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제목 : 어떠한 평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설교본문 : 빌립보서 4:8~13(참고, 열왕기하 18~19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6년 7월 26일
===========================
● 제목만 있거나 성경구절만 있는 곳은 해당 큐티방 묵상포인트를 참조하십시오. ●
서 론 : 하나님과 연합한 히스기야
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 히스기야(왕하 18:1~3)
1.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 왕이 된 지 3년째 되던 해에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되니
2. 히스기야가 왕이 될 때 나이 25세라. 예루살렘에서 29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이 행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올바르게) 행하여
열왕기에서 오랜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이 등장합니다.
유다 왕 아하스 왕 아들 히스기야입니다.
2)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히스기야는 유다 왕들 중에서 사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하스의 아들입니다만,
그런데 그런 악한 왕의 아들에게서 다윗 다음으로 선한 왕이라는 히스기야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그가 왕이 된 지 6년 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같은 이유로 망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3) 만일 히스기야가 이 신실함을 끝까지 지켰다면
만일 히스기야가 다윗 다음으로 선한 왕이었다는 그 신실함을 끝까지 지켰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히스기야 역시 다른 왕들처럼
처음에는 신실했다가 마지막에 흐트러지는 비극을 답습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연합한 히스기야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고,
그런 신실한 히스기야가 왜 다른 왕들처럼 그 신실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는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히스기야에게 닥친 위기
1.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제거함(왕하 18:4)
4. 그는 여러 산당을 헐어버렸고, 주상(돌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고, 또한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그때까지도 분향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리고는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➀ 산당과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함
산당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이것이 점차 우상숭배의 근거지로 변질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근거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다 왕들이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은
산당이 지방 호족들의 힘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자기의 왕권이 무너질 각오를 하고 산당 뿐만 아니라
유다 땅 전역에 널리 세워져 있던
주상(우리나라의 장승처럼 세워진 돌기둥)과 아세라 목상을 모두 제거합니다.
➁ 모세의 놋 뱀을 산산조각 내고 느후스단이라 부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 원망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불뱀에 물려 죽는 일이 일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는
누구든 이것을 쳐다보면 죽지 않고 살게 되리라고 말하였고,
그 놋뱀을 본 자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그런데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차 그 놋뱀을 숭배하며 그 앞에서 분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그 놋 뱀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리고는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불렀습니다.
놋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거에는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으니 놋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 성전 예배를 회복함(역대하 29:3, 5, 17, 역대하 29~30장을 참조해주십시오)
3. 히스기야 왕은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성전의 문을 열고 수리하고
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스스로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다 없애라.
17. 정월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달 8일에 여호와의 낭실(성전 현관)에
이르고, 또다시 8일 동안 여호와의 성전을 성결케 하여 정월 16일에 이르러 마치고,
역대하 29:3,5,17을 보면
히스기야는 성전의 파손된 기물을 복구하고 성전 예배를 다윗 시대에 버금가게 회복하였습니다.
이전에 무너진 성전을 복구한 자들은 몇 명 있었지만,
성전 예배를 회복한 자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 히스기야가 처음입니다.
3)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6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여호와께만 매달리고 의지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였다는 것은 혀가 입천장에 붙어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며 섬겼다는 뜻입니다.
그가 한 일 중에 산당을 제거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산당이 지방 호족들의 힘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왕권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에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4)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케 하셨더라(7절)
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히스기야가 이렇게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었고,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가 되자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습니다.
나라의 일이든 외적의 침략을 막는 일이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여호와께서 형통케 하셨습니다.
2. 그러나 히스기야가 넘어가야 할 시험
그러나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그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를 확인받아야만 합니다.
요셉이 14년 동안 노예와 감옥살이를 했고,
모세는 이런 시간을 40년을 지냈으며,
다윗도 사울에게 쫓기는 이러한 시간을 10년을 지냈습니다.
이들 모두 그 시험의 시간을 잘 견뎌서
하나님께 그 믿음을 인정받아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역시 그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를 확인받는 시간을 지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큰 군대를 이끌고 와서
유다의 여러 성읍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것입니다.
당시 앗수르보다 더 강한 나라가 없었으므로
히스기야가 이 난국을 극복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항복하든지 아니면 싸우다가 죽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왕국 이스라엘의 호세아처럼 다른 나라를 찾아가는지
아니면 끝까지 그 고통을 이겨내면서 하나님께만 간구하는지를 지켜보셨습니다.
