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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4:1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무엇인가요? 인생의 navigation. 2024. 10. 27
여러분, 무엇이든지 항상 진단이 중요합니다. 정확한 진단은 가장 좋은 처방이 되고, 처방에 따라 몸에 맞는 가장 좋은 약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도 그렇고 나의 삶과 신앙의 상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현재의 세대를 무엇이라 합니까? 첨단 정보화와 AI시대라고 합니다. 정보와 AI가 모든 답을 내어 놓습니다. 그럼에도 상실의 시대로 진단을 합니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기 때문에 상실한 마음과 영혼, 상실의 시대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합당한 일을 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폴 투르니에 라는 분이 세계 역사의 인물이 된 200여명의 과학자와 정치인 그리고 예술가들의 생애를 연구하고 보고를 했습니다. 알렉산더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루이 14세, 조지 워싱턴과 나폴레옹, 빅토리아, 레닌과 스탈린과 카스트로와 같은 기라성의 인물들, 200여명을 연구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공통점은 성장 과정에서 모두 상실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비스마르크와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드골 단 두 사람만 예외라고 그의 연구 논문인 창조적 고통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적인 삶의 동기는 개인의 재주와 능력뿐만 아니라 상실을 잘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상실의 시대라고 사회학적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약한 자에게 배려하며 베풀고, 어른을 공경하는 전통과 가치를 지켜 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사회는 국가와 국민, 제반 기관과 구성원이 존재하고, 각자 역할과 기능으로 조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와 교육, 가치와 정의의 틀이 무너졌고, 그 어느 것도 의지 할 곳이 없는 충격과 자조에서 상실의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보와 AI가 답을 내어 놓지만 시간과 생각이 모두 정지 되어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정보와 AI가 답을 내어 놓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해답이 없는 고통과 고난과 아픔을 겪습니다.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지 않습니다. 주위를 보면서 타인의 일 같지 않은 공감에서 상처의 깊이가 더합니다. 사랑이 없고 공감이 없고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것뿐이고, 모든 기준이 나 자신입니다. 없음과 상대적 무소유로 아픔은 더 심화되어집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신앙적 올바름과 가치, 창의와 안전, 공정과 믿음, 교육과 문화 등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적 올바름과 가치, 창의와 안전, 공정과 믿음과 신뢰, 교육과 문화가 사회 깊숙이 자리를 잡고 사람됨이 평가 받을 때에 국력과 내 자신의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삶은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지된 시간들과 암흑 같은 불안한 시간과 환경은 빨리 제자리를 찾고 시급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적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말 간절한 노력과 최선의 환경과 후회가 없는 간절함에서 기적은 만들어 집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모두들 아프고 통곡하는 마음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과 함께 사회와 문화의 역량을 키우고 지키며 이루고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삶의 질을 위하여 신앙적 가치와 올 바름, 그리고 역량과 공정과 비전, 그리고 공동체의식과 교육과 문화, 도약과 신뢰와 행복, 관계를 키우고 지키며 넓히는 역할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언약궤를 짊어진 제사장 이 세상과 사람들 앞에 서서 앞장서는 이것이 상실의 시대에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진단입니다.
