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종길목사 컬럼-‘야소교’ 목사가 되게 하소서

저는 요즈음 주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주님께서 곧 오시든지 혹은 제가 주님 앞에 가게 되면 무슨 얼굴로 주님을 만나 뵐 것인가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사뭇 초조하기도 합니다.
2010. 7. 12 이면 저에게도 흔히 말하는 ‘성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사랑하는 우리교회 동역자들과 청년들과 함께 국수나 한 그릇 먹고자 합니다.
저의 사역은 1970년 7월 12일 원주제일교회 전도사로 시작되었습니다.40년이라면 성경에는 어떤 큰 일을 완성하는 기간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주님께서 “잘 하였도다. 착한 종아” 그런 칭찬을 받을 자신은 없고, 오히려 “이 악하고 그릇된 종아”라며 회초리를 맞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난 40년 목회를 다시 돌아보았습니다.주님만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역을 하겠다고 순수한 소명을 가지고 출발한 사역이었지만, 그간 사역을 뒤돌아보면 감히 ‘제가 주님의 종’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정말 주님의 종이었습니까?장로님들의 종은 아니었습니까? 성도들의 종은 아니었습니까? 혹은 자녀들을 키우는 일에 꽁꽁 묶여 버린 종은 아니었습니까? 아니, 저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위한 종은 아니었습니까?
제가 처음 목회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개(犬)독교’라고 비아냥대는 말은 듣지 안았습니다. 기껏해야 ‘예수쟁이’라거나 ‘연애당’에 다닌다는 정도였습니다.세상 사람들의 비판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어쩌다가 기독교가 이토록 나쁜 평가를 받게 되었는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이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빛이 되지 못했던 저 자신 때문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빌 2:15)는 말씀을 설교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저의 잘못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떤 자료에서 본 내용이 나에게는 자꾸 생각이 나게 합니다. 그것은 광양 지역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던 역사를 소개한 기록입니다.
“19세기 말 광양에는 도박이 크게 창궐해서 도박으로 패가망신 하는 가정이 수도 없이 늘어갔다. 그 때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는 일본낭인을 죽이고 웅동 마을에 숨어 있던 한태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체포하려고 광주에서 찾아온 한 관리가 도박에 중독된 주민들을 보고, ‘광주에 가면 야소교라는 것이 있는데 도박을 끊으려면 이를 믿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며 조상학 목사를 소개했다. 이에 박희원, 서병준, 장기용의 40대 세 사람이 3일 동안 걸어서 조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았다. 1904년, 그들은 이내 고향으로 돌아와 시골 집 방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광양지역의 첫 교회였다.”
도박을 끊는다는 것은 손목을 자르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소교는 도박을 끊는 양약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기독교보다는 야소교(예수교)로 다시 돌아갔으면 합니다.
아니, 저 자신이 현대의 기독교 목사보다는 옛날의 야소교 목사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감동을 주는 야소교,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야소교,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한 야소교, 무엇보다도 털어도 먼지 한 점 안 나는 야소교, 그리고 회개의 눈물을 항상 달고 다니는 야소교.... 그런 야소교의 목사가 되고 싶고, 또 되려 합니다.
성역 40년이 되는 즈음에 미국 임마누엘교회 목사 류종길
작성자: 류종길 목사
작성일: 2010년 7월 8일
출처: 성결네트워크 (http://www.holynet.info/news/detail.php?number=3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