3. 앗수르 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침공(왕하 18:13~17)
13.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된 지 14년째 되던 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요새화된) 성읍들을 공격하여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물러가 주시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겠나이다(요구하시는 대로 하겠나이다)”하였더니
앗수르 왕은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은 300달란트(약 10톤)와 금 30달란트(약 1톤)을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고
16.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성전 본관 문과
자신의 손으로 모든 기둥에 입혔던 금까지 벗겨서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17. 그런데도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에 있는 세탁자의 밭(빨래터)으로 가는 큰길 가에 멈춰 서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8년이 지난 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공합니다.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자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다른 모든 성읍들이
추풍낙엽처럼 앗수르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제 유다의 도성 예루살렘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큰 두려움에 빠져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
앗수르 왕에게 자기가 잘못했다면서 무엇이든 요구하는 대로 할 터이니
이제 그만 공격을 멈추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은 300달란트(약 10톤)와 금 30달란트(약 1톤)를 요청합니다.
이것은 유다 입장에서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금액을 맞추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은금까지 모아서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왕은 그 돈을 모두 받고도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을 계속 포위한 채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괴롭게 합니다.
4.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조롱하는 랍사게
당시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군대를 지휘하는 자는 랍사게였습니다.
1) 랍사게의 조롱 1 : 군사력도 없으면서 입만 가지고 전쟁을 할 셈이냐(왕하 18:20)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혹은, 전쟁을 할 전략도 없고 군사력도 없으면서 입만 가지고 전쟁을 할 셈이냐?
네가 도대체 누구를 믿고 나에게 반역하느냐?)
랍사게는 유다가 훈련받은 정예의 군사들도 없고, 병거도 말도 무기도 없으면서
입만으로 전쟁을 할 셈이냐고 묻습니다.
설령 앗수르에서 유다에게 말 2천 필을 내어준다고 할지라도
그 말을 탈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조롱합니다.
2) 랍사게의 조롱 2 : 병거와 말이 있더라도 한 사람도 죽이지 못할 것이다(24절)
24. 네가 병거와 말들을 애굽에서 가져온다고 한들, 네가 내 주인의 신하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없는 졸병 한 사람이라도 물리칠 수 있겠느냐?
랍사게는 혹시 유다가 애굽에 가서 병거와 말을 구하여 온다고 할지라도
앗수르의 군사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졸병 하나도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합니다.
배짱도 없고 싸울 용기도 없는 자들이
무슨 전쟁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냐며 조롱합니다.
3) 랍사게의 조롱 3 : 우리는 여호와의 허락을 받고 하는 전쟁이다(25절)
25. 게다가 내가 너희가 섬기는 여호와의 말씀도 받지 않고(여호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곳을 공격해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온 줄 아느냐? 여호와께서 직접 나에게 이르
시기를 ‘이 땅을 치러 올라가서 이곳을 멸망시키라’고 하셨느니라”하는지라.
랍사게는 이 전쟁은
자기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허락을 받고 하는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기 위해
앗수르가 침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을
랍사게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전쟁을 허락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랍사게는 선지자들의 말을 자의적으로 함부로 해석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전쟁을 허락하셨다고 거짓말을 하며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4) 랍사게의 조롱 4 : 자기의 대변을 먹고 소변을 마시게 하라고 하는 것(26~27절)
26. 그러자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나를 보내실 때 이런 말을 너희의 주인과
너희만 들으라고 보내신 것이냐? 성벽 위에 있는 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냐?”하고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랍사게에게 자기들이 아람 방언을 알아들으니
히브리 말로 하지 말고 아람 말로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랍사게는 자기가 하는 말이 히스기야 왕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유다 백성들까지 모두 자기의 대변을 먹고 소변을 마시게 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가 항복할 때까지 자기들이 포위를 풀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굶주림과 갈증의 고통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고,
또 다른 의미는 이제 예루살렘과 히스기야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빠져나갈 구멍이란 없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는 조롱이기도 합니다.
5) 랍사게의 조롱 5 : 항복하면 기름지고 평안한 땅에서 살게 해 주겠다(31~32절)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 앗수르 왕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오면, 너희는 각각 자기의 포도나무와
자기의 무화과나무에서 난 열매를 따 먹게 될 것이며,
각기 자기가 판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라.
32. 그러면 내가 창자 다시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의 본토와 같은 땅, 곧 곡식과 새 포도주가 나는 땅이요,
빵과 포도원이 있는 땅, 감람(올리브)기름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갈 것이라. 만일 너희가 항복한다면 죽지 않고 이런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랍사게는 만일 자기들에게 항복하면
아주 기름지고 좋은 땅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허락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그동안 피정복민족에게 아주 잔인하게 한 나라로 유명합니다.
