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일 물날
날씨 : 아침 하늘이 회먹색이다. 무겁다. 곧 하늘이 울 것 같더니 점심 하늘엔 해가 반짝인다.
대안교육교사한마당 기획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다. 오랜 만에 만난 희숙선생님과 새롭게 만난 청계 자유 발도로프 선생님, 연대 사무국장님과 만나 2015년 교사한마당 기획회의를 하며 나눈 이야기들이 다시, 선생으로 걸어가는 나를 담근질한다. 전환과 순환, 함께 가기,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힘, 늘 있는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선생님들 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게 시야를 넓혀주고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힘을 주고 꿈틀 꿈틀 또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다. 꿈틀거리는 만남을 가진 뒤라 그런가 바람도 꿈틀거린다.
하루선생을 바꿔 새롭게 사는 날이다. 1∙4학년, 2∙5학년, 3∙6학년이 선생을 바꿔 하루를 살았다. 4학년 아이들과의 만남이 기대되는 아침, 현서, 지안, 규태, 민지, 민규와 산딸기 산으로 아침걷기를 갔다. 아침 걷기가 싫다던 현서는 산딸기 따러 간다하니 좋아라 애기 소리를 한다. 비온 뒤라 산딸기 산이 미끄럽다. 그럼에도 붉게 익은 산딸기가 아이들 손도 입도 바쁘게 한다. 규태가 아침 열기를 숲속놀이터에서 하고 싶다하고 다른 아이들도 좋다하여 숲속 놀이터에서 아침열기를 했다. 넓고 바람과 나뭇잎의 흔들림이 있는 이 공간을 모든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침 공부로 산딸기 푸딩 만들기를 했다. 마흔 셋 맑은샘 식구들이 먹을 양을 따져보고 한천과 젤라틴을 공부하고 한천의 비율을 따져봤다. 푸딩 만들기라는 일놀이를 가운데 두고 과학과 수학 글쓰기를 함께 할 수 있고 깊이를 좀 더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높은 학년과 공부하는 기쁨이다. 하지만 몇 달의 호흡이란 것이 있어 4학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하루를 온전히 노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며 지낼 때는 완전한 일치를 보기는 어려웠다. 난 아이들 흐름을 보랴, 때때로 공부에 집중시키랴 애쓰다 보니 1학년들과 호흡을 맞췄던 것처럼 감동을 만들지는 못했다. 1학년을 넘어 더 많은 아이들과 넓게 교감해야 하는데 교실에 갇힌 나를 보게 된다. 공부를 하는 가운데도 1학년 아이들이 지나가며 아는 체를 하면 그 눈짓에 몸짓에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하게 된다. 책상을 두 개 놓고 공부를 하니 자연스레 여자어린이 모둠 남자 어린이 모둠을 나눠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남자어린이들 모둠 안에서는 자꾸 다툼이 일어난다. 잔 하나를 고르는 것에서 한천을 누가 저을지 누가 의자를 밟고 보는지 하나하나 겨루고 잰다. 선생의 개입이 많아지게 된다. 그냥 온전히 밖에서 노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낮공부로 날씨가 좋아 축구를 가게 되었다. 높은샘 아이들과 걸어서 관문체육공원으로 간다. 바람이 있긴 하나 한 낮에 걸어서 관문체육공원까지 가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곧 하게 될 축구에 신이난다. 오랜만에 관문체육공원 나들이라 그런지 지은이가 들떠 있다. 손을 잡고 맨 앞에서 걸어가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선생님도 축구해야 해요. 난 축구 열심히 할 거예요.” 와 같은 이야기를 줄곧 쏟아낸다. 한참을 걷다보니 상미 선생님이 “지은이는 손잡고 걷은 것을 싫어해요.”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지은이가 힘들까 살짝 손을 놓았다. 자유롭게 혼자 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힘이 들었는지 지은이는 내게 팔짱을 끼더니 줄곧 이야기와 땀을 쏟으면서도 발걸음이 가볍게 간다.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라서 더 기운이 나나보다. 마지막 건널목을 건너 안전해지자 아이들이 뛴다. 