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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장소 : 약사암
일 시 : 2024.07.18(목)
참 가 : 강공수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장휘부 등 8명
불 참 : 김상문 김영부 등 2명
회 비 : 70,000원(점심 식사는 7명만, 강공수는 먼저 감)
식 대 : 57,000원(김치찌개 3, 애호박찌개 4, 리정훈선배 막걸리 2병-6'000원 공제)
금일 잔액 : 13,000원
이월 잔액 : 527,000원
총 잔 액 : 540,000원
우산을 가지고 시내버스를 탔다.
부곡정에 모인 사람은 7명(강공수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등)이었다. 10시가 되어 막 출발하려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강공수가 너무 비가 많이 오니까 영화 관람으로 돌리면 어떠하냐고 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맞는 요즘 볼만한 좋은 영화 프로가 있는지 검색하여보았더니 마땅한 영화가 없었다. 게다가 이용환이 오늘 꼭 약사암에 갈 일이 있다 하였다. 그러면 오늘 예정했던 편백나무 숲에서 맨발걷기를 포기하고, 목적지를 약사암으로 변경하고 10시 30분이 넘어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비는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우산을 받지 않으면 옷이 젖을 정도로 비는 내리고 있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보니까 어느 덧 자작나무 숲에 이르렀다. 등나무 아래로 가서 벤치에 앉았다.
박남용이 문중 원으로부터, 문중 재산 중에서 자기의 지분을 처분하여 지급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였다. 윤상윤이 문중 재산은 대부분 합유(合有)로 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 없이, 재산 분할을 할 수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면 된다고 하였다. 나도 확실하게 답변할 수는 없지만, 문중 이사회를 열어서 논의된 결과를 내용증명으로 보내면 좋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약사암에 도착하였는데 2~3주 전부터 서재(西齋)와 요사체(寮舍體)의 개와(改瓦)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성되었는지 전보다 말끔해진 지붕을 볼 수 있었다. 공사에 쓰였던 발판용 틀은 아직 철거하지 않고 있었다. 대웅전 앞 잔디들은 파릇파릇하여 생기 넘치게 보였다.
우리 보다 먼저 올라왔던 이용환은 종무소에서 볼 일을 마치고 기도용 대형양초 2개를 양손에 들고 나왔다. 잠시 후 대웅전의 법당으로 들어가더니 기도와 함께 절을 하였다. 다음에는 대웅전 뒤에 있는 오백나한전으로 가서 또 기도하고 절을 하였다. 각각 몇 배씩을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꽤 오랜 시간 동안 절을 하였다.
윤상윤이 나한(羅漢)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인데, ‘불제자 중에서 번뇌를 끊어서 인간과 하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 또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더 이상 배울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의 부처’(=성자(聖者)라고 되어 있었다.
오늘은 ‘금주의 노래 부르기’를 우천으로 생략하기로 하여 강공수가 먼저 집으로 간다고 하여,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강공수 대신 장휘부가 와 있어서 아침과 같은 7명이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모였을 때는 강공수가 가져 온 오이를 먹었고, 점심시간에는 박남용이 가져 온 토마토를 식당에 맡겨 놓았다가, 식사 전에 나누어 먹었다. 모두가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애호박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오늘도 13회 리정훈 선배가 무등산 막걸리 2병을 우리에게 주고 갔다. 아무리 말려도 자기는 주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참 고맙다는 말은 빈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보답이 될지, 그 방도를 찾아야겠는데 아직 확실한 방법이 생각이 안 난다.
60년 전에 헤어졌던 박기홍 친구가 캐나다 사람으로 살면서 허리 협착증으로 고생하였는데 박남용의 아끼는 후배인 부산 최대정 원장의 집도로 허리 협착증이 말끔히 쾌유되어 퇴원하였다가, 지금 자기 고향인 장흥군 장평면에 귀향하였다는 전화가 왔다. 캐나다 교포여서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박남용의 주선으로 우리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파격적 비용으로 수술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혜택인가! 될 수 있으면 광주에 들러서 친구들을 만나고 가면 어떠하냐고 박남용이 권하였지만 일정상 그런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확실한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조선이공대 황톳길에서 책선(責善)을 행하다.
