 가면, 제자리를 돌지 않습니다.그런데 이 방향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욕심에 근거한 방향이이 있고 큰욕심에 근거한 방향이 있습니다.욕심에 근거한 건 과욕이라 하고 큰욕심에 근거한 건 서원이라합니다. 어떤 사람은 과욕으로 치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서원으로 향해 갑니다.
“원불교 공부하니까 꺠어있는 게 중요하더라”고 누가 그러대요
내가 그랬죠. “깨어있는 게 중요한데, 양심에 바탕을 두고 깨어있어야 한다.” 이게 성리학이예요 이게 교법이에요.도심이 빠지고 양심이 빠지고 인과의 진리가 빠진 일은 깨어있어봤자 업만 쌓는 거예요교도님들이 “교무님 나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무엇을 향해, 어떤 마음으로, 열심히 하셨습니까?” 열심히 한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열심히 하는 거는 당연히 하는 거지요.
대용 교우님은 강연 중에 성자가 돼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큰 욕심이고, 서원입니다. 여러분, 성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남는 장사 중 남는 장사가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생에도 좋고 내생에도 좋고 가정에도 세상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성자가 되는 길입니다.
자기가 장관 맡았다고 해도 장관 3년이상 하는거 본적 있어요? 어느 당은 20년간 당대표가 마흔 몇 명이더만요. 당대표가 평균 6개월도 못한 거예요.명예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그게 대단한 걸로 보여요. 그러나 인과의 진리로 받아보면, 영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요 장관을 3년 했는지, 국회의원했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진리는 장관을 했냐마냐를 중요시하지 않아요진리는 “너 뭐했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세상에게 유익을 줬느냐 그에 따라 보상을 해주겠다” 진리는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대용 교우님이 서원이 ‘원만한 인격을 완성하고 지공무사한 일을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일원상 진리를 말한 것이지요.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원만이요 구족입니다. 이미 구족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먹으면 내가 나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금(金)을 지고 빌어먹는다’고 표현하셨겠습니까?
우린 이미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니 마음 먹고 달리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도 여러분이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 입이 여러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생에 만드는 게 아니야, 전생에서부터 만들었고, 앞으로도 이어져서 죽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위력적인 것이 내 마음입니다. 그런데 ‘나라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들어가보면, 지공무사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습니까? 지극히 공에서 ‘사’라는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나는 공과 하나이고 사가 없기 때문에 나는 우주 만물 전체와 하나이면서 공을 위해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공을 위해 살면 좋고 아님 말고가 아니라 공을 위해서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견성한 사람인 것이라. 공을 대하는 입장이 필연이 되는 것이죠.지공무사는 박수받고 책임이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필연이 되기 때문에 아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출가자는 여기까지는 가야지, 기쁨 속에서 살 수 있어요
여주교우님이 청소하신 분이 고마웠고 밥하시는 분들도 고마웠다고요. 대용교우도 이야기했죠 엄마가 얼마나 고마웠는지에 대해서요. 여러분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예요. 사은님으로부터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을 받을 거예요. 그렇게 많은 사랑을 사은님으로부터 받으면서, 한 생 사는 삶의 목표를 나 하나의 이끗챙기고 살겠다고 하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받았으면 내놓아야할 것 아니겠어요. 국가로부터 받고 사회로부터 받잖아요.
