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자들의 해방 꿈꾸며 교정사목에 헌신
2002년 9월 한국에 첫발... 창원,진주교도소 사목 재소자들과 함께하며 인간존엄성 되찾도록 도와 장기적으로 수도원내에 '출소자의 집' 건립 계획
남도(南道) 땅, 마산이다. 창원ㆍ진해시와 통합한 지 2년 6개월째로 접어들지만, 통합
창원시는 여전히 낯설다.
아직도 마산합포구ㆍ마산회원구라는 이름을 통해 마산이라는 지명이 살아있는 인구
30만 명 소도시에 내린 건 어둑새벽이었다. 1960년 3ㆍ15 의거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열쇳말이 된 민주화의 성지는 기대보다 훨씬 차분했다. 수출자유지역
으로 향하는 대형 트럭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변곡점이 된 터전에 삼위일체 수도회가 뿌리를 내린 건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2002년 9월 27일, 첫 한국인 회원인 안찬모 신부가 마산교구에 파견되면서부
터다. 그리고 2010년 초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리 282, 현 수도원으로 옮겨오
기까지 10년간 사도직을 통해 한국인 회원들이 하나둘 입회하고 수도회가 자라났다.
800년 전 수도회 설립 당시만해도 '노예 해방'이 모토였지만, 국내에 들어오면서 갖가지
내적, 외적인 것에 얽매인 '갇힌 자'들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도록 하는데 사목적 시선을
뒀다. 이를 위해 선택한 사도직이 마산교구 교정사목이다.
교구 교정사목후원회와 함께 창원ㆍ진주 교도소를 맡은 수도회는 재소자들이 하느님
자녀, 곧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신앙과 존재적 삶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진 구속
안에서 계속될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수도회의 교정사목은 재소자들을 '위한' 사목이 아니라 재소자들과 '함께하는' 사목이
다. '대신 갇힐 수 있는' 사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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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이크로 표현된 삼위일체 수도회 상징. 설립자인 마타의 성 요한이 자신의 첫 미사 때 본 환시를 모자이크로 표현한 것으로, 로마의 성 모타스 인 포르미스 옛 수도원 정문에 보존돼 있다. 커다란 제병 모양으로 둘레에 '삼위일체와 노예들의 수도회 상징'이라는 라틴어 글귀가 새겨져 있고 그 안에 구속자 그리스도와 두 노예가 그려져 있다. 흑ㆍ백 두 노예는 전쟁 포로를 재현한 것으로, 십자가를 든 왼쪽 백인 노예의 사슬은 그리스도께 연결돼 있는데 신앙의 끈으로 예수와 연계돼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 발목에 채워진 사슬을 자기 손으로 잡고 있는 오른쪽 흑인 노예는 강하게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구속자 그리스도께서는 두 포로들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도록 해주신다. |
교구에서 필요한 사목과 수도회 영성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교정사목의 길을 선택한 수도
자들은 재소자들이 자신의 인간됨, 곧 존엄성을 되찾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내 첫 파견자인 안찬모 신부가 도맡고 있는 창원교도소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가 미결수
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지 않지만 일주일이면 두세 차례
이뤄지는 정기 방문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한다.
미사 봉헌과 예비자 교리교육, 복음 나누기, 성가 연습, 성경 공부, 교정마을 레지오 활동,
구역장 모임, 회장단 모임, 간사 월례회, 생일잔치는 기본이다. 이에 덧붙여 대림, 사순시기
면 재소자 하루 피정으로 재소자들이 하느님 자녀로서 존엄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권면한다. 지난 사순 피정 땐 직접 관 속에 들어가 예수님 죽음을 묵상하고 삶의 의미를 되
새기는 죽음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진주교도소는 정신지체 장애나 결핵 등 질병을 앓는 재소자들이 많아 수도회 한국지부
장 이영민 신부는 전례의 맛을 느끼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례를 통한 하느님과
의 만남, 하느님 체험이 핵심이다. 특히 성주간이면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이
끌며, 나아가 이같은 체험이 일상 삶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
성모님의 날 봉헌식, 성가합창발표회 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정사목동 활동에 억지로 수도회 색깔을 입히려 애를 쓰지는 않는다.
우선적 과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엄성을 되찾도록 하는 데 있고, 그 다음이 수도영성
구현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스도인 됨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중점
을 두고 매주 번갈아가며 미사 봉헌과 인성교육, 성가발표회,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장기수 복음나누기, 수형자와 봉사자를 잇는 자매결연 프로그램은 진주교도소만의 특색
있는 사도직이다.