또 하나는 어렵게 얻은 것을 너무나 쉽게 놓고 너무나 쉽게 잃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세상이 이렇게 끌고 갑니다. 수많은 정보와 AI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만 상실의 시대로 이끌어 갑니다. 세우고 만들기는 어려운데 침몰하고 내어주는 것은 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세우고 만들어 가는 것이 어려우면, 세우고 만들어진 것과 이루어 놓은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관리하고 유지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무나 쉽게 내어준 삶의 모든 것들이 시간이 좀 지나면 잊히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왜요? 받은 충격과 상처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고 넘어진 문턱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온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다시 신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내어준 그 자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이고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선하신 신실하신 분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마치 자동차 운전을 하며 길을 찾을 때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맞춰 놓기만 하면 어느 길에 들어서든 목표 지점에 도착하도록 안내하듯이 하나님은 상실에서 새로운 창조의 길로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아모스5;4에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벨엘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브엘세바로 나가지도 말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고 여호와를 찾으면 살게 되는 이 말씀이 인생과 삶의 네비게이션 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상실을 통하여 좀 더 나은 창조적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실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삶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입니다. 위기의 순간은 오늘도 내일도 찾아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면 이 상실의 시대에, 무너진 우리의 삶에 왜 하나님이 우리의 네비게이션인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행복이고 즐거움입니까?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무엇이며, 그 은혜는 어디서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1. 왜 하나님이 삶의 네비게이션인가? 무엇보다도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깊은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향하여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 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어떠한 무게의 고난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질량을 달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시험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없다고 성급히 판단하지만 이미 시험에는 깊은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서 영원히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할 시험은 철저히 배제하셨습니다. 상실에서 피할 길을 내십니다.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상실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감당할 만한 시험이라고 하지만 피부에 와 닿는 크기는 우리를 압도하고 생명과 삶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뿌리가 뽑힐 것 같은데 이것이 시험의 속성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살아남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바로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 불 속에서도 건져 내시고, 세상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십니다. 여러분, 은혜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고,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할지라도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은혜가 있을지라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할 때 얻는 은혜가 훨씬 더 귀하고 복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장 효과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타이밍이 맞는, 때에 맞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할 때 얻을 수 있는 은혜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가물 때에 내려오는 한 줄기의 소낙비는 생명수와 같은 은혜이지만, 장마철에 내려오는 보슬비는 아무 소리없이 내릴지라도 유익이 없습니다. 배고플 때 얻을 수 있는 한조각의 빵은 때에 맞는 은혜이지만, 배부를 때 대접하는 진수성찬은 은혜이기 보다는 오히려 부담만 가중됩니다. 모든 것에 때가 있듯이 은혜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은혜의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타이밍을 맞추면 은혜가 되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상실감이 쌓여있는 오늘, 너무나 쉽게 내어준 것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과 같은 오늘, 하지만 고후6;2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상실감이 가득한 우리에게 내리시는 은혜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네비게이션의 두 번째는 항상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시121:5-8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고 합니다. 왜 절묘한 시점에 우리가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화를 복으로 받기도 하며, 축복을 받아 누리기도 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도움을 주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처음과 나중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계신 듯, 안 계신 듯, 그렇지만 일촉즉발의 순간에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출입을 지켜 주십니다. 어떻게 지키십니까? 먼저는 사람을 통하여 도우십니다.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모세를 사용하셨고, 그들을 가나안에 인도해 들이는 데는 여호수아를 사용하셨으며,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데는 다윗을 쓰셨습니다. 7년 대기근에서 야곱의 가족을 구워나는 데는 은 이십에 팔려간 요셉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징계하는 일과 돕는 일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삼하7;14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입니다. 사람 막대기가 무엇입니까? 괴롭히고 때리고 가고자 하는 길을 막는 막대기 같은 사람입니다. 인생채찍이 무엇입니까? 삶의 고통과 아픔과 상실이 채찍입니다. 그러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주께 하듯 하면 이런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왜요? 때를 따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생명싸개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3.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상실을 극복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것이니라. 여러분, 상실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우리 가운데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치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고, 없음과 고통과 상실에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눅18:1. 항상 기도하고 염려하지 않아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왜 삶이 메마르고 곤궁합니까? 은혜로 도우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기도하면 메마른 영혼이 살아납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임재하고 도우십니다. 기도하면 상실이 회복됩니다. 기도하면 샘물처럼 사용할 그 무엇이 주어집니다. 기도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나타납니다. 눅11:1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면 구하여지고 찾으면 찾게 되고 두드리면 열립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은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요청하기만을 기다리십니다. 곤궁과 없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상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은혜는 선물이기 때문에 거저 받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하여 수고한 적도 없고,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 공로 없이 돈 없이 값없이 거저 받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은혜의 깊이나 높이나 넓이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미치는 것도 있고, 그러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미치는 은혜가 일반은총이며 자연은총입니다. 일반은혜는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과 모든 천체만물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앙인이나 불신자나 상관없이 혜택을 받습니다. 마5;45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또 다른 하나님 은혜는 특별은총, 초자연적인 은총입니다. 이 은혜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더하시는 은혜입니다. 믿음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자연적인 은혜로 경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 은총과 특별 은총입니다. 히 11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명예스러운 이름이 나오지만, 12장으로 넘어가면 에서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인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만 은혜를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이지만, 이런 고백이 없는 사람은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은혜의 수혜자입니다.
