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 '그러므로'는 본절을 1-10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상태를 대조시키고 있다.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 본절은 유대인의 관점에서 진술한 것이다. '육체'에 대해서 혹자는 신체적인 혈통과 중생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본절의 '육체'는 신체적 혈통이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에베소 교인들이 과거에 유대인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에드네'에서 관사 '타'는 경멸과 무시조의 어투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을 소유하지 못한 자임을 시사한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
'할례'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무할례당'이라고 불렀으며 반면에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 '할례당'이라고 불렀다. 본절의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의 헬라어 '테스 레고 메네스 페리토메스'는 문자적으로 '소위 할례당이라 불리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는 바울이 이방인을 무할례당이라고 무시한 유대인들의 태도에 찬성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진정한 의미의 할례는 외적 표식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이다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알지 못했던 때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메시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 이방인은 국가적 출생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갖지 못하였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 '언약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디아테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야곱, 이스라엘, 다윗)에게 하신 언약들을 가리킨다
이 언약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 '하나님도 없는'의 헬라어 '아데오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이방인의 이전 상태가 현재 반전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의 원어는 구약에서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을 묘사하는 '라호크'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을 묘사하는 '카로브에서 유래한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 이방인의 상태에 대한 이런 반전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의 피다.
그리스도의 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화해된 상태로 바뀐 것은 구약에서 유대교로의 개종으로 인해 생긴 반전과는 전혀 다르다.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롭게 창조된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누리던 것보다 더 큰 특권(特權)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이방인의 지위의 반전에 대한 이유임을 시사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화평'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평화'에서 유래한다. '샬롬'은 전쟁이나 적대 감정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행복과 평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화평'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 감정의 중지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의 왕으로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담당하셔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셨다.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중간에 막힌 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있다.
(1)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사이를 분리하는 성전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본 구절을 기록할 때 첫번째 견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며, 또한 유대인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사이에 막힌 담은 영적으로 율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첫번째 견해와 두번째 견해는 모두 본절의 역사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적절하게 밝히고 있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원수된 것'을 수식하는 것으로 십계명과 같은 커다란 계명과 수많은 세세한 규정들로 구성된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육체 즉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하셨으며 율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던 옛 질서를 폐하셨다.
그러나 율법을 폐지하셨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 율법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다 도리어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 왜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이신 득의의 복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본절의 '히나('...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지하신 목적을 명시한다. 그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어 화평하게 만드는새 창조이다. '새 창조'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희생이 목적하는 바는 죄로 인해 생긴 원수된 것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각각이 하나님과 이루는 화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창조로 이룬 한 인류,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한 몸'은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몸의 각 지체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