지은이도 저만큼 뛰어가며 “송순옥 선생님, 빨리 와요. 왜 이렇게 느려요” 핀잔을 한다. 아, 난 뛰고 싶지 않은데 할 수 없이 뛰게 된다. 더운데 걷는 것은 힘이 든다. 축구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늘에서 피구를 하려는데 지은이가 자꾸 축구를 하자고 한다. 설득에 설득을 하여 난 그늘 밑에서 피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학년 아이들과 2학년, 4학년 아이들 몇 몇이 피구를 했다. 유민이 서연이가 공을 세게 맞아본 경험이 없어서 놀랐는지 공에 맞고는 서럽게 운다. 하지만 몇 번 공이 오고가고는 들고 뛰며 상대를 맞추고 신나게 논다. 피구가 어느 정도 끝나고 쉴 무렵 오제와 지율이 시우가 뛰어와 낮은 학년이 2:0으로 이기고 있다고 신나한다. “우와~ 낮은 학년 멋지다.” 하고 뛰어가는데 5학년 민주의 눈빛이 무섭다. “선생님, 선생님은 오늘 높은샘이잖아요. 어딜 응원해요.” 맞다. 난 오늘 4학년 선생이다. 민주가 운동장에서 뛰라고 손을 잡아끄는데 아, 정말 이 열기 아래서는 못 뛰겠다. 또 사정사정해서 그늘에 자리를 튼다. 오늘은 정말 햇볕 아래 움직이기 싫은 날이다. 얼굴이 벌게져서도 뛰고 있는 아이들과 정일, 호준 선생님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놀이를 마치고 다시 3~6학년들이 걸어간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고 보니 한주 손에 이상한 물건이 들려있다. ‘안전...’라고 쓰인 긴 끈을 말아놓은 두루마리다. 물 마시는 샘가에 있던 것인데 한주는 버려진 것인 줄 알고 가지고 왔단다. 건널목은 건넜으나 어쩌랴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지. 한주는 은근 슬쩍 호준 선생님에게 맡기고 싶은 눈치나 높은 학년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법, 한주와 둘이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건널목을 건너 혼자 갔다 오라 하니 건널목을 건넌 한주가 바람처럼 다시 건너편에 나타났다. 하하, 선생이 잠시 한 눈 팔고 한별 선생님에게 새참을 부탁하려 전화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온 것!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가져다놓아라 하니 한주가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아침나절 4학년들과 만든 레몬산딸기 푸딩에 쌀조청을 뿌려 새참으로 냈다. 4학년 친구들은 스스로 만든 것을 나누는 기쁨으로 저마다 반에 새참을 나르는 것도 자청해서 신나게 한다. 역시 배품, 나눔은 마음을 넓게 만든다. 뒷맛에 한천의 쌉쓰름함이 남아있긴 하지만 조청을 섞어 먹으니 괜찮다. 고맙게도 맑은샘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맛나게 먹는다. 한천을 좀더 넣어 겔 상태를 더 단단히 했으면 좋았겠는데 한천이 조금 모자라다. 담에 한 번 더 하면 말랑말랑 탱글탱글한 푸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를 바꿔 살고 선생들 마침회에서 하루를 돌아보는데 상미선생님 이야기가 마술통 만들기는 잘하였으나 뒤집기를 할 때 모둠마다 아이들이 서로 먼저 하겠다는 욕심을 보이며 서로 배려하는 느낌이 없었다고 한다. 티격태격 하며 뒤집었다고 한다. 배려하는 모습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때 아이들 모습과는 좀 다르다. 모둠 활동이나 저마다 하는 활동에서도 선생의 개입이 많이 없어도 서로 이야기를 하며 맞춰가는 모습이었는데. 낯섦, 새로움에서 보이는 모습인지 아니면 혹 그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서로를 배려하도록 지나치게 의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좀 더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른들 권위로 강제 받지 않으며 함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라는 일인데, 내가 아이들을 만나는 모습도 다시 살펴봐야겠다. 서로 이렇게 수업을 돌아보고 아이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소중하다. 이런 시간들은 선생을 자라게 한다. 아이들은 선생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