이같은 교정 사도직활동 재원은 교구 내 각 본당별로 구성된 교정사목후원회에서 마련
한다. 그리고 수도회 차원에서 마련된 재원도 교정사도직 투신에 온전히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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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목요일 주님 만찬미사 중 삼위일체 수도회 수도자들이 창원교도소 재소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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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지부장 이영민(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부가 한국지부 회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수도회의 재원 활동은 타 수도회와 달리 독특한 데가 있다. 수도회에서 '테르시아 파스(Tertia
Pars)'라고 부르는 전통이 그것이다. 수도원 재원의 3분의 1은 공동체적 삶에, 두 번째 3분의 1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애덕 활동비에, 나머지 3분의 1은 노예 해방에 쓰인다. 이것이
수도회의 재원 활용 규칙이다.
이 전통은 수도원조차 내어놓는 영성으로 이어진다. 교정사목을 통해 '갇힌 자들의 해방'을
꿈꾸는 수도회는 요즘들어 장기 교정사목 프로그램의 하나로, 수도원 내에 출소자의 집이나 쉼
터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재소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소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서다.
이영민 신부는 "출소자 쉼터 개설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희 수도회의 영성이 '갇힌 자들
의 해방'을 지향하기에 당장은 어렵지만 미래엔 수도원 곁에 출소자의 집을 만들 계획"이라며 그
간 수도회의 교정사목에 함께한 후원자와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오세택 기자
▨삼위일체 수도회 역사와 영성
삼위일체 수도회(Order of the Trinity)로 약칭하지만, 수도회 본래 이름은 '삼위일체와 노예들
의 수도회(Ordo Sanctissimae Trinitatis et Captivorum : O.SS.T)다. 여기에 수도회의 역사와
영성이 그대로 함축돼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Trinitatis)과 구속(Redemptio)이라는 두 축이 수도
영성의 중심을 이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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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 수도회 설립자 마타의 성 요한. |
다시 말해 △인류를 구원한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과 봉헌적 삶을 본질적 바탕으로
삼고(기도생활) △그분 사랑에서 비롯되는 일치와 친교의 삶을 구현함으로써 가난하고 소외 받
는 이들에게 하느님 자비를 증거하며(공동체 생활) △노예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들 모두가 하
느님 자녀, 즉 자유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 구속 업적 안에서 자신의
신앙과 존재적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사도직 생활) 수도회의 뿌리를 둔다.
그래서 '삼위일체께 영광을,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이라는 모토를 쓰고 있다.
이같은 수도회 설립은 십자군 전쟁이 배경을 이룬다. 전쟁이 한창이던 1154년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포콩에서 태어난 설립자 마타의 성 요한은 젊어서 엑스로 가서 무술과 말타기를 배웠
으나 곧 고향으로 돌아와 은수생활에 전념한다. 그러던 중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박사
학위를 받고 사제품을 받는다.
그는 첫 미사에서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는 계시를 하느님에게서 받는다. 바로 무슬림으로부터
그리스도인 노예를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발루아의 성 펠릭스 신부와 함께 지내며 수도회 설립을
추진하던 그는 1198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설립 인가를 받는다. 초대 총장은 마타의 성 요한
이 뽑혔다. 이것이 삼위일체 수도회의 시작이다.
수도회는 1201년 그리스도인 포로 186명을 석방하고, 이듬해엔 마타의 성 요한 혼자서 110명을
해방시키는 성공을 거둔다. 당시 노예해방을 위해 파견된 수도자들 가운데는 포로와 노예들을 구
출하고자 자신이 대신 억류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1998년에 설립 800주년을 지낸 수도회는 이제 시대적 징표를 새롭게 읽어내며 신앙의 위기
를 겪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 가난한 형제들과 함께하며 하느님 구원을 전하는 사도직에 헌신하고
있다. 회원 수는 2011년 말 현재 25개국에 613명이다.
한국에는 삼위일체 수도회와 1986년 부산교구에 파견된 프랑스 발랑스의 삼위일체 수녀회가 가
족수도회를 이루고 있다. 현재 스페인관구 소속 한국지부 회원은 지난 9월 한국에 들어온 전임 총장
호세 에르난데스 산체스 신부를 포함해 사제 4명에 수사 1명, 지원자 2명 등 7명이다. 3회(재속회)
회원도 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성소모임 ▲비정기모임(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리 282 본원) ▲문의 : 055-224-9900(담당 이영민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