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저자는 의사인 누가입니다. 그의 글은 자료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분석과 기록이 훌륭하며 치밀하고 섬세하고 정확합니다[1-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수신자인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눅1:3-4]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그런데 누가복음에서 사용한 각하라는 표현을 사도행전에서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가 이미 거듭난 형제가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형제의 구원과 성장을 위해서 복음서와 성령의 행전을 기록하는 일에 전심을 다 한 것입니다. 우리도 한 사람을 위해서 깊이 집중하면 그 사역이 한 민족을 살리고 열방을 주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길로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한 사역이 큰 사역을 향해 나아가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1절에 ‘먼저 쓴 글’이란 누가복음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지상 사역을 기록한 것이고, 십자가 사역을 다 이루신 후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과 함께 일하시는 사역을 보여 주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주시는 첫 번째 명령이 ‘기다리라’입니다[4]. 믿음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들뜬 제자들에게 제일 힘든 것이 기다리는 것인데 자신들은 준비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 땅에서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함께 사역하며 배웠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집중적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3]. 그리고 부활의 예수님을 십여 차례나 만나 확인하고 또 재확인한 것입니다. 지금 나가서 전하고 싶은 열정이 넘칠 만큼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음은 수동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 액티브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때가 되실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보다 뒤에서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5]. [눅3:16]"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물에 잠기는 침례는 죄를 씻는 것이고,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는 것은 내적인 마음의 침례입니다. 몸에 할례가 필요하듯 마음에도 할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물과 성령으로 변화되고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은 두 가지인데,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조명해 주시고 무기력에서 벗어나서 능력 있게 일하게 만드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핵심을 알고 집중하여 인생의 낭비가 없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능력 있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힘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가장 우선으로 하신 일이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이었습니다[요16:7-8]. 이 사역이 유익이 되는 것은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여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God is with us"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데, 성령님은 "God is in us" 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하시니 훨씬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집중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비춰 주시면 죄가 보입니다. 일반 종교는 답이 없으니까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말라고 금기시하지만 우리는 치열하게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답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의’입니다. 의라는 헬라어 ‘디카이오수네’는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 되었는데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을 이루는 방법이 ‘의’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행이나 도덕으로는 나의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외식하는 자만 될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면 죄가 씻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그 의를 붙들도록 만드십니다. 죄를 보여 주시고 문제를 제기하시고, 의를 보여 주시고 답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 섞여 살고 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이 길을 걸었던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최종적으로 심판 하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성령이 임재하셔야 신앙생활을 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전도를 해도 명확하게 하며 이 땅을 살아갈 때도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가장 좋은 가이드가 되어 주십니다[요 16:13].
성령은 우리를 영적인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만드십니다. 열심히 하다가 교회를 떠나간 분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성으로 신앙생활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겉으로는 멋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 앞에선 다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이게 무기력증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침례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의 임재에 대한 의식이 있습니다. 이걸 모르면 성령의 침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배 때마다 임재 의식이 있고 사역을 할 때도 함께 하시는 성령을 느낍니다. 그래서 믿음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이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뜨거워집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사랑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집니다. 어떤 상담하시는 분이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need를 요약해 봤더니 한마디로 "내게는 불이 필요합니다" 였다고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는데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19장). 그래서 성령의 침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1장에서부터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으면 무기력에서 벗어나 강력해집니다. 성령의 임재를 구하고 성령의 침례를 구하십시오. 성령은 권능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