책선(責善, 선을 권하다.)이란 말은,
⟪맹자(孟子)⟫라는 책의 이루(離婁) 장구(章句) 하(下) 30장,
제4절 ‘責善 朋友之道也 夫子責善 賊恩之大者’ :
‘선을 권함은 붕우의 도이니, 부자간에 선을 권함은 은혜를 해침이 큰 것이다.’
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더 풀이하면 붕우처럼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선을 권해야 서로 간에 불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틈만 나면 등산을 즐겼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동구 도심 건강1길’ 중에 ‘단사공원길’을 걷는다. 그 길은 조선대부속고등학교에서 조선대학교 뒤 능선을 지나 깃대봉을 거쳐서 철탑 아래 쉼터까지 이어진다. 그 길을 왕복하면 보통 9,000보정도 되었다. 나는 그 길을 십여 년을 걸었다.
그러나가 작년(2023) 여름부터 가을까지 박동창의 맨발걷기에 홀려서 약 5개월을 맨발로 걸었다. 그러다가 겨울이 닥쳐서 맨발걷기를 쉬었는데, 맨발걷기 애호가 들은 겨울에도 쉬지 않고 맨발걷기를 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금년 2월부터 다시 맨발걷기를 시작하였다.
마침 조선대학교 ‘118학생군사교육단’ 운동장이 맨발걷기를 하기에 좋아보여서 그곳을 줄곧 걸었다. 모래가 많은 운동장이어서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자갈과 나무뿌리가 많은 등산로보다는 맨발걷기가 훨씬 편하고 좋았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2월의 추위쯤은 견딜 수 있었다. 불편한 것은 세족장이 없으니까 집에서 발 씻을 물을 병에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맨발걷기가 끝나면 발을 씻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던 중 ‘맨발걷기 카톡방’에서 조선대학교에 황톳길이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았더니, 정말로 ‘조선이공대 운동장’ 가장자리에 아주 좋은 황톳길과 세족장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2024년 3월 9일부터 조선이공대 황톳길에서 맨발걷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길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광주동구청과 조선이공대가 협력하여 만든 황톳길이며, 관리는 전적으로 조선이공대에서 하는 것인 듯하였다. 아직 정식으로 개장식을 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이 황톳길의 존재를 할 수 없어서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한 열흘쯤 지났는데 어떤 여인이 물을 담아 뿌리는 조로를 2개 사가지고 왔다. 어디서 오셨는지 물었더니 지산동에 사는 안 여사라는 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에 겨우 두세 명 정도였다. 4월 7일에는 세족장 물이 밖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발판을 들어 올려 열어 보았더니 나뭇잎과 황토 흙이 배수구를 박아 버려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4월 8일에는 황톳길 가장자리 한쪽에 철쭉을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중장비로 땅을 파고 십여 명의 인부들이 철쭉을 심고 있었는데 철쭉과 황톳길이 너무 가까워서 설계가 잘 못 된 것으로 보였다. 4월 15일 조선이공대 직원들이 황톳길을 시찰하고 있어서 철쭉이 황톳길과 너무 바짝 심어져 있어서 걷기에 불편을 줄 것 같다는 지적을 해 주었지만 개선되지는 않았다.
4월 16일 황톳길 개장식이 거행되었다. 오전 10시쯤 조선이공대 주차장 겸 전기차 충전지역에서 동구청장과 조선이공대 총장을 비롯하여 내외 귀빈들과 동구 구민들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러 대의 드론이 동원되어 화려한 에어쇼를 연출하였다. 동구청에서 준비한 건강체조단의 시범도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어서 동구청장과 조선이공대 총장님을 비롯한 귀빈들이 황톳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개장식은 막을 내렸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념품도 나누어 주었다.
개장식을 마친 황톳길에는 점차 사람들이 찾아와서 맨발걷기를 하더니, 4월 말쯤에는 하루 평균 50명 이상이 다녀 간 것으로 추산되었다.
5월 2일 내가 다니는 목요산우회가 북구 일곡동에 있는 ‘한세봉’으로 등산을 갔었다. 한세봉에서 교훈을 얻어왔다. 한세봉에 있는 맨발 길은 약 300미터쯤 걸어올라 가면 ‘진흙 반죽 탕’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진흙 반죽 탕을 이용하고 나면 발에 묻은 흙이 아까워, 자기가 올라갈 때 각자 페트병에 물을 담아가지고 가서, 그 물로 발에 묻은 진흙을 반죽 탕에 씻어내어, 반죽 탕의 진흙이 줄어들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죽 탕의 진흙을 보존하려는 현명한 고육지책이었다.