더구나 앗수르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서로 뒤섞어서 다시는 배반할 생각을 못 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랍사게의 이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6) 랍사게의 조롱 6 :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30, 33~35절)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를 속여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말할지라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 것이고,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33. 민족의 신들 중에서 앗수르 왕의 손에서 자기의 땅을 구원한 신이 있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내 손에서 사미리아를 구해 냈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져낸다는 말을 하느냐?’하셨느니라.”
랍사게는 그동안 어느 민족의 어느 신이
앗수르의 군대로부터 자기의 백성을 구해 내었느냐고 말합니다.
심지어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북왕국 이스라엘도 자기들의 손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7) 랍사게의 조롱 7 : 산당과 제단을 없앤 자가 바로 저 히스기야가 아니냐(22절)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의뢰하리라 하고 말하고 있다마는,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 앞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서,
그들의 산당과 제단들을 모두 헐어버린 자가 바로 너 히스기야가 아니냐?’하셨나니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자고 해놓고
하나님을 섬길 장소인 산당과 제단을 없앤 장본인이 바로 저 히스기야라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자고 하면서
왜 하나님을 섬길 장소를 왕 스스로 없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랍사게가 히스기야가 없앤 것이
우상을 섬기는 헛된 산당과 제단임을 알면서 하는 말입니다.
랍사게는 산당과 제단을 없앤 것에 대하여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불만을 품게 하려 한 것입니다.
5. 침묵하는 유다 백성들(왕하 18:36~37)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史官, 역사기록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문제는 유다 백성들은 물론 유다의 왕 히스기야조차도
랍사게의 이런 조롱에 대응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유다의 모든 백성들에게 랍사게가 무슨 말을 하든지
일체 대응하지 말고 침묵할 것을 명령합니다.
랍사게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이 명령은 참으로 지혜로운 명령입니다.
만일 말하게 했다면 랍사게의 심리전에 말려들어서
유다 백성들끼리 서로 분란이 일어나
결국 이 전쟁에서 유다도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침묵하게 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도록 하여
하나님의 천사가 앗수르 군사들을 모두 죽일 때까지 견디게 한 것입니다.
● 묵상 : 믿음은 기다릴 줄 아는 것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며 기다릴 줄 아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6. 이사야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는 히스기야(왕하 19:1~4)
1. 히스기야 왕이 이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두르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2. 궁내대신(왕궁 책임자)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제사장 중 원로)
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아사야에게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환난과 징계와 수치(모욕)의 날이라.
아이가 나오려고 하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인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사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가 한 말로 인하여 그를 책망(심판)하실 듯하니,
당신은 여기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하더이다”하니라.
앗수르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인 랍사게가 조롱하며 협박하는 말을 전해들은 유다 왕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는 자기의 기도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신하들과 제사장의 원로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
유다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제 2 부 : 믿음으로 이겨낸 히스기야
1. 이사야의 예언과 계속되는 답답한 현실
1)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응답 : 앗수르 왕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죽으리라(왕하 19:5~7)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렇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앗수르 왕의 신하들에게 들은바 나를 모독한 그 말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7. 내가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뜬소문을 듣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하셨느니라”하더라.
이사야는 두려워하거나 기죽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불어넣어
그가 헛소문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본국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2) 본국으로 돌아가며 히스기야에게 마지막 협박편지를 보내는 앗수르 왕(8~13절)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에서 싸우는(전쟁을 하는) 중이더라.
9. 그때 앗수르 왕 산헤립은 구스(에디오피아) 왕 디르하가가
자기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앗수르를 향하여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산헤립이 다시 히스기야에서 사람을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서 이렇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그 말에 속지 말라.
11. 보라, 앗수르의 여러 왕들이 많은 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어떻게 했는지
네가 들었나니, 그런데 어찌하여 너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너만 나에게서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냐?
12. 내 조상들이 멸망시킨 여러 민족들,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사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에 있느냐?’하라” 하니라.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는 달리
유다와 히스기야에게 답답한 현실은 계속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어떤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본국으로 돌아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본국으로 돌아간 사실을 몰랐고.
산헤립은 본국으로 가는 길에 부하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보낸
마지막 협박 편지만 받습니다.