영화 <국제시장> 보셨나요? 우리나라가 어떻게 근대화가 됐는지 보여주는 영화예요.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 일하면서 국내로 돈 보내고, 사우디 땡볕에서 일해서 돈을 보내서,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 은혜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나만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면 되겠어요?제일 불행한 사람이 뭔지 아세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사람이에요. 왜 다른 사람이 사랑해 주지 않을까요?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한 만큼 받는 겁니다. 중생은 받으면 내놔요 불보살은 받기 싫지만 받으면 다시 내놔버려서 회전시켜요.중생은 받으면 지가 잘나서 받은 줄 알고 더 요구해요. 차도 더 큰 거 가지려하고, 5개국 여행했으면 20개국 여행하려그러고, 집도 막 20채씩 가질라 그러고요. 진짜 그런 게 행복하다면 나부터 그렇게 하겠어요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능력을 중요시합니다. 그건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아니면 능력과 의지를 비례하게 놔요 근데 내가 그걸 탁 알았어요 예를 들어드릴게요 A가 능력이 좀 부족하다고 칩시다. B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칩시다. 근데 대개 보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정성이 약해요. 마치 토끼 같아요 그런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성이 있어요 거북이 같이. 사람을 쓰려다 보면, 두 가지 다 갖춘 사람이 별로 없어요. 5프로도 안 되는 거 같아. 문제는 뭐냐하면, A는 좀 역량이 달려도 열심히 하려고 그래요. 실제로 일은 B가 좀 더 잘해요 그런데 B는 정성이 부족해요. 그러면 나는 A를 키워주고 싶어요 예뻐요.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요. B는 보기에 얄밉지요.진리는 유무자리가 있습니다. 변화가 됩니다. 역량이 없어도 계속 하려고 하면 큰큽니다. 역량 있는데 안 하면 그대로 있는 거고요. 인간이란 원만구족이에요. 공을 들이면 성장하게 돼 있어요. 결국 뭐갸 중요하냐하면, 의지와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능력 과신하지 말고요.
그런데 더 들어가서는 공감 배려 소통이 더 중요합니다.삼학공부를 하면 능력이 커져요. 삼학공부를 하려는 것이 그 의지예요. 그런데 삼학보다 더 중요한 건, 사은과 함께하는 거예요. 서울대 나온 애를 회사에서 뽑았어요 아 근데 교만하고 정성이 부족하다 쳐요. 요새는 회사를 팀제로 운영하거든요 아무리 지가 뛰어나고 어울릴 줄 모르면 잘라내야 해요. 공감 배려 소통이 더 중요하더라. 진짜 능력은 소통 능력이고, 하심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을 칭찬해 줄 수 있는 능력이더라.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능력이 개인의 스펙을 올리고 점수를 올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직 한 관문이 더 있더라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마음의 원망심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요. 작은 것에라도 감사심이 난 사람이 참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한테 작은 자기한테 묶여버리면 얼굴이 오므라들어요 기운이 오므라들고요. 눈도 나이 먹어서 작아져요 이기심에 쌓여 있으면요. 돈주고 눈 틔어 봤자에요 다시 작아져요.그리고 기운이 이렇게 다른 쪽을 보지 못하게 해요 안 보여요 자기로 가리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심경이, 처지가 안 보이게 돼요. 지밖에 안 보여요.
충고를 들을 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분 지금 사회는 스승이 없어서 걱정이예요. 점수만 나오면 돼 부모님도 충고를 안해줘요. 그러나 점수가 잘 나오는데 왜 자살하고 왜 이혼합니까? 점수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우리 출가시킨 사람한테 1등하지 말라 그래요. 출가자들 고시공부하는 사람한테 고시공부 하되 하지 말라 그래요 저는 출가하고나서, 시험 있어도 잠을 줄여서 자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시험보다 수양이 더 중요했거든요. 시험쳐서 1등 나오는 것보다 수양이 더 재밌는데?!짧게 보지 말고 크게 봐야 돼요.여러분도, 학교 다니면서 시험공부하지 마세요. 시험공부를 하되 시험공부를 넘어라는 말이예요. 시험을 보려는 목적이 있잖아. 변별력을 갖추긴 하지만 ‘시험을 통해 니가 인생에 필요한 것을 배워라 그래서 니가 앞으로 니 인생에 응용하고 적용해서 써먹어봐라’ 그것 때문에 시험을 보는 것이지요 점수 몇 등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돈도 그래요.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멋있게 쓰겠다는 마음으로 벌면 돈이 더 벌릴 것입니다. 공부한 걸로 멋있게 쓰겠다고 하면 시험도 알아서 통과될 거라 그렇게 생각해요