5월 4일 또 조선이공대의 황톳길 세족장의 배수구가 막혀버려서 물이 밖으로 넘쳐흘러 내리고 있었다. 한세봉처럼 우리 조선이공대 황톳길에도 어떤 규칙이 필요할 것 같았다. 조선이공대 황톳길을 걸으면서 느낀 점은, 오고가면서 부디 칠 염려가 있었으므로 모두가 한 줄로 우측통행을 준수하는 것, 우리도 발에 묻은 황토를 씻은 다음 세족장으로 올라가면 황토도 보존되고 배수구도 막히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컴퓨터로 큰 글씨로 된 문안을 작성하여 붙이기로 하였다.
“한 줄로 우측통행. 물 아끼기. 조로(페트병)의 물로 발에 묻은 흙을 씻어 내고 세족장으로 올라가면 황토도 보존되고, 배수구도 막히지 않습니다.”
5월 6일 컴퓨터로 출력한 문안을 코팅하지 못하고, 비닐 주머니에 넣어서 세족장에 붙여 놓았다. 다음 날 안여사가 가져다 놓은 조로가 없어져 버렸다. 나는 집에서 페트병을 2개를 가져다 놓았다. 며칠 후, 누군가 페트병을 여러 개 가져다 놓았다. 조로도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페트병의 물과 조로의 물로 진흙이 묻은 발도 씻고, 메마른 황톳길에 물도 뿌려지고 있는 중이다. 맨발걷기를 마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흙투성이의 발로 세족장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에게 계속 설득하였다. 그리고 내 스스로 세족장을 청소하고 의자로 깨끗이 닦았더니 그것을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에서 손걸레도 가져와서 의자와 세족장을 깨끗이 청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다가오면서, 6월 5일에는 누군가 또 페트병을 더 가져다 놓았다. 이제는 10개 정도의 페트명이 놓여 있게 되었는데, ‘우측통행과 흙발 씻기’가 점차 정착되고 있는 중이다. 이제 7월이니까 캠페인을 시작한지 2달이 되었다. 어떤 젊은 부부는 맨발걷기가 끝나면 흙발 씻기뿐만 아니라 세족장 청소까지 말끔히 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내가 붙여 놓았던 문안도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처음으로 맨발걷기를 하러 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족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발에 묻은 ‘흙발 씻기’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시작한 책선(責善)이 성공하였다고 생각하니, 호수에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생긴 파문이 온 호수로 퍼져 가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그렇게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황톳길인데, 요즘 비가 많이 와서 황톳길에 물이 많이 고였다가 겨우 10cm정도의 황토 층이 반죽이 되면서 황토층 밑에 있었던 맨땅에서 자갈 등의 거친 물질이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의 맨발바닥을 훼손하여 상처로 인해 맨발걷기의 후유증이 나타나면서, 이 황톳길을 만들어 놓기만 하고 뒷마감을 하지 않고 있는 사례에 대하여, 황톳길을 조성해 준데 대한 고마움보다 공사 마감을 잘하지 못한데 대한 원망의 마음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나도 요즘은 황톳길보다는 모래 운동장에서 맨발걷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첫댓글 치과에 가느라고 참석을못해 서운한 감이들었는데 오늘 양수랑회장님의 을을읽고보니 내가 참석한 것처럼 세심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장문으 ㅣ서사문을 올려옿아서 그냥 대충 알겠더라고....
매주 올리는 글을읽으면서 하루 일가를 써서 알려주는 그 정성에 그만 놀랄 뿐이요 보통 정성으로는 이런 장문의글을 올릴 수 없다
참으로 대견스럽다. 우리 양회장의 그정성은 누구도 따라갈 수없다. 깊은 지식이나 서술은 누구라도 할 수잇다고 하지만 실제 쓰라고 하면 몇줄쓰고 만다. 참 자랑하고 싶다. 그만 두라고 할수도없고 그냥 알아서 쓰세요 하고 바랄뿐이다. 고맙습니다.