단지 15분이라는 연극이 있었습니다. 단지 15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인생을 살아가는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입니다. 장래가 촉망한 30대 청년이 박사논문을 제출해놓고 그만 폐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너무나 급속히 퍼져가는 폐암 때문에 불과 15분밖에는 살 수 없습니다. 청년은 침상에 누운 채로 시간을 카운트다운 합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병상에 누운 청년은 지금 몇 분 남았냐고 묻습니다. 13분이 남았다고 합니다. 다시 청년은 몇 분이 남았냐고 묻습니다. 12분이 남았습니다. 또 다시 물어보는 청년에게 의사는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 그가 누워있는 병실로 한통의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억만장자인 청년의 삼촌이 죽었으니 지금 와서 재산을 상속하라는 내용입니다. 의사에게 지금 몇 분이 남았나요? 8분이 남았다고 말하는 순간 또 다시 전보가 도착합니다. 당신이 제출한 박사논문은 우리학교 개교 이래로 가장 훌륭한 논문으로 평가되었으며, 올해의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불과 3분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 다시 한통의 전보가 배달됩니다. 그가 그동안 애타게 구걸하던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결혼을 승낙한다는 전보입니다. 그가 30평생 가장 소원하던3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도 누려보지 못하고 서서히 눈을 감습니다. 인생은 한편의 연극과 같습니다. 어떤 연극은 정말 짧게 끝나는 단막극도 있고, 어떤 연극은 조금 길게 끝나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연극은 시종일관 울다가 끝나는 연극도 있고, 어떤 연극은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막을 내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분복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이 인생의 절반은 시행착오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를 위한 교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시행착오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데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고 나의 길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책임지시고 지키시고 보호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하는 동행이라면, 주님을 절대 신뢰하고 따라 가면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교정도 신앙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잘 살아온 인생이 무엇 까요? 중도 퇴장 없이 쓴맛과 단맛을 다 보면서 아픔과 고통과 즐거움과 소망을 믿음의 한 부분에 담아가면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끝까지 완주하는 삶입니다.
4. 그러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무엇인가요? 적당한 때입니다.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주시는 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신11:14절.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욜2:23절.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여러분, 이른 비가 필요할 때 이른 비가 내려야 하고, 늦은 비가 필요하면 늦은 비가 와야 됩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무엇입니까?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농부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두 번의 비를 기다리는데 그 첫 번째 비는 늦가을, 9~10월에 내리는 이 비가 이른 비입니다. 이른 비로 밀과 보리를 심고, 싹을 틔웁니다. 그리고 겨울의 추위를 지나는 동안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가 봄이 오면 훈훈한 동남풍과 함께 만물을 녹여주는 단비가 내리는데, 이것이 3~4월경에 내리는 늦은 비입니다. 이 늦은 비가 곡식의 알곡이 되게 하고, 30, 60, 100배의 결실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타이밍이 다릅니다. 이는 보리와 밀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원리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때가 있습니다. 낮에 불기둥이 주어지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쌀쌀한 저녁에 구름기둥이 주어지면 이 또한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필요할 때 얻을 수 있는 은혜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낙심되었다면 위로를 얻는 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이고, 지쳐있다면 새 힘을 얻는 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이며, 물질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물질을 공급받는 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절박한 상황이라면 구출과 피할 길을 얻는 것이 적당한 은혜이며, 아픔이 있다면 회복하는 것과 긍휼하심이 필요할 때 긍휼하심을 얻는 것이 적당한 은혜이며, 용서가 필요할 때 용서를 받는 것이 때에 맞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은혜의 보좌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지극히 높고 거룩한 곳이며, 심판하시는 두려운 곳입니다. 묻고 책망하며 합당한 공의가 있는 곳입니다.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보좌입니다. 여러분, 왕의 보좌 앞에는 부르심이 없으면 왕후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수산 궁에 있던 왕후 에스더가 왕의 부르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을 위하여 금식을 하고 나아갔는데, 얼마나 엄위하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을 했을까요? 무섭고 두려운 곳이 임금의 보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보좌를 은혜의 보좌라고 하면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감히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오고,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통하여 적당한 때에 합당한 것으로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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