청년들에게 스승이 없어서 곤란합니다. 청년들은 자기 생각이 항상 다 옳은 거 같아해요.제가 청년들 보면서, 본 몇 가지 현상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스카이 다닌 사람들은 저한테 혼 나면 정신을 못차려요. 혼나본적이 없어서요.학교에서 인격적으로 문제 있어도 공부잘하면 다 패스되니까요. 그러나 공부잘하면 인격이 높나요?공부잘하면 잘 살아야 될 거 아니야 근데 왜 이혼하고 자살해요? ‘내가 문제가 있다 내가 지금 더 인격을 양성해야겠다’라고 배우는 곳이 여기예요. 그런데 여기와서마저 칭찬을 들으려하면 되겠어요? ‘교무님 ’저희 엄마도 날 안 혼냈는데 교무님이 왜 혼내세요?’라고 말하면 되겠어요? 내가 혼내는 재미로 출가해서 살고 있는 거겠어요? 저도 선역하고 싶어요. 그러나 누구나 선역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음과 양이에요.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해요성지순례를 갔다 칩시다. 누군가는 “얼릉 갑시다”라고 재촉하면서 악역하는 사람이 있어야지, 저녁에 그 다음 날 회사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 도착해요.전부 선역만 하면 다음 날 출근하면서 욕해요 ‘에이 다음부터 성지순례 가나봐라’ 해요더 큰 공을 위해 악역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보고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보고라는것은 기운을 잇는거에요.기운을 통하는 거구요 막힌 걸 뚫는 거예요 그런데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아요.보고는 내가 비굴한 사람이 되는 거 같고 약자가 되는 거 같고, 자존심이 세워지지 않는 거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저께 신규발령받은 교무님이랑 통화를 했는데, 이번주 설교를 맡았다고 합니다. 설법 안을 짜서, 교당 교무님께 보이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부직자가 그렇게 짜오면, 교무님이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도와주고 싶을 거시고, 부직자를 통해 교당 교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 왔어요~’ 말만 하고 방에 쏙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예요. 바쁘면 곤란하겠다만, 그렇지 않으면 대화를 하는 게 좋지요.중앙은 단장한테 보고하고, 단장은 회장이나 저에게, 저는 지구장이나 교구장한테 보고를 해야합니다.회사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보고를 잘해야 해요 ‘나 열심히 했는데 이것도 귀찮게 해야돼? 큰맘먹고 해주는 건데 보고까지 해야 돼?’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그런 사람은 기운이 터지지 않아요.
여러분은 여주 교우님 이야기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가 모르겠네요. 여러분 교당에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셔야 돼요. 젊은 시절에 목표를 잡으셔야하는데 그게 뭐냐면 참 나의 행복이예요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는 노래 있잖아요. 내 인생은 내 거지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끌려서 지배를 받고 살면 행복하다고 할 수가 없잖아요. 행복하려면 자력을 갖춰야 돼요. 자력을 갖추는 것이야 말로 주변에 은혜를 베푸는 거예요. 솔선하는 것 자기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말을 안해도 뭔가 안해도, 그 자체로 분위기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은혜가 알아서 건너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여주교우가 기 가막힌 표현을 했잖아요 ‘마음이라는 것은 실존하는 것도 아닌데ㅡ 나는 왜 그렇게 허공을 붙잡고 괴로워 했나’라고요. 수심결에서는 공화난추(空華亂墜)라 했습니다. 눈에 티끌하나만 있어도 세상이 어지럽게 보입니다.눈에 티끌 하나만 제거하면 세상은 요란하지 않은 게 보이는데요. 경계는 피해야 할 대상이요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내가 한 마음 티끌 하나만 제거하면, 경계는 사은 덩어리임을 알게 됩니다.누가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여주교우는 좌선을 참 좋아해요 가끔 보면 방에서 혼자 선하고 있어요 출가자가 수양의 맛을 알면 그거 참 행복자야 출가자가 수양의 맛을 모르면 다른 데서 재밌는 걸 찾아야 하거든요 먹는 걸 찾든가 놀러가는 걸 찾든가 꾸미는 걸 찾든가 배우는 걸 찾든가... 수양의 맛을 찾으면 그런 거 다 상관없어요. 다 풀어버려 수양을 하고 났더니 기분이 좋아져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업장이 그냥 다 녹아버려요.
