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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2
미국 정치인을 다룬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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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1 - 장 앙투안 우동, '조지 워싱턴', 1788년. 떨어진 단추(붉은 원 안)까지 묘사해 소박한 면모를 표현했어요. /Smarthistory
미국 대통령 선거가 두 달 남짓 남은 요즘 미국은 양당의 선거 유세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현재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요. 각 후보는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려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요. 유권자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회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보자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과 믿음직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표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한답니다.
백악관에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공식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 초상화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품도 있어요. 유명한 미술가에게 조각상 제작을 의뢰한 경우도 있고, 미술가가 자발적으로 대통령의 모습을 자기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경우도 있지요. 미술가는 대통령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또 어떤 면모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살펴볼까요?
검소한 이미지의 조지 워싱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1달러 지폐에 그려져 있어요. 그의 조각상〈작품 1〉을 대리석으로 제작한 이는 당대 프랑스에서 조각가로 이름난 장 앙투안 우동(1741~1828)입니다. 당시 조각가들은 과거의 위인을 상상해서 조각상으로 제작하는 작업을 주로 했지만, 우동의 경우는 살아있는 인물의 초상을 주로 맡았어요. 얼굴이 잘 알려진 생존 인물의 경우는 무엇보다 정확히 닮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죠. 닮으면서도 실제보다는 조금은 더 우아하고 근사한 모습으로 내면의 성품까지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했는데, 우동의 뛰어남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우동의 명성은 미국까지 퍼져 있었고, 1784년 미국 버지니아 의회는 조지 워싱턴의 조각상을 우동에게 의뢰하기로 합니다. 우동은 조지 워싱턴의 실물을 직접 관찰해야만 작업할 수 있었기에, 미국 측에 생명보험에 가입해 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당시 워싱턴은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어요. 독립 전쟁을 마치고 장군에서 퇴역하여 평범한 시민으로 지내고 있었죠. 우동은 워싱턴의 농가에 한동안 머물며 그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신체 치수를 측정했고, 얼굴은 석고를 발라 직접 형태를 떴습니다. 조각상의 높이도 워싱턴의 키와 똑같았고, 인물의 표정도 주름 하나하나까지 자연스러웠어요. 심지어 낡은 군복의 단추가 하나 떨어진 것까지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훗날 이 소박하고 검소한 영웅상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이상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는 찬사를 들어요. 우동은 프랑스로 돌아가서 대리석상을 완성했고, 1788년에 완성한 것으로 작품에 서명했지만 미국으로 보내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워싱턴은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어요. 두 번의 임기를 마친 그는 많은 이의 바람을 뿌리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밝고 당당한 이미지의 존 F 케네디
미국의 팝아트 미술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가 그린 '대통령 당선자'〈작품 2〉는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웃는 얼굴을 커다랗게 보여줍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형 광고판과 영화 간판 그림을 그렸던 로젠퀴스트는 소비자에게 쉽고 빠르게 전해지는 광고 이미지의 특성을 그림에 응용했지요. 선거 기간 자신을 알리고자, 자기 얼굴을 커다랗게 광고하는 대통령 후보들을 보면서, 로젠퀴스트는 케네디의 초상화를 광고 이미지 느낌이 나도록 꾸며봤어요.
'대통령 당선자'에서는 대통령 캠페인 포스터에 쓰인 케네디의 사진을 마치 영화 주인공처럼 그림으로 옮겼고, 그 옆에 흑백 이미지로 케이크를 들고 있는 손과 연두색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연결했어요. 케네디가 미국인에게 내세운 약속을 케이크와 자동차로 짐작할 수 있어요. 배불리 식사하고 난 후 후식으로 즐기는 달콤한 케이크, 그리고 원할 때 자유롭게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근사한 자동차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삶이겠죠.
케네디의 선거 운동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TV에 방영된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계기로 탄력을 받았어요. 케네디는 경쟁자인 리처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꺾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지요. TV 속 케네디의 호소력 있는 연설과 당당한 이미지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TV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가볍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TV의 영향력을 일찍 깨달은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은 TV 모니터 2대에 닉슨을 등장시킨 작품을 선보였어요〈작품 3〉. 모니터 위에 코일을 설치하고, 코일에 전류를 흐르게 해 닉슨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어요. 시청자가 TV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화면 속 인물의 인생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죠.
희망의 아이콘이 된 버락 오바마
2008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버락 오바마의 포스터 '희망'〈작품 4〉으로 오바마 후보를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한 미술가는 미국의 셰퍼드 페어리(54)입니다. '희망(HOPE)'이라는 단어를 오바마 얼굴 아래 넣은 이유는, 오바마가 연설에서 미국의 희망을 강조했기 때문이에요.
희망을 염원하는 듯 시선이 위쪽을 향하는 이 그림은 대비되는 색채를 사용하여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이 포스터는 온 벽에 붙었고, 지지자들이 입은 티셔츠 위에도 찍혔으며, 스티커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포스터로 오바마뿐만 아니라 페어리도 훨씬 유명해지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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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2 - 제임스 로젠퀴스트, '대통령 당선자', 1960~1961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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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3 - 백남준, '닉슨 TV', 1965년. /백남준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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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4 - 셰퍼드페어리, '희망', 2008년. /미국 국립 초상화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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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