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dl Dicker-Brandeis (1898~1944)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Bauhaus'에서 디자인과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바우하우스를 떠난 후 그녀는 동료와 함께 스튜디오를 열어, 무대 디자인과 인테리어 및 건축 디자인 일을 했답니다.
파시즘이 심각해지자 그녀는 프라하로 옮겨가서, 결혼도 하고 체코 시민이 되었죠. 화가로서의 재능도 키웠습니다.
그러나 1942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유대인 임시수용소인 '테레진 게토 Terezin Ghetto'로 추방되었습니다.
수용소로 갈 때 개인 물품은 50kg만 가져갈 수 있었는데, '프리들'은 허용량 대부분을 미술용품으로 챙겨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수백명의 아이들에게 미술 교육을 시켰습니다. 수용소의 끔찍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안정을 찾았고, 꿈과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답니다.
아이들은 자유스러운 꽃과 나비, 고향 집에 대한 기억 등을 도화지에다 그렸고, '프리들'은 그림 속에다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반드시 적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방법이었죠.
그녀와 아이들이 아우슈비츠로 가기 전, 자신과 아이들의 작품들을 2개의 여행가방에 담아 어딘가에 숨겨두었습니다. 언젠가 아이들의 그림이 발견되기를 바라며 . . .
가스실에서 삶을 마친 '프리들'은 진정한 '미술치료'의 선구자이며, 교육자였습니다.
뽀나스 음악
'다비다 쉐퍼스 Davida Scheffers'는 잉글리쉬 혼 (오보에보다 조금 큰 목관악기) 연주자였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녀는 신경근육질환으로 더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러운 병을 이겨내고 오디션을 통과하여, 마침내 네덜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를 얻었답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쉰들러 리스트 OST"를 감상하세요.
연주가 끝난 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객석에서는 18살된 딸이 박수를 보내는군요.
https://youtu.be/YqVRcFQagtI?si=mjSR78Xn-_-a4b8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