저는 여주 교우 강연을 들으면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싶었습니다. ‘우리 교법의 핵심을 잡고 있다’ ‘출가해서 뭐하자는 것이고 결국 뭐 하자는 것인가’를 잡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핵심은 뭐냐 보은하자는 거예요 ‘내가 행복하고 싶거든 보은해라’ ‘내가 재미를 찾고 싶거든 보은해라’ ‘내가 대접받고 싶거든 보은해라’ 내가 깨닫고 싶거든 보은해라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질문 받겠습니다.
질문> 제가 작년에 그냥 나름대로의 서원을 세웠는데요. 서원을 맞게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직업이 기업 컨설팅인데, 중소기업 청년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컨설팅 회사를 만들겠다는 서원입니다. 서원이라고 하기엔 작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있는데요. 크기가 어느정도여야 서원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답> 서원의 크기에 대해서 질문하셨거든요 서원의 크기는 뭔냐하면, 개인 가정에 대해서까지는 욕심이라 그래요. 그러나 회사, 국가, 세계에 대해서부터는 서원이라 조금 말할 수 있어요. 서원이라는 것은 공을 향하는 마음이거든요. 대산종사께서는 기도를 할 때, 세계→국가→사회→가정→개인의 순으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중생은 거꾸로지요. 중생은 개인의 역량이 터지면 사회에 보은하겠다고 말해요. “교무님, 제가 돈 많이 벌면 교당 지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제가 “지금 유지비 좀 더 내”라고 말합니다. 습관, 지금 마음이 더 중요하거든요.
서원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원은 외서내원입니다. 본인 혼자 원을 세운 것은 원(願)이예요. 서(誓)는 진리와 스승한테 맹세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에게 맹세안하면 아직 서원은 아니예요.
질문> 저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다른 실질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배가 불러야 생각을 하고 좋은 일을 하니까, 실질적으로 물질적 충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교무님 직업이 사람을 구제하는 효과가 더 큰지 궁금합니다.
답>
좋은 질문입니다. 물질을 운용하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운용하는 건 마음이에요. 선이냐 악이냐 양심이냐 비양심이냐 마음이 들어서 물질활동도 다 하는 거여.언뜻 생각할 땐 배가 불러야 마음공부 할 거 아니냐? 맞아요.그러나 사심이 없이 오롯하면, 물질이 생기는 이치도 있습니다.
대종경에 그러니까 품삯버느라 법회 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대종사께서는 사심 없으면 천록이 떨어지는 이치가 있으니 법회를 봐야한다고 말씀하셨어요.내 능력과 내 노력으로만 얻으러 하지 마시고요. 기도를 통해, 때로는 함께 함으로써 얻으시고요. 때로는 천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현실만 보지 않습니다. 법신불을 상대해요.
일반 사람들과 저는 세계관이 180도 다릅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계관이 가정과 개인입니다. 애기 예쁘게 낳고 잘 살겠다는 게 꿈이지요. 그러나 제 꿈은 공(公)이거든요.시간과 에너지 쓰는게 다르고 국한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른 거예요. 현실적으로 짧게 보면, 대종사님 법대로 하면 거의가 다 손해야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다 손해봐.그건 내가 하라는 게 아니라 대종사님이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그러나 조금만 한 생각 더 하고, 철들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손해야말로 정말 더 큰 은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했던 그거 얻고도 남아버리고 오히려 부담돼서 쫓아내고 도망가고 숨어야 해서 귀찮을 정도예요.기업인 정치인들 누굴 제일 찾는지 아세요? 진실하고 바른 사람이에요. 정치에 뜻이 있으면 10년만 법대로 살아보세요. 알아서 공천장 와요. 엘지 인화원 사장도 안철수 측에서 전화왔는데 튕겼다고 해요.그래서 내가 말하는 건 ‘바보같이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약삭빠르게 살지 말고요. 그러면 널 무시했던 사람들이 널 부러워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밀운교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