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룡 삼성감독이 해태 시절 모 이동통신전화광고에서 한 멘트다. 장안의 폭소를 자아냈던 김감독의 넋두리는 해태와 국내 프로야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따라서 이종범의 복귀는 국내 프로야구의 흥행을 되살리는 큼직한 호재라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완벽한 공·수·주 능력에다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야구 센스와 화려한 플레이. 처음으로 ‘야구 천재’란 칭호를 부여받은 그의 데뷔는 곧 국내 프로야구의 전성기로 연결됐다.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데뷔 첫해인 93년,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4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이종범이 타격(.393),최다안타(196개),도루왕(84개) 타이틀을 거머쥐며 시즌 MVP를 석권한 94년에도 거푸 400만 관중을 넘어선 뒤 95년 마침내 500만 관중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러나 98년 이종범이 떠나자 국내 프로야구도 함께 인기가 떨어졌다. IMF 사태 등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11년 만에 200만 관중시대로 급락했다. 지난해는 88년 이후 최소인 250만7,549명을 기록했다.
소속팀 해태의 경우 ‘이종범 공백’은 더욱 컸다. 성적은 곤두박질쳤고,최소 6,500명을 기록했던 광주구장의 관중수가 2,000명대로 뚝 떨어지며 ‘야구 명가’에서 ‘가장 인기 없는 구단’으로 전락했다. 경기당 2,000명 이상을 끌고 다닌다던 이종범이 떠난 게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