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안영숙
설거지의 두께 외
싱크대 수조 안에 어김없이 들어앉아 있다
어제의 접시도 쉰내가 나는데
포개지던 비관이 봉토분이 되어버린
나의 알레고리
구속된 니르바나랄까
친환경의 구원은
별점이 여럿 달린
광고 후기조차 탈탈 털리고
씻을 게 없다면
세재도 필요치 않을 텐데
아니
나를 저 속에 집어 던진 시간이 오늘을 살지 못했다면
누적되지도 않았을 텐데
찡그리다 부대끼어 이가 나가고
금이 쩌억 가기도
그렇게 내다버린
내가
분리수거조차 안 된 당신들에게
날카로운 혀로 무엇이든 베어버릴지도
찻잔엔 커피 대신 술을 담았고
국그릇엔 엽록소가 과다해서 녹조가 격해졌다
그렇게 싱싱한 때를 입고 떠먹던 포크의 발을 담근다
설거지의 두께는
계속해서
비만해져 가고
당신들의 비평은 힐난은
세정 되지 않는 피해 자욱으로 박테리아처럼 번식하고
이 주방이
그저 지구 밖이길
그래 봤자
우주 안이라는 걸
그렇다면
설거지는 언제 마칠 수 있을까 마칠 수나 있을까
난바다로 더 이상 떠밀려 내려가고 싶지 않은 오후
나는
그릇과 그릇의 해안선에서
아직도
신생대의 햇귀 들기만
그러기엔
수조가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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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기타 등등
나는 여타이고 싶지 않다
나머지, 기외, 그 밖의 또 다른 것
그럼에도 기타 등등은 얼마나 당돌한가
잉여로 떨궈졌지만 사뭇 이만 총총
단칼에 인사하고 돌아선다
내가
주어인 시간이 있었던가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
나의 원圓에는 그 중심이 없다
그래서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떨어져 나간 무게중심의 옆구리가 시리다
외지에서
키치한 이방인처럼
단 한 번도 주인인 적이 없던 기타 등등이
그나마
오만하고 거만하기까지 못했다면
파생된 동그라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추레하게
서술어가 되었을 것이다
단호함으로 끝맺음했지만 여전히
나의 둥근 달 속에는
토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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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숙 | 2019년 《문학마을》 시, 2023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강원도 철원에서 유튜브 <유연의 문학TV> ‘시처럼 살자’를 운영하고 있다. ‘모을동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나는 여기 있습니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