그때 앗수르 왕 산헤립이 들은 소식은
구스(에디오피아) 왕이 앗수르를 공격하려고 진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갈 수 없으니
자기의 신하들을 보내 히스기야를 협박하는 말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2.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1) 히스기야가 보기에는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그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주변에는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히스기야가 보기에는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18만 5천의 앗수르 군사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고,
그의 손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협박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앗수르 왕의 편지가 히스기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은 랍사게가 조롱하고 협박한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2)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전해준 이후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므로
이런 일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유다와 히스기야를 도우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전해준 이후에 일어났기에
히스기야에게 더 큰 답답함과 두려움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사야는 산헤립이 헛소문을 듣고 돌아가서 칼에 맞아 죽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는데,
죽기는커녕 이전과 똑같은 조롱과 협박의 편지가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 이미 히스기야를 돕는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히스기야를 돕는 활동을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립나와 싸우느라고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떠났고,
앗수르의 군대를 진두지휘하던 랍사게도 그곳을 떠났습니다.
바로 그때 구스(에디오피아)가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앗수르 왕이 듣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한테 보낸 편지는
자기들이 그곳에 갈 수 없으니 공갈 협박이라도 해야겠다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3.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1) 오히려 앗수르가 유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왕하 19:21).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 산헤립을 조롱하고 비웃을 것이라.
딸 예루살렘이 도망하는 네 뒷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흔들 것이라.
2) 네가 감히 누구를 꾸짖었느냐(22절)
22. 네가 감히 누구를 꾸짖으며 누구를 멸시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앗수르와 같은 하잘것없는 자들이
어디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며 꾸짖고 있느냐고 호령하십니다.
3) 그동안은 내가 너희들을 통하여 여러 민족을 공격하게 했다(23~24절)
23. 네가 사람들을 보내어 나 주를 조롱하며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러 키 큰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지경 끝에 들어가며 그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그리고는 내가 땅을 파서 다른 나라의 물을 마셨고,
발바닥으로 밟기만 하고도 애굽의 모든 강물을 말려 버렸다’라고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앗수르가 큰 힘을 가지고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공격하고 정벌하게 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그 모든 것이 자기의 힘으로 한 것이라 여기고 잔뜩 교만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을
앗수르 왕을 통해 이루셨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 나는 네가 한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27절)
27. 그러나 나는 네가 앉고 서는 것과, 네가 나가고 들어가는 것과,
네가 나에게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도 내가 모두 다 알고 있나니
그런데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모든 일이 다 자기 힘으로 한 것이라 여기고는 잔뜩 교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조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 묵상 : 기도를 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기도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천국을 동원하여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기다리면서 주께서 응답하시는 그 순간까지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됩니다.
4.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
1) 유다를 구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징조(왕하 19:29~30)
29.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에게 보여 줄 징조가
이러하니 금년과 내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제 3년에는 농사지어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환난을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땅 아래로 깊이(싱싱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한 가지 징조를 보이실 텐데,
올해와 내년에는 스스로 난 곡식을 먹고,
제 3년에는 농사를 지어 수확한 농산물을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곧 유다가 망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징조라고 말합니다.
2) 남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견고히 서게 되는 날이 오리라(31절)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하셨나이다” 하니라.
유다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앗수르에게 망하지 않으리라는 말씀입니다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보여 주시리라는 그 징조는 앗수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들뿐 아니라 환난을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가진
이 세상의 남은 자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남은 자는 요한계시록에까지 신구약 성경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마지막 때의 심판을 이기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의 나라로 들어갈 자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입니다.
3) 앗수르 군사들은 단 한 발자국도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리라(32~33절)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이리로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도 못하며, 성을 공격할 토성(흙 언덕)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안으로 결코 들어오지 못하리라’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 묵상 :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31절)
(31절 성경구절 위에)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말씀은 천지 만물을 지으신 이, 이 땅과 하늘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이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이 일을 모두 완료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으시리라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그 순간부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앗수르로부터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힘을 다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끝까지 주님을 찾는 주의 백성들을 사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능력을 다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니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5.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됩니다.
1) 앗수르 군사들의 죽음과 산헤립의 최후(왕하 19:35~37)
35. 그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 군사들의 진영으로 나아가서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쳐 죽인지라.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다 시체가) 되었더라.
36.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곳을 떠나
앗수르의 도성인 니느웨로 돌아가서 거주하더니
37. 그가(앗수르 왕 산헤립이)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라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그의 뒤를 이어 앗수르의 왕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이 말씀을 전해주신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의 천사가 앗수르 군사들의 진영으로 나아가서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죽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아침 일찍이 앗수르 진영으로 가보니
모든 군사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이에 산헤립은 홀로 쓸쓸히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우상에게 경배할 때에 자기의 아들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은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고,
산헤립의 막내아들인 에살핫돈이 그의 뒤를 이어 앗수르 왕이 됩니다.
2)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됩니다.
앗수르는 당시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유다는 하루도 못 되어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당장은 악한 자들이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승리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잠시 어려움이 있더라도
악에 기대지도 말고, 악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또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부흥한 자들을 부러워하지도 마십시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 3 부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 무슨 덕이나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1) 스토아 철학의 덕목들을 나열함(8절)
8. 종말로(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고(진실하고),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엇에든지 옳으며(의로우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나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이 8절에서 말하고 있는 6가지의 덕목들은
당시 헬라의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덕목들입니다.
바울이 스토아 철학의 덕목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당시 사회가 이런 덕목으로
그가 덕이 있는 사람인지 덕이 없는 사람인지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사람들에게 미움과 지탄을 받고 있다면
그 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므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덕목보다
더 엄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덕목들을 나열했습니다.
➀ 무엇에든지 참되고(진실하고)
‘무엇에든지 참되고(진실하고)’는
어떤 일을 하든지 주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의 기준에 맞추어 살라는 것을 뜻합니다.
삶의 모든 측면이 하나님 보시기에 참되고 진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➁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는
어떤 일을 하든지 고결하고 품위 있은 신앙의 인격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고상하고 기품있는 말과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➂ 무엇에든지 옳으며(의로우며)
‘무엇에든지 옳으며(의로우며)’는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신앙생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충실하고 합당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➃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는 ‘오염이나 흠이 없는 것, 도덕적인 순결함’의 뜻으로,
동기와 행위가 순수하고, 미움이나 불평이나 세상의 쾌락에 빠지지 않으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동기와 행위가 순수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➄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는
‘친절한, 사랑스러운, 상냥한, 붙임성 있음’의 뜻으로,
인격적인 매력과 우호적인 호감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즐겁고 유쾌하며 사랑스럽다는 것입니다.
➅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는
‘인격과 행위가 고상하여 높이 칭송할 만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고,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2) 무슨 덕이나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
‘덕이 있든지 기림이 있든지’는
‘덕이 되거나 칭찬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의 뜻입니다.
앞의 6가지 이외에도 덕이 되거나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들을 신앙적으로 잘 판단한 후에 그것들을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3) 세상의 덕목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뜻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악을 행하여 조롱을 받는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도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금을 바치는 일이나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면에서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바울이 헬라 철학의 덕목들을 나열한 것은
성도들은 신앙의 질서뿐 아니라
세상의 질서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신앙의 질서만 지키면 되는 것이지
세상의 질서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면
세상의 질서도 그들보다 더 엄격하게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2.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미 얻은 구원을 끝까지 지켜야 할 책임이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 안에 계속 머무를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보는’영적 훈련에 끊임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받고 듣고 보는 일에 열심히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묵상 :
지금 어떤 영적 훈련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아무런 영적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의 생명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3. 자족(自足)의 신앙
•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운 바울(11절)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하는 신앙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주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
1)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12절)
(12절 성경구절 아래)
많은 사람이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지날 때에는
간절히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살기에 힘쓰다가
삶이 회복되고 부(富)를 이루게 되면
기도도 중단하고 경건한 삶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복하고 좋은 시절을 만나더라도
기도를 중단하거나 경건한 삶을 포기하거나
그가 행하고 있던 사명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2)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12절)
(12절 성경구절 아래)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자신이 멸망의 자식이라도 된 것처럼 좌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지날 때에는 그냥 전보다 더 어려워졌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변하지 않았는데
좀 힘들어졌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 론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13)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 바울이 배웠다고 하는 일체의 비결 : 좌절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을 비결
비천에 처해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풍부에 처해도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언제 어디에서든 기쁨과 평강을 제공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므로
우리는 좌절하지도 교만하지도 않고
언제든지 신실한 마음으로 주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언제 어디에서든 기쁨과 평강을 제공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므로
우리는 좌절하지도 교만하지도 않고
언제든지 신실한 마음으로 주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12절)
(12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돈을 버는 정상적인 상업이나 직업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을 싫어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중심에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더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면 주께서 그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왕이면서 누구보다도 부자로 살았지만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3) 그러나 바울조차도 기쁨과 평강과 관용을 잃어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도 때로는 힘에 겨워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모든 일에 도전했던 바울도
때로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처절함을 경험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디모데와 의사 누가와 실라,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자들이 바울을 도우며 격려하였습니다.
또 이들이 힘들어할 때는 바울이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도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바울처럼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고,
두 번째로 성도들 상호 간에 좋은 친교를 이루어 서로가 격려하고 위로하는
건강하고 신실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영적으로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는 일,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섬기며 대접해 드립니다.
주님
힘들고 어려운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자족하는 신앙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과 헌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